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좀 잘할 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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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국정감사는 어쩐지 이상기류 속에 잡음과 부작용만 양산할 뿐 이렇다 할 실을 거두지 못하는 것 같다. 국감이 벌써 2주 째 접어들었지만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다같이 성실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양쪽간의 신경전이나 의원추태만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실망스런 국감진행은 물론 양측에 다 책임이 있다. 자료 제출에 있어 알맹이를 빼거나 그나마 늑장제출로 의원들이 검토할 시간여유를 못 갖게 하고 얼버무리기 식 답변, 현장모면 식 답변 등을 일삼는 정부측에도 책임이 크다.
그러나 지난 1주일의 경과를 보면 이런 행정부 측을 몰아세워 국정을 파악하고 정책 집행상황을 점검해야 할 국회 측의 감사 자세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인상이다. 우선 국정감사에 임하는 의원들의 성실성이 의심되는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법사위의 이른바「폭탄주」사건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추태지만 의원들의 사전준비 부족현상이 상위마다 현저하고 진위확인 없는 무책임한 폭로성 발언, 수준 낮은 질의에 불필요한 호통만치는 고압적 자세등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 일들이 속출했다.
무엇보다 국감을 당 인기와 연계시키고 국감의 목표를 공안정국의「분쇄」라는 식으로 설정하는 각 정당의 당략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의원들이 이런 당략에 따라 감사를 하다 보니 행정부에 타격을 가할 대형 이슈를 찾는데 급급하고 뒷감당도 못할 폭로성 발언이나 함으로써 국감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이런 한건 주의나 신문에 크게 보도될 거리를 찾는 방식으로는 국감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리고 공안사건이나 뇌물사건에 얽혔다 하여 국감을 행정부에 대한 역공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듯한 경향도 느껴지는데 이 역시 올바른 국감자세라고는 하기 어렵다.
여당의 경우 무조건 정부측을 옹호하는 수십 년 고질이 올해에도 여전히 드러났다. 행정부의 문제점을 덮어 주고 감춰 주는데 기여하는 것이 여당의 역할이라는 사고방식은 국회가 시녀소리를 듣던 권위주의시대의 생각이다. 여당이 말로는 민주화니, 의회활성화니 하면서 실제행동은 시녀처럼 하는 것인가.
정상적인 국감이라면 야당이 칭찬하는 일도 있어야 하고 여당이 비판하는 일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올해의 경우 여야 할 것 없이 국감에 임하는 기본자세부터 문제가 있는 터에 노골적으로 자기 사업체와 관련 있는 감사장을 찾아 나선 의원까지 있었으니 국회로서는 가장 존재가치를 과시할 국감기간에 오히려 국회위신이 손상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제 남은 기간이라도 각 정당과 의원들은 좀더 성실하고 품위 있는 자세로 국감에 임해주기 바란다. 대형 폭로나 인기를 노리지도 말고, 한의원이 12만 쪽에 달하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과욕의 자료요구나 증인채택도 하지 말며, 중앙의 정책목표가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났으며 그 과정에 비리나 문제점은 없는지 등을 따지는 본연의 자세로 임해주기 바란다.
행정부 측도 마찬가지다. 향응이나 폭탄주로 쉽게 감사를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올해의 경우 특히 일부 기관이 감사에 있어 뻣뻣한 자세를 취해 국회 측과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는 경향이 있는데 수감자세가 그래서도 안될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국회나 행정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국감을 가장 국감답게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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