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의적 특별사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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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다음 달 광복절을 기해 또다시 대규모 특별사면.복권을 준비한다고 한다. 법치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듣지 못한 422만 명이라는 대규모 사면을 실시한 지 1년 만에 또다시 사면한다니 의아하기 짝이 없다. 우리 법체계나 사법 제도가 엉터리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 이상 법질서를 농락할 수 있겠는가.

정부.여당은 사면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주어진 권한이다. 헌법에는 사면과 관련해 분명히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 법학자들의 의견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을 구분할 이유가 없고, 우리 헌법의 근간인 3권 분립도 존립할 수 없다. 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엄격한 사면권 행사를 약속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자기(自己) 사면'이다. 집권자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측근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법은 설 자리가 없다. 닉슨이 도청죄를 사면해 버렸다면 헌법 파괴 행위로 비난받았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아들 김현철을 감히 사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계기마다 자신의 대선자금에 연루된 창업공신들을 줄줄이 풀어 주고 있다.

이번에도 열린우리당에서는 안희정씨 등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해 유죄를 받은 사람들의 복권설이 노골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들이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 낡은 정치 관행에 희생된 정치인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관련 법을 개정하든지,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구제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법은 엄격하게 만들어 놓고 대통령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만 면죄부를 준다면 법치주의라 할 수 없다.

건국 이후 실시된 90번의 사면 가운데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특별사면이 83번이다. 그것도 한 번에 수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껍데기만 특별사면이다.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도다. 관행화하고 있는 자의적인 사면권 행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법을 고쳐서라도 법질서를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