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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혼밥·혼술과의 전쟁···외로우면 떠들자 ‘챗벤치’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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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엔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장관이 있다. 외로움은 영미권에서 질병으로 인식되는 추세다. [가디언 캡처]

영국엔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장관이 있다. 외로움은 영미권에서 질병으로 인식되는 추세다. [가디언 캡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건 1970년대 들장미 소녀 캔디 얘기다. 2019년 겨울 현재, 외로움은 이제 슬픔과 눈물의 근원이다. 영국에선 심지어 질병으로까지 간주된다. 혼밥과 혼술이 쿨한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의 현재 분위기와는 자못 다르다. 가족과 연인의 오붓함이 강조되는 연말연시, 세계 언론이 공통으로 우려하는 건 외로움의 위험성이다. 영미권 매체를 중심으로 ‘외로움 유행병(loneliness epidemic)’이라는 말이 일상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스타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지난달 ‘외로움에 대한 전쟁을 벌이자’는 제목의 칼럼을 써서 큰 반향을 불렀다. 그는 칼럼에서 “외로움은 침묵의 살인자와 같다”며 “우리를 에드바르 뭉크(‘절규’를 그린 노르웨이 화가)의 캔버스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것도 외로움”이라고 썼다.

에드바르 뭉크 작 '절규' [중앙포토]

에드바르 뭉크 작 '절규' [중앙포토]

크리스토프는 원래 외로움에 대해선 경각심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미국의 늘어나는 자살률과 오피오이드(opioid)라고 불리는 환각성 진통제 문제를 취재하다 “결국 원인은 외로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외로움이 유발하는 해로움에 대한 연구는 이미 영미권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브리검영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하루 15개비의 담배를 피우거나, 비만인 것만큼 해롭다. 심장병ㆍ치매로도 이어진다. 크리스토프는 “미국에서 비만으로 인해 한 해 30만~50만명이 사망하는 것을 생각하면 외로움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면서 우린 더 외롭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외로움 퇴치 정책에 있어 한 발 앞섰다. 지난해 이미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까지 내각에 신설했다. 이 부처는 ‘외로움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영국 외로움 장관으로 임명된 트레이시 크라우치

영국 외로움 장관으로 임명된 트레이시 크라우치

BBC 등 영국 공영방송에선 “외로움 대책(tackling loneliness)”가 일종의 관용어로 굳어졌다. 관련 기사도 쏟아진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2일 “2000명의 영국인 중 3분의 2가 ‘아무도 나의 진정한 모습을 모른다’며 외로움을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는 “응답자 중 10%는 ‘심지어 배우자조차 나를 제대로 몰라 외롭다’고 답했다”며 “우리를 매우 슬프게 만드는 조사 결과”라고 전했다.

영국에선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역 중심으로도 외로움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영국 번햄 지역의 ‘같이 수다 떨어요(‘Happy to Chat’) 벤치’가 대표적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땐 지역 공원의 해당 벤치에 앉아 있으면 된다는 발상이다. 이곳 지역사회의 한 노인이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를 당한 것이 발단이 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 벤치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외로움 때문에 사기 피해를 당하는 독거 노인이 급증하면서 지자체가 내놓은 흥미로운 방안”이라고 평했다.

한국은 어떨까. 독거 노인 증가율도, 고령화 비율도, 자살률도 해외 여타 국가에 뒤지지 않지만 중앙 정부의 관심은 아직 높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 5월 부산에서 ‘부산시민 외로움 치유와 행복증진을 위한 조례’가 제정된 정도다. 외로움도 질병이라면, 최선의 대책은 예방인데 관련 대책은 찾기 어렵다. NYT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프는 “(영국에 이어) 호주ㆍ캐나다ㆍ독일ㆍ뉴질랜드 등도 (외로움 관련 정부 대책의) 영국 모델을 따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도 보건 담당 부처에 외로움 담당관을 신설하면 어떨까”라고 적었다. 한국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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