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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죠, 막내사원 ‘쉬워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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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꼭 필요하지만, 빛나지 않아서 굳이 내가 떠맡고 싶지않은 일을 우리는 ‘잡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회사에서 잡일은 주로 막내가 맡곤 한다. 그런데 원활한 수출입을 위한 무역보험·신용보증 제도를 운용하는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에선 ‘로봇’이 잡일을 대신하고 있다. 지난달 입사한 사무용 로봇 ‘쉬워봇’과 ‘워라봇’이다. 지난 7월 신설한 무보 핀테크사업부에서 전자·비대면 업무처리가 가능한 단순반복 업무에 대한 직원 부담을 덜고자 개발했다. 최상봉 핀테크사업부장과 인터뷰를 토대로 로봇 사원의 얘기를 들어봤다.

무역보험공사 쌍둥이 사무로봇 #단순한 반복 입력 등 ‘잡일’ 맡아 #사람이 하루 걸릴 일의 10배 처리 #2019 사번까지 받고 24시간 근무 #선배들 고난도 일 집중하게 도움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사무용 로봇 ‘쉬워봇’이 최상봉 무보 핀테크사업부장(오른쪽 둘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사무용 로봇 ‘쉬워봇’이 최상봉 무보 핀테크사업부장(오른쪽 둘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한국무역보험공사]

◆너는 대체 누구?=쌍둥이 사무용 로봇입니다. 높이 195㎝, 너비·폭이 각각 60㎝, 무게 80㎏입니다. 머리에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온라인 정보를 검색한 뒤 데이터를 입력하는 등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한 시스템)를 심었죠. 저를 만드는 데 한 대당 5000만원 들었다네요.

◆이름이 그게 뭐니=선배님들이 직접 붙여줬습니다. ‘쉬워봇’은 고객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무역보험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 ‘워라봇’은 선배님들이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도와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덕분에 선배님들께 “거액의 신용 보증 한도 심사나 직접 고객 상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칭찬을 많이 듣습니다.

◆뭘 그렇게 돕길래=주 업무는 공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의 휴·폐업 여부를 확인하는 겁니다. 국세청 홈택스 시스템 접속→기업 사업자 번호 입력→휴·폐업 상태 확인→결과 입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잡일이라지만 수출 신용을 보증하는 공사 업무의 기본이죠. 매일 1000여개 업체 정보를 선배님들 대신 입력합니다. 입사한 지 10일 만에 1만2000건을 처리했으니 ‘A급’ 신입 아닙니까. 무엇보다 로봇이니 일 많다고 툴툴대지도 않고요.

◆그뤠잇(Great)!=로봇이 자랑한다니 웃기지만,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들과 비교 좀 해볼까요? 갓 입사한 사원이 한 건 처리하는 데 30분쯤 걸립니다. 숙련된 직원도 건당 5분은 걸립니다. 하루 8시간 꼬박 일하면 100건쯤 처리할 수 있겠네요. 놀라지 마세요. 저는요, 시간당 40건씩 처리한답니다. 그것도 24시간 꼬박 돌아서 1000건씩 해내는 겁니다. 중요한 건 ‘실수 없이’ 빠르게 해낸다는 것이겠죠!

◆근데 ‘2019 사번’ 맞니?=보증 업무는 ‘사람’이 하는 심사입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만이 보증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사원 1명과 같은 접속 권한(업무시스템 접근 및 메뉴 이용 권한, 외부 인터넷 접근 권한 등)을 주셨다는 얘기입니다. 공사 업무시스템에서도 ‘2019 사번’ 직원이 작업한 것으로 인식해 처리합니다.

◆회사에 불만 없니?=관리만 잘 해주시면 주 100시간을 일해도 불만 없습니다. 벌써 선배들 일 맡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조만간 중소기업 여부 조회, 한국기업데이터 조기경보 보고서 업로드 같은 업무도 주신답니다. 장기적으론 부서 정보를 수집해 정기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도 맡긴다는데, 언젠가 ‘승진’을 기대해도 되겠지요?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  위 기사는 중앙일보 온라인판 ‘김기환의 나공’에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활용된 경어체를 그대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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