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제일교회 노인대학 "금방 잊어버려도 공부가 재밌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 2일 충주 제일감리교회 3층 대강당에는 노인 5백여명이 모여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노인들은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하는 '홍콩 아가씨'를 따라 부르며 박수도 쳤다. 그런데 노래가 시원찮았던 모양일까. 교사의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조금 더 간드러지게 부르세요. 가사를 생각하며 부르면 감정도 살아나죠."

다시 계속되는 노래-. 선생님이 이번엔 엉뚱한 말을 한다.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녀에게 절대 재산을 넘겨주지 마세요. 그러면 바로 양로원 가실지도 몰라요."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같은 시간 교회 2층 소강당에선 보건과 수업이 열렸다. 노인 50여명이 젊은 택견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며 팔도 돌리고 다리도 돌렸다. 선생님이 엄하긴 여기도 마찬가지다. "다리를 힘있게 펴세요. 그렇지 않으면 운동 효과가 없습니다."

옆 교실은 컴퓨터과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마우스를 누르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윈도 탐색기를 열고 파일 찾기를 공부하는 것이다.

이날 모인 노인은 모두 1천여명이다. 충주시 인근에 사는 노인들은 이처럼 매주 목요일 교회 노인대학에 모여 만학 열기를 불태운다.

개설 학과는 영어.일어.중국어.서예.한글.성경.수학.가곡과 등 총 12개. 교회 건물 전체가 작은 캠퍼스로 변한다. 한글을 익히고 있는 안태동(74) 할머니는 "아주 어릴 적에 한글을 잠시 배웠는데 다 잊어버렸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긴 했는데 너무 힘들어. 금방 잊어버리거든. 그래도 재미있어"라며 환하게 웃었다. 마침 2일은 노인의 날. 노인들은 생일을 맞은 듯 즐거워했다.

충주 제일교회 노인대학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등록생만 2천5백여명. 정식 학생증도 발급한다. 2001년 가을에 시작, 현재 5학기째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 여름이면 3년(6학기) 과정을 마친 첫 졸업생을 낼 예정이다.

소화춘 담임 목사는 "2년 후에는 교회가 생긴 지 1백년이 됩니다. 엄청난 축복이죠. 그간 교회가 충주 지역에서 받았던 은혜를 돌려주자는 뜻에서 노인대학을 열었습니다"고 말했다.

노인대학은 초창기부터 반응이 좋았다. 교회 측에서 일일이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교회까지 직접 노인들을 모셔왔다. 소목사는 "처음엔 지역사회에서조차 어떻게 저리 많은 노인들이 모일 수 있을까 라며 놀라워했다"며 "교회 내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노인대학과 달리 이곳에선 종교의 유무 혹은 종교의 종류를 전혀 따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점심 시간이다. 노인들이 지하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역시 가장 즐거운 자리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노인들이 얘기꽃을 피우며 밥그릇을 비웠다. 이기섭(71) 할아버지는 "노래도 하고 밥도 주니 너무 좋아. 이젠 매주 목요일이 소풍 가는 것처럼 기다려지는걸"이라고 말했다.

충주 제일노인대학은 토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전엔 학과 수업, 오후엔 의료.미용 봉사가 이뤄진다. 교회 건물 지하엔 내과.외과.한방 진료실과 물리치료실이, 1층에는 좌석 12개를 갖춘 미용실이 있다. 물론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교회 신자 및 각계 지역 인사가 자원봉사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소목사는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는 정지 혹은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신인도가 떨어졌기 때문이죠. 이제 교회도 분명 해당 지역에 무언가 베풀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충주=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