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당국이 오는 12월 말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양국 관계는 중요한 변곡점을 맞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는 12월 24~25일 중국 베이징의 한·일·중(한·중·일) 정상회의 기간. 채 한 달의 시간표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정상의 만남에 대해 미국 정부도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12월 말 회담 성사 될까
강경화 장관은 지난달 23일 일본 나고야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모테기 도시미스(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을 만난 뒤 “서로 회담이 가능할 수 있도록 조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올 한해 고위급 대화가 단절되다시피 했던 것을 돌이켜 보면 한 발 나아간 언급이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장밋빛 전망은 이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신각수 전 일본대사는 “정상회담을 통한 담판은 어렵다고 봐야하고 아직까지 성사 여부도 확신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원하는대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전인)7월 이전 상태로 돌아가려면,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 정부 차원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외교부가 23일 관련 보도자료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조율"할 것이라는 표현보다 "개최를 위해 조율해 나가"겠다고 한 것도 성사가 되지 않을 경우를 고려한 표현이었다는 해석이다.
"정상회담 개최 위해 조율" 기대감 속 #"총선 전엔 해법 못 나온다" 회의감도
매달 악재 더해 간 한해
지난해 10~11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줄곧 악화되기만 했다. 같은 해 12월 말 해상 초계기 레이더 사건에 이어 상반기 일본의 6월 주요 20개국(G20) 한·일 정상회담 거부, 7월 안보 우호국(화이트국가) 명단 배제 및 수출규제 조치 등이 이어졌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 내 반일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며 양국 국민들 간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8월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을 했다가 지난달 종료 통보를 조건부 유예하면서 휴전 모드로 접어들었다.
강제징용 해법 말 아끼는 정부
한·일은 수출규제 문제에선 협의 일정을 잡는 등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지만, 문제의 출발점이었던 강제징용 문제에선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외교부는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6월에 내놓은 ‘1+1(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 구상을 일본 정부가 공개 거부한 이후로 물밑에서만 여러 조합을 제안하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문희상 국회의장 등 한·일 의회와 원로들이 장외에서 이른바 ‘문희상 안(한일 기업과 국민 성금)’ 등 해법을 내놨다. 이달 말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지만, 피해자들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정부는 문희상 안과 관련해서는 “입법이 되면 정부 의견을 내겠다”며 선을 긋고 있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과거사 문제는 국내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민심을 거스르는 해법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달 중순 아셈 전후 윤곽 나올 듯
외교 일정상 이달 15~16일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아셈(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외교장관 회의가 예정 돼 있다. 이곳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지면 '중간 점검' 성격이 된다. 비슷한 시기 일본 도쿄에선 한·일 수출당국 간 국장급 회의가 예정 돼 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13개월 만에 정식 회담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지도 이 때쯤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