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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어 군사합의 위반···스스로 '무오류' 깬 김정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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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정했던 남북 협력사업인 금강산 관광 사업을 부정한 데 이어 본인이 보증했던 9·19 남북 군사합의를 스스로 위반했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 "들어내라" 이어 합의 위반 #선대 수령과 본인의 결정 스스로 부정 #대미 관계서 연내 결판 내려는 조바심 #무오류성 상처, 대남 도발로 돌릴 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국회)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겠다며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국회)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겠다며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금강산을 현지지도하면서 ‘선임자들의 과오’를 지적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아닌 아버지를 보좌한 간부들에 대한 질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선대의 결정을 백지화한 게 됐다. 지난 23일엔 서해 최전방 창린도를 방문해 남북이 사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지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지시해 지난해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의 후속 합의인 9·19 군사합의를 스스로 깼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3일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금강산 관광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 현대와 합의해 독점권을 줬는데, 김 위원장은 독자개발을 지시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3일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금강산 관광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 현대와 합의해 독점권을 줬는데, 김 위원장은 독자개발을 지시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위원장의 이같은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간 북한이 최고지도자에 대해 가져왔던 이른바 ‘무오류성’을 부정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라서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은 ‘수령과 당의 방침과 지시를 법이자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무조건 관철한다’는 유일 사상을 체제 작동의 논리로 삼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의 결정은 아주 신중히, 비공개로 하거나 시범적으로 정책을 진행해 오류가 없다는 검증작업이 끝난 뒤 정책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 겸임교수는 “하지만 최근 북한의 행태는 선대 수령(김정일)은 물론 김 위원장 본인의 결정을 번복하는 모양새”라며 “결과론적으로 북한이 강조해온 수령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제2차 북미정상회담 첫날인 지난 2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 도착해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백악관 트위터 갈무리]

제2차 북미정상회담 첫날인 지난 2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 도착해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백악관 트위터 갈무리]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인 지난 3월 6일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며 “수령에게 인간적으로, 동지적으로 매혹될 때 절대적인 충실성이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2차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 이렇게 썼는데,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다. ‘수령’이 직접 나선 회담이 결렬되자 이로 인한 무오류성의 상처를 의식한 행동일 수 있다. 특히 연말이 다가오며 김 위원장이 자신의 결정(9·19 남북군사합의)까지 번복하고 나선 건 그만큼 조급함을 드러내는 것이란 분석이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육성으로 연말까지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가지고 나오길 기다려보겠다며 연말 시한을 정했다”며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이 더욱 큰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겠다는 조바심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바심 다음의 수순은 군사적 도발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무오류성의 상처를 대남 도발, 또는 대미 군사적 긴장 고조로 가리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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