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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약속 지키라더니…군함도 보고서에 ‘강제노역’ 쏙 뺀 일본

중앙일보

입력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군함도(端島ㆍ하시마) 등 강제징용 시설에 대한 후속 보고서에서 강제징용과 관련된 표현을 재차 누락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은 일본 측이 2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센터 홈페이지에 올해로 두번째인 후속 이행 보고서를 올리면서 공개됐다.
이에 외교부는 3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 측이 2015년 등재 신청 당시 한국인의 강제 노역을 인정한 내용을 이번 보고서에 포함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어 “유네스코 측에 일본의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겠다”며 “향후 집행이사회와 세계유산위원회 등 다자회의가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군함도·가마이시 제철소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할 땐 "본인 의지에 반해 가혹한 조건서 노역" #등재 후 2017년, 올해 두 차례 보고서에선 빠져

 2015년 군함도·가마이시 제철소 문화유산 등재

2일 일본 정부가 올린 후속조치 이행보고서에 첨부된 군함도 조감도. 일본 정부는 이를 메이지 시대 산업화 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캡처]

2일 일본 정부가 올린 후속조치 이행보고서에 첨부된 군함도 조감도. 일본 정부는 이를 메이지 시대 산업화 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캡처]

 일본 정부는 2015년 유네스코 위원회에 일본 남부 나가사키현의 군함도와 동북부 가마이시(釜石) 제철소 등 강제징용 시설 7곳을 포함한 23곳을 “일본 메이지 유신시대(19세기 말)의 산업화 시설”이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했다. 한국 입장에선 일제시대 강제징용 현장인 만큼 반발이 컸다. 가마이시 제철소는 지난해 대법원 손해배상 판결문에도 등장한다. 강제징용 가해기업인 신일본제철(옛 신일철)의 제철소로 지목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 30일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후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사진은 일본 공사현장에서 토목 노동을 하는 강제징용 조선인들. 2018.10.30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 30일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후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사진은 일본 공사현장에서 토목 노동을 하는 강제징용 조선인들. 2018.10.30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정부의 반대에 일본은 2015년 6월 독일 본에서 개최된 39차 세션에 나와 강제징용 문제를 인정하겠다는 듯한 발언을 했다. 당시 사토 쿠니 주유네스코 대사가 “일본은 각 장소에 대한 완전한 역사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위원회의 요구에 진심으로 부응할 것”이라며 “특히 수많은 한국인들과 여타 국민들이 그들의 의지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데려가졌고, 가혹한 조건에서 일하기를 강요(forced to work)받았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희생자(victims)를 기억하기 위한 정보센터를 세우겠다”고도 했다. 일본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그해 유네스코 결정문과 첨부 문서에 그대로 기록돼 있다. 이에 회원국들은 컨센서스(합의)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승인했다.

 올해도 '강제' 표현 빠진 이행 보고서 제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함도 모습. [중앙포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함도 모습. [중앙포토]

 그러나 유네스코 등재가 이뤄진 2017년 첫 후속조치 보고서에서 일본은 강제징용 시설에 대해 “전쟁 시기와 전후 일본의 산업을 지원한(support) 한반도 출신 근로자가 많이 있었다”며 표현을 바꿨다. ‘지원’ 표현은 자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희생자 정보센터는 도쿄의 싱크탱크로 바뀌었다. 일본은 지난해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줄곧 말해 왔지만, 정작 국제무대에서 먼저 말을 바꾼 것은 일본 쪽이었던 셈이다.

2일 일본 정부가 올린 후속조치 이행보고서에 첨부된 군함도의 모습. 일본 정부는 군함도를 비롯한 강제징용 시설 7곳을 메이지 시대 산업화 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캡처]

2일 일본 정부가 올린 후속조치 이행보고서에 첨부된 군함도의 모습. 일본 정부는 군함도를 비롯한 강제징용 시설 7곳을 메이지 시대 산업화 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 캡처]

 이에 유네스코 측은 지난해 6월 “당사자들 간 대화를 진행하고, 시설의 해석과 관련해 국제 모범사례를 고려할 것을 강력히 장려한다”는 권고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발간된 올해 보고서에서 일본은 “2017년 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적었다. 한국 쪽에 사전 협의도 없었다는 것이 외교부 설명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장관급, 실무차원에서 여러 차례 대화를 요구했지만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취소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모테기 "유네스코 요구, 한반도 노동자 관련 아냐"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AP=연합뉴스]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AP=연합뉴스]

 한ㆍ일이 강제징용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유네스코 측이 일본에 권고를 결의한 게 지난해 6월인데, 그해 10월 대법원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모테기 도시미스(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3일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에 대한 것으로, 이는 구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에 대한 보고를 요구받은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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