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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되고 싶은데 의사 됐다, 그럼 잘된건가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47)

수능시험이 끝났다. 이제는 자신의 점수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때다.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는 학생도 있지만 부모나 선생의 권유로 선택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여러 매체에서 대학별 예상 합격선을 알려주고 있다. 합격선을 보니 어느 대학이든 의예과가 1위다. 왜 모두 의사가 되려는 걸까.

매년 이맘때면 학부형은 학창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제대로 전공을 택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때 그런 판단을 했을까 하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금융회사에 취업한 친구가 많았다. 당시에는 금융회사의 연봉이 여타 기업에 비해 높았다. 사내 복지제도도 잘돼 있어 취업준비생이 다니고 싶은 직장 중 하나였다.

수능 시험이 끝난 이맘 때면 학부형은 학창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제대로 전공을 택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때 그런 판단을 했을까 하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수능 시험이 끝난 이맘 때면 학부형은 학창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제대로 전공을 택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때 그런 판단을 했을까 하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금융회사가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났다. 초유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금융회사가 문을 닫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회사가 문을 닫으니 그저 밖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그때 회사원의 비애를 느꼈다. 일부는 경제학을 전공한 걸 후회했다.

자식들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가 문을 닫더라도 기술을 지니고 있는 필수 요원은 살아남는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공대나 의대에 입학하기를 권했다. 실제로 친구들 자녀 몇 명이 의사가 됐다. 의사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니 그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려운 수련과정을 거치고 의사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병원의 근무환경은 일반 회사에 비해 좋은 편은 못 된다. 좁은 진료실에서 하루 종일 환자를 만나 얘기를 듣고 약을 처방해주고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걸 보면 의사는 스트레스가 큰 직업이다. 만약에 수술 도중 환자가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환자 가족도 그렇겠지만 본인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치과의사였던 지인이 있다. 이가 좋지 않을 땐 늘 그를 찾아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나이 60이 넘자 폐업을 선언했다. 아직 정정한데 왜 그러했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동안 사람들의 입 냄새를 맡으며 평생을 보냈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의술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선배 한 사람도 의사였다. 동네에서 중소규모의 병원을 개업했는데 값비싼 의료장비를 사다 보니 자금이 모자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병원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병원은 얼마 안 가 문을 닫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의사이지만 그것도 업으로 하려면 쉽지 않은가보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의술을 베푼 사람도 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라고 일컫는 고 선우경식 선생이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신림동 철거민을 위해 의료 봉사한 것을 계기로 직접 영등포에 요셉의원을 열고 평생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쳤다.

의사가 되든 잘나가는 기업인이 되든 모두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본인이 꿈꾸던 일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 그가 이룬 것이 어렸을 적 꿈이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 그러나 화가가 꿈이었는데 아버지의 강요로 의사나 기업인이 되었다면 그것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이 후회하는 건 돈을 더 많이 모았으면, 더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이 원하는 삶을 사느라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걸 후회했다. [사진 pxhere]

죽어가는 사람이 후회하는 건 돈을 더 많이 모았으면, 더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이 원하는 삶을 사느라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걸 후회했다. [사진 pxhere]

은퇴 후 화가의 길을 걷는 시니어가 있다. 그런데 그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학창시절 미대에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전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미술을 전공했더라면 훌륭한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조사기관에서 성인남녀 2000명에게 어릴 적 꿈에 대한 설문을 조사한 적이 있다. 대상자의 78%가 어린 시절 꿈이 있다고 했다. 그 꿈을 이루었냐는 설문에 4%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금도 꿈을 가지고 있냐는 설문에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를 보니 죽어가는 사람이 후회하는 건 돈을 더 많이 모았으면, 더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후회한 것은 남이 원하는 삶을 사느라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생 2막은 그것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런데 전반생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학생들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유념할 사항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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