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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간 사죄도 못 받았는데…100년 지난들 잊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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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윤동현

윤동현

위안부 모독 논란을 일으킨 일본 의류 업체 유니클로 광고를 패러디해 비판한 대학생이 광주광역시의 ‘의로운 시민상’을 받았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실어달라”며 국민청원을 제기하는 등 반일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영상 만든 #윤동현씨 ‘의로운 시민상’ 수상 #‘근로정신대 교과서에 싣자’ 청원 #“소송 원고 피해자 6명밖에 안 남아”

광주시는 5일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를 제작한 전남대 윤동현(25·사진)씨에게 지난 4일 의로운 시민상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지난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89) 할머니와 함께 문답 형식으로 제작한 영상을 올려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영상에서 양 할머니는 일본어로 ‘잊혀지지 않는다(忘れられない)’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출연했다. 이를 본 윤씨가 “할머니, 그 문구 완전 좋은데요!”라고 말하자, 양 할머니는 “난 상기시켜 주는 걸 좋아하거든!”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누구처럼 원폭이랑 방사능 맞고 까먹지는 않아”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양 할머니는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윤씨의 말에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고 답한다.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 8월 10일 ‘아베규탄! 광주시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 8월 10일 ‘아베규탄! 광주시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윤씨가 만든 영상은 지난달 15일 공개된 유니클로 국내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유니클로 후리스 : LOVE & FLEECE’ 광고에는 9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등장해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상에서 할머니는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었냐”는 질문에,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 못 한다”(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고 답한다.

하지만 실제 대사와 달리 한국어 자막은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의역돼 있다. 이는 1930년대 위안부 동원과 강제징용이 이뤄지던 80년 전을 지목해 조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유니클로 한국어 광고. [뉴스1]

유니클로 한국어 광고. [뉴스1]

이에 대해 양 할머니는 “강제징용 후 74년간 사죄도 못 받았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생겨 원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1944년 나주·목포·광주·순천·여수에서만 138명이 배를 탈 때나 온종일 매를 맞아가며 비행기를 닦아낼 때 일은 10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양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서 17개월간 강제징용 피해를 겪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5월 ‘학교를 보내준다’는 일본인 교장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시모노세키행 배를 탔다”며 “비행기를 만드는 미쓰비시 공장에서 1년 5개월을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텼다”고 했다.

양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29일 대법원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근로정신대 피해 당사자다. 대법원 판결 후 일본 정부는 손해배상 대신 수출규제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등 경제 보복에 나선 상태다.

이와 관련,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 교과서에 써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됐다. 자신들을 경기도 지역의 중학생으로 밝힌 청원자들을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피해자 중 근로정신대 할머니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이 없다”고 했다.

이어 청원자들은 “교과서에조차 언급되지 않아 많은 학생들이 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를 혼동할 만큼 인식이 부족하다”며 “(양 할머니 등은) 당시 일본 군수물품 공장에 징용돼 제대로 된 임금도 못 받고 하루 10시간 가까운 노동을 했던 피해자”라고 했다.

아울러 “원고 피해자 할머니 8분 중 2분이 돌아가셨고 나머지 할머니들도 힘겹게 싸우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학생들이 근로정신대 문제를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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