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

[라이프 트렌드] 내게는 언제나 귀염둥이, 남에겐 가끔 말썽꾸러기

중앙일보

입력 2019.11.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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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면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 강아지. 비행기 타는 고양이. 국내에서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반려동물로 인한 소음, 털 알레르기, 물림 사고, 질병 등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습니다. 이는 동물과 사람이 같은 공간을 쓰기 때문인데요. 반려동물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로 인한 갈등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장치도 미흡하기만 합니다. 중앙일보 라이프 트렌드는 이러한 갈등과 고민을 주제로 사람과 반려동물의 평화로운 공존법을 고민해볼 계획입니다. 첫 번째로 반려견과 동거하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짚어봤습니다.

반려동물과 동거, 안녕하신가요?
소음 민원 증가하는데 법규 미비
어린이 있으면 배설물 처리 주의
반려견, 사람처럼 정신질환 앓아

# 서울시 상암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심교(36·여)씨는 외출·귀가 때마다 옆집 강아지 눈치를 본다. 정씨만 보면 귀신이라도 본 듯 대차게 짖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개를 무서워한 정씨는 그때마다 치를 떨 만큼 공포를 느낀다. 주인에게 동영상을 찍어 보내며 항의했지만 “물진 않으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돌아왔다. 정씨는 “인기척을 안 내려고 조심스럽게 다닐 정도”라며 “물릴까봐 여름에도 긴바지를 입고 다녔다”고 토로했다.

살벌한 이웃 만드는 ‘층견소음’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개를 키우는 가구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웃집 개가 밤낮없이 짖는 소리,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에 접수된 반려동물 소음 관련 민원은 2016년 1503건에서 2018년 1617건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단순한 민원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울산 남구에서 개 소음을 견디다 못한 40대 남성이 이웃집에 들어가 주먹다툼을 해 유죄 선고를 받았고, 지난 4월 인천에서는 개 소음을 항의하던 이웃 주민이 견주에게 폭행을 당했다. 해외에선 옆집 개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이웃 주민을 총으로 쏴 죽인 사건도 있었다. 개로 인한 층간소음을 뜻하는 ‘층견(犬)소음’이란 단어까지 생겨났다.

중재 창구 마련이 절실하지만 현행법상 반려동물이 내는 소음은 규제하기 어렵다. ‘소음·진동관리법’에 해당하는 소음은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한 소리’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2016년 서울시가 층견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갈등조정관 제도를 내놨지만 실효성이 없어 8개월 만에 중단했다.

현재는 명확한 피해 사실과 근거를 제시해 민법으로 해결하거나 아파트에 사는 경우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근거해 관리사무소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실제 이웃집 개가 짖는 소리에 우울감·수면장애·편두통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은 사실을 입증해 개 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치료비·위자료 등 147만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내려면 어느 집 반려동물이 소음을 냈는지, 어떤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는지 입증해야 해 분쟁 해결이 쉽지 않다.

반려견과의 동거는 다른 가족 구성원과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결혼·임신·출산을 계획할 때 반려견을 계속 키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부부 사이에 생기는 입장차다. 임신 7개월 차인 주부 이영선(33)씨는 결혼 전부터 키우던 반려견을 친정으로 보냈다. 남편이 애기와 강아지를 한 공간에서 함께 키우는 것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혹시 애기를 물까봐, 병균을 옮길까봐, 알레르기를 일으킬까봐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켜야 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서유빈 교수는 “알레르기는 유전적 원인이 크므로 반려견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예방접종을 마친 개는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겨 질병을 일으킬 확률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반려견의 대변에는 사람에게 발열·구토 증상을 일으키는 캄필로박터균·살모넬라균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배설물이 보이는 즉시 치우고 배설물이 있던 자리는 식초와 세제로 말끔히 닦아 아기의 손·몸에 균이 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에게 물렸다면 상처 부위의 경과를 눈여겨봐야 한다. 서 교수는 “개에게 물린 부위를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부어 오르는지 잘 살펴야 한다”며 “붓거나 건드리지 않아도 아프다면 병원에서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면역력이 낮은 사람이라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개에게서 ‘카프노사이토파가’ 균에 감염되면 생명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반려견과 입맞춤을 하거나 살짝 물린 다음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CNN방송에 따르면 지난 8월, 미국 오하이오주에 사는 한 여성이 얼굴과 팔 등을 핥는 반려견의 애정 표현을 받은 후 통증과 어지럼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병원에 간 그는 카프노사이토파가에 감염돼 조직 괴사가 일어났고 결국 팔과 다리를 잘라야 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 병원균이 암 환자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치명적이며 감염 시 3~5일 내로 증상이 나타나고, 10명 중 3명은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분석했다.

‘나홀로 집’ 싫어하는 반려견

준비되지 않은 이들의 동거는 반려견에게도 아픔이 될 수 있다. 개들은 대체로 주인 없이 집 지키는 걸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반려견이 오랜 시간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1인 가구라면 주의가 필요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견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평균 4시간52분인데 1인 가구의 경우엔 6시간50분으로 두 시간가량 더 길었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개는 우울·침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영국 메트로지에 따르면 영국의 반려견 10마리 중 1마리가 우울·불안·공황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이혜원 바우라움동물병원장은 “반려견이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 즉 싫어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욕구가 없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며 “심하면 10~12시간 동안 식사·배변을 하지 않고 한 자리에만 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반려견이 이런 증상을 보인다면 동물병원에서 털·타액·대변 등을 통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검사해볼 수 있다. 이 원장은 “필요하다면 약물치료를 하지만 보호자의 노력으로도 개선할 수 있다”며 “방문·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하며 주인이 나가도 금방 돌아온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반려견과 사람 함께 살 때

장점
▶ 개 키우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마비 확률 21% 낮음
▶ 개 키우지 않는 사람보다 걸을 확률 77% 높음
▶ 개와 함께 있으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 24% 떨어짐

단점
▶ 물린 후 병균 감염되면 봉와직염 가능성
▶ 개의 ‘카프노사이토파가’ 병균에 감염되면 조직 괴사 가능성
▶ 백선증 걸린 개와 접촉하면 피부 사상균에 감염

>> 다음 주제는 ‘반려동물 장례문화의 변화와 갈등’입니다. 이와 관련한 사건·사고 제보를 받습니다. e메일(shin.yunae@joongang.co.kr)로 사진·동영상 등을 보내주세요.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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