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의 사람들이여!”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에서 합창단의 첫 가사다. “서로 끌어안아라. 여기 전세계에 입맞춤을 보내노라.” 베토벤은 초기부터 유럽 여러 나라의 국가로 이런저런 곡을 만들었다. 이 마지막 교향곡에서 그는 나라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적 노래를 꿈꿨다. 신의 존재 아래 모든 인류가 형제 되는 것은 베토벤 자신의 이상이었고, 당대의 문호인 실러의 시에서 같은 생각을 발견해 곡을 붙였다.
'합창' 공연 고르는 법
경계를 뛰어넘는 화합을 그린다는 이유에서 ‘합창’ 교향곡은 매년 말 전세계 무대에 오른다. 올해 한국에서도 많은 오케스트라가 ‘합창’을 선택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 수원시립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닉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음악사상 최초로 오케스트라와 사람의 목소리가 만난 작품이다. 같은 작품을 공연하지만 컨셉은 다르다. ‘합창’을 들어야 한 해를 보낼 수 있는 청중은 어떤 음악회를 선택해야 할까. 각 공연을 비교해봤다.
독특한 조합을 찾는다면
‘합창’ 교향곡 네개 악장의 연주시간은 80분 정도다. 한 곡만 하기엔 짧고 평소처럼 협주곡까지 하기엔 길다. 따라서 교향악단들은 첫 곡으로 10분 내외의 음악을 배치한다. 독특한 조합으로 구성된 공연을 찾는다면 서울시향의 무대를 추천한다. 찰스 아이브스 ‘대답없는 질문’이 연주된다. 1906년 나온 작품으로 미국 음악의 20세기를 연 아이브스의 초기 실험작이다. 급진적이기로 유명한 아이브스의 불협화음이 고요하게 흐른다. 베토벤의 후기 작품 또한 당대에는 아방가르드였다. 자신의 음악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베토벤은 “당신들 말고 후대를 위한 것”이라 일갈했다. 2017년 서울시향의 수석객원 지휘자로 취임한 마르쿠스 슈텐츠가 자신의 첫 ‘합창’ 무대에 아이브스의 작품을 고른 이유다. 12월 19ㆍ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황수미(소프라노), 이아경(메조 소프라노), 박지민(테너), 박종민(베이스) 출연. 티켓 1만~12만원.
웅장한 소리를 듣고 싶다면
보통 ‘합창’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중엔 호른 연주자가 두 명이다. 하지만 KBS교향악단은 이를 두배로 늘렸다. 6년 전 상임 지휘자로 취임해 매년 말 ‘합창’을 무대에 올리는 요엘 레비의 계획이다. 호른과 같은 관악기 주자를 늘리면서 현악기 연주자의 수도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풍성하고 웅장한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레비는 이번 무대를 끝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 임기를 마친다.
고양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서울시합창단, cpbc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해 합창단 규모도 다른 공연보다 크다. 이명주(소프라노), 김정미(메조소프라노), 강요셉(테너), 이동환(베이스) 등 성악가들의 소리가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사운드를 뚫고 나와야 한다. KBS교향악단은 번스타인의 치체스터 시편을 ‘합창’ 교향곡에 앞서 연주한다. 12월 26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2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티켓 1만~12만원.
간결한 공연이 좋다면
경기필하모닉은 다른 작품 없이 ‘합창’만 연주한다. 오후 8시에 시작하면 오후 9시 30분 전에 공연이 끝난다. 시간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규모, 연주 스타일도 간결하다. 경기필은 베토벤이 쓴 악보를 편집 없이 가져다 연주한다. 상임 지휘자인 마시모 자네티가 올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시작하면서 지키는 원칙이다. 원전 악보에 따르면 베토벤의 ‘합창’은 거창한 대신 기민하다. 음을 길게 늘이거나 눌러서 연주하는 기법은 최소화되고 강약의 변화도 빠르다. 연주 속도도 다른 공연에 비해 빠르다.
12월 3일 오후 8시 경기도문화의전당, 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하는 성악가는 이정혜(소프라노), 아야 와키조노(메조소프라노), 김우경(테너), 우경식(베이스). 서울시합창단, 서울 모테트 합창단도 함께한다. 티켓 가격 1만~6만원.
부담 없는 가격에 듣고 싶다면
부천필이 부천시민회관에서 공연하는 ‘합창’은 전석 1만원이다. 상임 지휘자 박영민은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장을 찾은 청중에게 베토벤의 여러 면모를 소개한다. ‘합창’과 함께 베토벤의 ‘헌당식’ 서곡을 골랐다. 많이 연주되지 않는 이 작품은 ‘합창’ 교향곡과 비슷한 시기에 쓴 후기 작품이다.
현재 자주 연주되는 베토벤의 작품은 대부분 스토리가 없는 기악 음악이다. 하지만 베토벤은 중요하게 생각한 이야기에 음악을 붙이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썼다. ‘헌당식’ 서곡 또한 베토벤이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작곡했던 ‘아테네의 폐허’를 개작한 작품이다. 교향곡에 인간 목소리를 끌어들인 획기적 시도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12월 27일 오후 7시 30분. 신지화(소프라노), 정수연(알토), 허영훈(테너), 유승공(베이스), 부천시립합창단 출연. 전석 1만원.
‘풀 코스’ 취향이라면
오케스트라 공연은 보통 협주곡-교향곡 순서지만 연말 ‘합창’ 공연은 짧은 서곡과 함께, 또는 ‘합창’만 연주하곤 한다. 수원시향은 올해 공연에 협주곡을 넣어 정찬을 마련했다. 독일 쾰른 필하모닉의 종신 수석인 조성현(플루트)이 상임 지휘자 최희준과 함께 라이네케의 협주곡을 들려준다. 오케스트라 단원이자 독주자인 플루티스트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순서다. 약 25분인 협주곡과 ‘합창’이 함께 하면서 시간은 다른 공연에 비해 길어진 120분이다.
12월 3일 오후 7시 30분 수원SK아트리움. 서선영(소프라노), 김정미(메조소프라노), 신상근(테너), 양준모(베이스), 수원시립합창단, 부천시립합창단이 함께한다. 5천~2만원.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