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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 통화한 날, 북 동창리 “중대 시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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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 국방과학원이 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날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 장거리미사일실험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실험)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언한 ‘연말 데드라인’에 맞춘 듯한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과 미국의 움직임이 긴박해지고 있다.

김정은의 ‘연말 데드라인’ 임박 #북, 미국 향해 도발 수위 높여 #한·미정상 첩보 미리 공유 가능성 #북한문제만 논의 ‘원포인트’ 통화

이달 들어 김 위원장의 백두산행 공개 및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 담화(4일)→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5일)로 대미 수위를 높여 가던 북한은 7일 오전 한·미 정상 간 전화 통화 직후 ‘중대한 시험’(7일 오후)을 하고, 이를 발표(8일 오전)했다.

한·미가 호흡을 다듬는 동안 보란 듯 서해 위성발사장, 일명 동창리 발사장을 건드리고 나선 모양새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 않고 공식 대응도 삼가면서 향후 대책을 고심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오전 11시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30분간 통화했다. 전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했다. 시점상 최선희 부상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늙다리 망녕(망령)”이라며 비난 담화를 낸 이후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고, 오로지 북한 문제만 ‘원포인트’로 논의했다고 한다. 통역을 고려해도 한 주제로 30분간 통화한 것은 정상 간 심도있는 논의가 오갔다는 얘기가 된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양 정상은 최근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조기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대화 모멘텀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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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정상의 통화 후 북한은 보란 듯이 그날 오후 ‘중대한 시험’을 했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폐쇄하기로 했던 동창리 발사장에서의 도발로 한·미 정상 간 통화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다만 양 정상이 관련 첩보를 공유했을 가능성은 있다. 최근 동창리 일대 차량 등 움직임이 늘어나더니 5일에는 대형 컨테이너가 상업 위성에 포착됐다. 미국은 이에 맞춰 RC-135(코브라볼) 2대를 한반도 상공에 띄웠고, 한국군도 동창리에서 엔진 시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이어질 수 있는 징후를 감지했다.

비건 연말 방한설 … “한국 중재자 역할은 한계”

한·미 정상이 관련 내용을 공유한 상태에서 통화를 했다면 그만큼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북·미는 이미 “군사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사용할 것”(3일, 트럼프 대통령)→“무력 사용은 미국만의 특권 아니다”(4일, 북한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며 갈등을 키운 상태다.

7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필요 시 언제든 통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대변인)고 한 것은 문 대통령에게 역할이 주어졌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과 미국의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안다”며 “북한과 관련한 한국의 정보와 역할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다시 소위 ‘운전자론’에 따라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은 한국 중재로 이뤄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다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다시 맡을 수 있을지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전직 정보 당국자는 “북한이 인공위성 등 군사적 도발을 준비하는 건 미국과 맞짱 뜨겠다는 얘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잘못 개입했다간 책임만 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자칫 ‘운전자론’이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미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을 검토하고 있다.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비건 대표는 12월 중순 방한해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하는 일정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정용수·권호·이유정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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