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사이클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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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회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 플로이드 랜디스(中)가 3주에 걸친 대회의 마지막 구간인 파리 시내를 힘차게 페달을 밟아 지나고 있다. 사진 위에는 레이스를 마치고 샴페인 잔을 들어올리는 랜디스. [파리 AP=연합뉴스]

기온이 섭씨 36도까지 올라갔다. 지난 2주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폭염으로 22명이 사망했다. 프랑스 정부는 낮 12시 ~오후 4시까지 외부 노동 활동을 금지했다. 공식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오직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도로일주 사이클 대회)만이 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도로 위에서 선수들은 유니폼의 지퍼를 열어버렸다.

폭염과, 그보다 더한 부상을 극복하고 플로이드 랜디스(31.미국)가 2006 투르 드 프랑스에서 정상에 올랐다. 랜디스는 24일(한국시간) 프랑스 소 안토니-파리 샹젤리제에서 펼쳐진 제20구간 154.5㎞를 3시간57분에 주파해 합계 89시간39분30초로 오스카 페레이로(스페인)를 57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3주 동안 3657.1㎞에 걸친 지옥의 레이스를 끝내고 우승트로피를 받아 든 랜디스는 다리와 골반의 연결 부분인 고관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이제 관절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부상이 심각해 똑바로 걸을 수도 없다.

그러나 피나는 재활훈련을 통해 허리를 굽힌 채 타는 사이클에서는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20일 제16구간, 줄곧 선두권을 지키던 미국의 랜디스는 악명 높은 알프스 산악구간에서 11위까지 미끄러졌다. 21일 17구간은 그렇게 시작됐다. 파리 결승점(20구간)까지는 4개 구간이 남아 있었다. 랜디스는 17구간에서 생애 최고의 레이스를 펼친다. 200.5㎞의 산길을 5시간23분36초로 통과한 랜디스는 단숨에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1위와의 간격은 단 30초였다. 결국 랜디스는 2위를 57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1.2위의 차이가 1분 이내인 것은 1989년 이후 17년 만이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1년 만에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회 마지막 날, 랜디스의 고향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캐스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17'과 '랜디스'를 연호했다. 17은 랜디스가 이번 대회에서 불꽃 같은 의지로 전세를 뒤집은 산악구간의 마지막 날 경기를 의미했다.

랜디스는 2003년 산악도로 훈련 중 오른쪽 넓적다리뼈를 크게 다쳤다. 수술로 다리는 나았지만, 고관절에 큰 후유증이 남았다. 관절에는 피가 흐르지 않았고 담당 의사는 지난해 관절 이식 수술을 권유했다. 그러나 랜디스는 병을 숨기고, 넓적다리뼈에 10여 개의 작은 구멍을 뚫어 피를 통하게 하는 임시방편으로 훈련을 계속했다. 소속팀과의 계약문제가 걸려 있어 부상 사실을 감춰왔던 것이다. 이번 대회는 김이 많이 빠진 채 시작됐다. 1997년 우승자이자, 암스트롱에게 밀려 다섯 차례나 2위에 머물렀던 '영원한 2인자' 얀 울리히(33.독일)와 올해 이탈리아 도로일주 사이클(지로 데 이탈리아) 우승자 이반 바소(29.이탈리아) 등 9명이 도핑 혐의를 받고 출전하지 못했다. 암스트롱은 지난해 우승을 끝으로 은퇴했다.

재미는 반감되는 듯했지만 레이스는 더 치열했고, 랜디스의 '드라마'로 감동은 배가 됐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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