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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퇴직연금 구할 '디폴트 옵션’ 도입 늦어지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42)

세상을 살아가는데에는 어떤 일이건 간에 그 속의 숨겨진 이해관계에 얽혀있다. [중앙포토]

세상을 살아가는데에는 어떤 일이건 간에 그 속의 숨겨진 이해관계에 얽혀있다. [중앙포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이해관계를 떠나 이루어지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이 무형적이건 유형적이건, 영리적이건 비영리적이건,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간에 대부분 이해관계 속에서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이해관계를 만드는 구성원 모두를 만족하게 할 방법은 아마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합의라는 것을 만들어 내면서 점차 발전되어 가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다. 합의를 위해서는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구성원들이 수용해 나아가면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될 것이다.

퇴직연금제에서 이런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동투자제도(디폴트 옵션) 아닐까 싶다. 퇴직연금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가입자의 적립금 운용으로 바람직한 수익을 창출해 노후를 따뜻하게 하는 것인데, 지금으로써는 그 기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적립금 운용이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로 되다보니  지난해 수익률이 겨우 1.88%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해관계자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자동투자제도이다.

자동투자제도란 상품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가입자를 위해 전문가가 관리하는 별도의 포트폴리오에 자동으로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올 상반기 금융투자협회의 조사에서 가입 근로자에게 이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직접 질의를 해 보았다.(아래 [표] 참조)

조사에 따르면 자동투자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근로자 10명 중 7명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필요한 이유로 바쁜 업무로 상품을 운용할 여력이 없음(38%), 상품관리(교체 등)에 자신이 없음(26%), 상품 선택의 어려움(20%) 등이 꼽혔다. 결국 가입자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적립금 운용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편 자동투자제도가 불필요한 이유로 지적된 자동투자로 인한 손실 문제(43%), 전문가의 포트폴리오의 신뢰성 부족(26%)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제도 도입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바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 내지 보상이다. 예컨대 비록 전문가가 운용하더라도 거시 경제나 세계 경제의 변동에 따라서는 일정 기간 손실이 날 가능성은 늘 존재하는데, 이때 누가 이를 보전하며 어떻게 그 보전이 받아들여질 수준으로 제시될 것인지를 해결해야 한다.

연금 선진국들이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아보면 해법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딱 맞지 않더라도 이를 참고해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제도를 만들 수 이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문제는 이 제도를 누가 적극적으로 또는 책임지고 도입할 것이냐다. 언제까지 원리금 보장에만 매달려 인플레이션 보전도 못 하는 수익률로 제도가 운용돼서는 안 될 노릇이다.

그렇다면 가장 책임 있는 주체는 이 제도로 가장 혜택을 보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자동투자제도의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이해관계자란 바로 퇴직연금사업자다. 그리고 감독 당국도 행정서비스 제공자로서 책임이 있다. 현재 이해관계 조정의 어려움으로 자동투자제도 도입을 미루면 결국 가입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나아가 자동투자제도의 도입으로 퇴직연금제도의 발전을 통한 공동의 선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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