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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버린 플라스틱, 당신은 안 먹는다. 당신 손자가 먹는다"

중앙일보

입력

해변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조각들. [김정연 기자]

해변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조각들. [김정연 기자]

미세플라스틱, 크기가 작은 건 알겠는데 어떤 악영향이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직 과학자들도 답을 모른다.

과학자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미세플라스틱 주제 심포지엄 #"결국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21일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열린 '미세플라스틱 위험,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심포지엄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영역에서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을 논의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심원준 박사는 “1964년 이후 2014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이 조금이라도 줄었던 건 70년대 오일쇼크와 리먼 브러더스 사태뿐”이라며 “경제가 안 좋을 때만 잠깐 꺾이는 것 외에는 가파르게 올라간다. 지금 추세로는 ‘지금 당장’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미래가 걱정스러울 정도”라고 우려했다.

그는 태풍이 지나간 후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거제도 해변의 사진을 공개하고 “미세플라스틱은 결국 해양 플라스틱 문제에서 시작한다”며 “미세플라스틱만 들여다봐서는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다시 식탁에 오른다. 여러분이 버린 건 여러분의 손자가 먹을 것”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열린 '미세플라스틱 위협, 어떻게 준비할것인가' 심포지엄. 왼쪽부터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심원준 소장, 고려대학교 권정환 교수, 국립환경과학원 박태진 연구관, 고려대학교 박희진 연구원, 한국분석과학연구소 정재학 소장. 김정연 기자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열린 '미세플라스틱 위협, 어떻게 준비할것인가' 심포지엄. 왼쪽부터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심원준 소장, 고려대학교 권정환 교수, 국립환경과학원 박태진 연구관, 고려대학교 박희진 연구원, 한국분석과학연구소 정재학 소장. 김정연 기자

그는 플라스틱이 햇빛에 닳아 미세하게 분리되는 사진을 보여주며 “자연광에 2달만 노출돼도 표면부터 자잘한 알갱이가 떨어져 나가고 있다”며 “그간 많이 나왔던 화장품 알갱이 등 ‘1차 미세플라스틱’ 말고, 풍화로 생긴 ‘2차 미세플라스틱’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심 박사는 "여러분이 버린 플라스틱은 여러분이 먹지 않는다. 여러분의 손자가 먹을 것"이라고 다가올 위험을 경고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박태진 연구관은 “북한강과 남한강에서 물, 그리고 물고기의 미세플라스틱 농도를 측정했는데, 한강 지류가 합류되는 곳, 특히 하수처리장 근처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상당히 올라갔다”며 “향후 미세플라스틱 관리에 지천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이한 점은, 지천 합류지점 인근과 하류 쪽, 특히 바닥에 사는 어종에선 테플론(PTPE, 코팅팬 등에 쓰이는 재질)이 많이 검출됐다. 추가 연구를 통해 출처 등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물고기 내장 미세플라스틱 조사. [사진 국립생태원]

물고기 내장 미세플라스틱 조사. [사진 국립생태원]

'미세플라스틱 공포 지나쳐' 의견도 

지난 10월 3일 대서양에서 환경단체 'Ocean Cleanup'이 해양 쓰레기를 모으는 모습. 이들이 사용한 장치는 1mm 미만의 마이크로플라스틱까지 채취해낸다. [EPA=연합뉴스]

지난 10월 3일 대서양에서 환경단체 'Ocean Cleanup'이 해양 쓰레기를 모으는 모습. 이들이 사용한 장치는 1mm 미만의 마이크로플라스틱까지 채취해낸다. [EPA=연합뉴스]

반면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지나친 공포는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권정환 교수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은 연구 결과들이 지나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감이 있다”며 “미세플라스틱에 포함된 첨가물은 분명 문제지만, 미세플라스틱이 자연상태에서 주변의 모든 화학물질을 흡수해 몸 안으로 끌고 들어갈 거란 우려는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김현욱 교수도 “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왔다는 해외 연구를 한 실험실을 가보니 굉장히 품질 검증이 안 된, 열악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었다”며 “간접 측정, 실험 양도 충분하지 않다 보니 결과물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많은 양을, 충분히, 정확하게 실험해야 나중에 정수‧하수 관리에도 쓸 수 있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과학자들도 잘 모르는 미세플라스틱… 기준·원인분석도 아직 

마이크로플라스틱을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 해변에서 채취한 지중해 바닷물. [REUTERS=연합뉴스]

마이크로플라스틱을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 해변에서 채취한 지중해 바닷물. [REUTERS=연합뉴스]

그러나 아직 미세플라스틱은 ‘미지의 영역’이다. 세계 각국에서 연구자들이 각자 연구를 하지만, 통일된 연구방법이 정해지지 않아 연구마다 조건도 제각각이고, 이들을 모아 해석하기도 까다롭다.

국제표준기구(ISO)와 함께 미세플라스틱 연구와 규제의 ‘국제 표준’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한국분석과학연구소 정재학 CTO(최고기술경영자)는 "캐나다는 마이크로비즈(마이크로플라스틱보다 넓은 개념) 0.45, 0.7, 10 ㎛(마이크로미터) 크기까지 규제한다"며 "대만과 한국은 50㎛인 것과 비교하면 강도가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육지에서 가장 미세플라스틱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 세탁 폐수와 자동차 타이어"라며 "유럽연합(EU)에선 '세탁 폐수에서 미세플라스틱 제거하라'는 문구가 올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 올해 식약처에서 화장품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 시험방법을 규정했고, 환경과학원에서는 지금 물에 포함된 플라스틱을 측정하는 방법을 만드는 중이다.
정 CTO는 “환경부도 논란이 큰 화장품, 섬유유연제 등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도 규제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수만 년 히말라야 소금에서도… 바다에서 넘쳐흐르는 플라스틱

캐나다에서 채취한 얼음층 일부 근접 촬영 사진. 자잘하게 박혀있는 플라스틱들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캐나다에서 채취한 얼음층 일부 근접 촬영 사진. 자잘하게 박혀있는 플라스틱들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바다에 가득 찬 미세플라스틱은 수만 년간 쌓인 암염까지 침투하고 있다.
정 CTO는 "수만 년 된 히말라야 핑크 소금에는 미세플라스틱이 없어야 하는데, 나온다"며 "소금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는 건 해양오염의 지표"라고 설명했다.

국립환경과학원 정현미 환경기반연구부장은 “미세플라스틱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플라스틱 쓰레기 관리고, 오염원을 줄이려는 노력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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