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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던 오바마도 '꼰대' 됐다…'캔슬 컬처'가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바마 재단이 주최한 대담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그는 미국의 신종 왕따 문화인 '캔슬 컬처'를 비판했다 논란을 불렀다. [AP=연합뉴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바마 재단이 주최한 대담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그는 미국의 신종 왕따 문화인 '캔슬 컬처'를 비판했다 논란을 불렀다.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때아닌 ‘꼰대’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달 30일 시카고 오바마 재단이 주최한 대담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국을 휩쓸고 있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를 비판했다. 캔슬 컬처란 미국에서 현재 10~20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21세기형 온라인 왕따 문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는 건 쉽다”며 “누군가를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정치적 활동(activism)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시태그를 달고 ‘난 이렇게 정치적으로 깨어있고 의식이 있다’고 자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훌륭한 사람들도 단점이 있고, 당신이 공격하려는 사람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각계는 대체로 “오바마가 할 말을 했다”는 반응이다. 오바마의 후계자를 꿈꾸는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오바마 대통령은 상대를 위한 배려심을 강조했다”(털시 개버드 하원의원) “오바마 말이 다 맞다”(앤드루 양 후보)는 트윗을 올렸다. 보수 진영에서까지 “잘했다 오바마(Good for Obama)”(보수 논객 앤 콜터)라는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CNN도 “오바마가 퇴임 후엔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고 있지만, 일단 그가 입을 열면 경청할만한 가치가 항상 있다”고 전했다.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를 휩쓸었던 미투(#MeToo) 운동 역시 광의로 보면 미국의 SNS 왕따 문화인 '캔슬 컬처'의 일부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미투 운동 지지자들의 시위 모습. [AFP=연합뉴스]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를 휩쓸었던 미투(#MeToo) 운동 역시 광의로 보면 미국의 SNS 왕따 문화인 '캔슬 컬처'의 일부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미투 운동 지지자들의 시위 모습. [AFP=연합뉴스]

문제는 밀레니얼 세대다. 캔슬 컬처의 주인공인 이들은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 오바마의 발언에 대해 이들이 “가부장적(paternalistic)”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NYT는 이어 이달 1일엔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어니스트 오웬스라는 프리랜서 언론인은 기고문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해 “오바마 전 대통령의 강연을 현장에서 들으며 숨이 턱 막혔다”며 “오바마가 어떤 세대를 대표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이번 발언을 통해) 그가 나이 많은 그룹에 속한다는 건 자명해졌다”고 주장했다. 한국식으로 풀자면 “오바마 전 대통령=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라는 주장이다.

기고문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3일 현재 댓글만 1760개가 달렸다. 추천을 다수 받은 댓글엔 “오바마가 늙었다는 표현 자체가 놀랍다” “어른들은 원래 아이들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캔슬 컬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래퍼 알 켈리 반대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캡처]

'캔슬 컬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래퍼 알 켈리 반대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캡처]

캔슬 컬처에 대한 논란 자체가 미국 사회에서 현재 캔슬 컬처가 갖는 민감도를 반영한다. NYT는 캔슬 컬처를 파고들기 위해 10대 다수를 취재한 기획기사를 지난달 31일 게재했다. 기사에 따르면 “You’re canceled”라는 말은 무시무시하다. ‘취소’라는 뜻을 넘어 공격 목표가 된 인물의 존재 자체를 해당 커뮤니티에서 삭제해버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 취급한다는 의미다. 코리아중앙데일리의 짐 불리 에디터는 "여기에서의 'cancel'은 '보이콧'이란 의미"라며 "굳이 'cancel'을 쓴 것은 '너를 내 세상에서 지우겠다'는 극단적 의미"라고 풀이했다.

캔슬 컬처의 주요 행위자들의 주 활동 무대는 인스타그램ㆍ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무기는 해시태그다. 유명인이든 동급생이든,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발언이나 행동을 한 사람을 왕따시킨다. 넓은 의미로는 최근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를 휩쓸었던 미투(#MeToo) 열풍도 이에 속한다고 NYT는 전했다. 한국 사회의 악플 공격 및 문자 폭탄 등도 광의로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미성년자 성범죄 등으로 체포된 래퍼 알 켈리(R Kelly)에 대해 "알 켈리의 입을 막아라(#MuteRKelly)"는 해시태그 및 페이스북·트위터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 캔슬 컬처의 대표적 사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단 강연에서 “최근 (하버드대 재학 중인 딸) 말리아와 얘기를 나누다 젊은 세대의 캔슬 컬처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남을 비판하는 건 쉽지만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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