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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해외 연수시켜주겠다고 뽑아놓고 ‘일본 안돼’ 막은 국토부

중앙일보

입력

국토부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하겠다며 시작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의 홍보 포스터. [중앙포토]

국토부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하겠다며 시작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의 홍보 포스터. [중앙포토]

“정부 혁신의 하나”라고 강조하던 프로젝트였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가 ‘NPP(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 사업을 공개하면서다. 총 30여명의 청년 건축가를 뽑아 해외 설계사무소 또는 연구기관에서 선진 설계 기법을 배울 수 있게 보내주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건축계 노벨상이라 부르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하겠다는 포부가 당찼다. 1979년 상이 제정된 이래 한국인 수상자는 없다.

청년건축가 뽑아 해외 연수시켜 #프리츠커상 수상자 배출하겠다더니 #일본 연수 희망자에게 "다른 나라 가라"

연수 기간은 3개월~1년, 1인당 연수비로 3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국토부는 최근 1차 모집을 통해 총 11명의 연수자를 뽑았다. 이들의 연수지는 오스트리아ㆍ독일ㆍ스위스ㆍ중국ㆍ베트남이다. 그런데 공개되지 않은 다른 희망 연수지가 있었다. 일본이다.

한 지원자는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의 설계사무소로 연수를 가겠다고 지원해 선발됐지만, 국토부의 제지로 결국 연수지를 바꿨다고 한다. “지금 한ㆍ일 간의 분위기가 안 좋은 만큼 일본 연수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로 양국 간의 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라지만, 정부가 굳이 나서서 연수 제한 조치를 한 셈이다.

그런데 일본은 건축 선진국이다.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8명에 달한다. 1979년 상이 제정된 이래 미국과 더불어 역대 최다 수상국이 됐다. 올해 수상자도 일본 건축가(이소자키 아라타)였다. 건축가 시게루 반 역시 2014년 수상자다. 그는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난민을 위한 거처를 종이 튜브로 짓기 시작해 ‘종이 건축가’로 이름 날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학교 체육관에 모인 피난민을 위한 칸막이 시설을 설치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특정 계층을 위한 건축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회적인 건축이라는 화두를 던진 인물이다. 정치·외교 상황과 관계없이 배울 것이 참 많은 건축가임은 분명하다.

‘NPP’사업은 발표 당시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정부가 좋은 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게 국내 건축 환경 개선에 힘쓰지 않고, 해외 및 선진 건축 타령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권력자의 임기 내 완공을 위해 늘 쫓기고, 설계비 및 공사비 깎기에 여념 없는 후진적인 공공건축 발주시스템은 여전하다. 반면 일본은 정부가 앞장서서 건축 외교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 건축 프로젝트에 자국 건축가를 참여시키고 널리 소개하는 데 앞장선다.

논란이 일자 국토부는 ‘NPP사업’이라는 명칭은 슬쩍 지웠다. 이달 25일부터 시작하는 2차 모집에서는 ‘건축설계 인재육성사업’이라고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당초 이 사업비가 기획재정부가 부처별로 할당한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해외진출 지원 예산이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정책의 분명한 방향성 없이 혁신ㆍ프리츠커상과 같은 생색 내기 좋은 말로 채운 보고서용 사업이 되고 만 것은 아닌지. 더욱이 정부가 나서서 ‘반일’까지 외치고 있는 꼴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일’이지, 무조건 ‘반일’은 아닐 터다. 정권의 눈치만 보는 경직된 사고가 국토부 내에 팽배한 듯하여 우려스럽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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