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아줌마] 영 캐주얼 박람회, 테크노 축제 … 베를린은 젊음의 용광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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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독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최고'와 '명품'이다. 명차의 상징 벤츠와 BMW, 주방기기의 명품 휘슬러, 세계 유수의 전자회사 지멘스, 쌍둥이 칼로 유명한 헹켈…. 패션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보면 남성복 보스, 여성 토털 브랜드 아이그너 같은 고가품과 아디다스.푸마로 대표되는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가 있다. 하나같이 완벽한 품질과 소비자의 신뢰를 자랑하는 브랜드다. 반면 같은 독일이라 해도 베를린이란 이미지에선 그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해 왔다. 동.서독 통일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과 브란덴부르크문 등이 전부였다. 물론 이보다 훨씬 많은 아이템을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겐 그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베를린을 찾은 필자는 그간의 생각과 정보를 수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영 캐주얼 전문 패션 박람회인 '브래드 앤드 버터'를 취재한 뒤였다.

이름마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BBB(Bread and Butter Berlin)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멘스의 공장이었던 건물들을 활용한 전시회장은 활력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언뜻 보면 유럽에서 패션 감각에 일가견 있다는 젊은이들은 모두 모인 것 같다. 그 정도로 각양각색의 멋쟁이들이 넘쳐난다.

독일 베를린 전승기념탑 아래 설치된 테크노 음악 축제 ‘러브 퍼레이드’의 공식 무대 앞에서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에 저절로 흥을 돋우는 음악을 배경으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바비큐 파티,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며 누워 있는 사람들,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가운데 꼼꼼히 의상을 점검하는 디자이너들…. 여기저기 패션쇼장을 시간에 맞춰 가느라 진땀 빼고, 쇼가 끝나면 우르르 빠져나오기 급급한 파리.밀라노의 컬렉션과는 다른 분위기다. 자유로움과 젊음이 이곳을 확실히 '차별화'시키고 있었다. 베를린을 다시 보게 한 건 BBB뿐이 아니었다. 취재 마지막인 7월 15일에는 세계 최대의 테크노 음악 축제인 러브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그제야 테크노 음악의 메카로 불리는 베를린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브란덴부르크문과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에선 전 세계에서 온 내로라하는 DJ들이 40대의 대형 트레일러에서 음악을 틀어대고 있었다.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도 전이건만 사람들은 이미 흥분에 젖어 있었다. 심지어 시내 한복판에 있는 노점상들까지 러브 라디오라는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테크노 음악을 틀어댔다. 젊음의 에너지가 꿈틀대는 현장이었다.

BBB든 러브 퍼레이드든 이 시대 젊은이들을 왕성하게 불러들이고 있는 베를린이 부러웠다. 한때는 갈라졌고, 또 딱딱해만 보였던 독일의 이미지를 단숨에 극복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도 동대문시장이라는 훌륭한 영 캐주얼 인프라가 있고, 홍대 클럽이라는 활기찬 자산이 있다. 그런 면에서 서울과 베를린은 별개의 공간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비보이'(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들)라는 특급상품도 있다. 서울도 전통을 넘어 젊음을 내세운다면 아시아의 베를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베를린=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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