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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탄핵위기? 한끼 행사 돈·사람 몰려 152억 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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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핼러윈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핼러윈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공개 일정을 잡지 않았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을 향해 “공화당을 파괴하려 온갖 노력을 하지만 우리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다. 민주당은 2020년 많은 의석을 잃을 것이고, 죽기만 바라고 있다”고 약을 올리는 트위터를 한 게 전부다. 그러곤 오후 6시38분 백악관 근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열린 ‘2020 하원 탈환’을 위한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 참석했다.

트럼프 후원 식사티켓 최소 4100만원 #대선 유세장엔 매번 2만~3만명 몰려 #지지자 “미국 위대하게 만들어 열광” #트위터 “정치광고 금지” 발표는 악재

네 시간여 동안 열린 비공개 행사엔 전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최대 큰손 후원자 315명만 참석했다. 1인당 저녁 식사 티켓 한 장이 최소 3만 5000달러(약 4100만원)에 팔렸다. 주최자인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측은 이번 행사로 1300만 달러(약 152억원)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행사 직전 호텔 로비에서 만난 스티브 올랜도는 루이지애나의 석유·가스 시추업체 앨리슨 머린의 회장이다. 그는 “트럼프는 친(親)기업적이고 에너지 산업 규제를 해제해 많은 기회를 열어 줬다”며 “세상에 공짜는 없고 열심히 일해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주자들의 탄소 배출 제로 ‘그린 뉴딜’ 정책을 겨냥, “민주당은 비용이 얼마나 들든 모든 걸 공짜로 주고 싶어한다”고 비판했다.

루이지애나주 법무부 장관인 제프 랜드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미국을 정말 위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대해서도 “그들은 단지 시끄러울 뿐 끊임없이 실패만 하는 사람들”이라며 “트럼프의 승리로 다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민주당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수사 청부를 이유로 탄핵을 추진한 게 트럼프·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불렀고, 아낌없이 지갑을 열게 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트럼프 캠페인 본부와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는 3분기 1억2570만 달러 포함, 올해 1~9월 3억800만 달러(3597억원)를 모았다. 은행 현금 보유액만 1억5600만 달러(1822억원)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선거운동 모금 비용의 두 배다. 민주당 주자 중 모금 1위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4배가 넘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보다는 연간 모금액은 8배, 현금 보유는 17배에 이른다.

미국 대선 선거자금 모금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미국 대선 선거자금 모금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트럼프 대선 캠프는 지난달 27일 이슬람국가(IS)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를 홍보하며 온라인 모금도 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 최고 사령관의 용맹한 리더십 아래 급진 IS 수장이 사망했다. 미국과 나머지 세계에 위대한 날”이라며 e메일과 문자 메시지로 35달러에서 2800달러까지 기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돈만 몰리는 건 아니다. 10월 10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11일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 17일 텍사스 댈러스 유세까지 “4년 더(four more years)”를 외치는 군중은 늘고 있다. 매번 2만~3만 명이 경기장 밖까지 몰린다. 민주당 주자들은 주로 소도시 타운홀 유세에 집중, 2만 군중을 동원한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USA투데이 여론조사(지난달 30일 발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민주당 주자와의 대결에서 41%대 39%로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지난 8월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후보가 거꾸로 41%대 39%로 트럼프를 앞섰었다. 공화당 지지자의 86%가 트럼프의 당선을, 민주당 지지자의 75%는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 공화당 지지층의 자신감이 더 크다는 뜻이다. 최근 40년동안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것은 1980년 지미 카터, 1992년 조지 부시 대통령 두 명뿐으로 경제 불황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백악관을 가는 열쇠들』의 저자로, 2016년 트럼프 당선을 예측한 역사학자 앨런 리트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경제는 집권당 재선 성공을 위한 13개의 열쇠 중 두 개(선거운동 기간이 불황이 아니어야 하고 실질 성장률이 전임자 8년 평균 이상)일 뿐”이라며 “재선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카리스마도 없고, 협소한 지지층에만 호소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한 트위터가 지난달 30일 모든 정치 광고를 금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년 미 대선을 앞두고 취한 조치로, 정치 목적의 광고성 콘텐트 배포는 제한한다. AFP 통신은 “트럼프 캠프 외엔 트위터 발표에 긍정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앨런 리트먼 교수의 백악관을 가는 13가지 열쇠. 그래픽=신재민 기자

앨런 리트먼 교수의 백악관을 가는 13가지 열쇠. 그래픽=신재민 기자

바이든 여론 1위? 박수·환호 드문 유세장 너무 안 뜬다

'바이든’ 연호도 없어, 모금액 4위···민주당서도 “트럼프 이길 수 있겠나”
워런은 진보색 강해 지지 확장 한계···트럼프와 맞대결 조사선 둘다 우세 

같은 달 25일 일라이자 커밍스 의원의 영결식에 참석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연합뉴스]

같은 달 25일 일라이자 커밍스 의원의 영결식에 참석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연합뉴스]

일요일인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소도시 더럼의 힐사이드 고교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76) 전 부통령이 각 주를 돌며 지역 주민과 만나는 선거 유세가 열렸다.

브라스밴드의 힘찬 연주와 함께 회색 수트 파란색 넥타이 차림의 바이든이 뛰어나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 껑충 뛰어 무대 오르기를 선보였다. 25분간 연설에서 바이든은 흑인사회를 치켜세우고, 주택·세금·건강보험·재생에너지 정책을 언급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친분까지 종횡무진 다뤘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불 지핀 백인우월주의를 없애려 출마했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850명 가운데 흑인이 많았다. 오바마와 8년간 일한 부통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막말과 파렴치한 행동을 더는 볼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 대통령은 오바마”라고 하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강점인 국정 경험을 과시했다. “중국 청두에서 시 주석과 식사하는데 ‘미국을 한마디로 정의하면’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가능성(possibilities)’이라고 답했다. 여긴 미국이고, 우리가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 연설 중 이따금 박수와 함성이 나왔지만, 관악대 연주 소리보다 작았다. 연설과 토론에 약하다는 평을 듣는 바이든의 약점이 드러났다. ‘바이든’ ‘대통령’ 같은 연호는 없었다. 종교 집회 같은 열기로 가득한 트럼프 유세와는 딴판이었다.

미국 대선은 내년 11월 3일 열린다. 앞서 2월 3일부터는 민주·공화 양당에서 전당대회 대의원 선출을 위한 아이오와 코커스가 열린다. 뉴욕타임스(NYT)·AP통신은 경선 흥행 저조로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선엔 바이든과 엘리자베스 워런(70)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 피트 부티지지(37)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등 18명(당초 24명 중 6명이 포기)이 뛰고 있다.

유세장에서 만난 ‘평생 민주당원’ 에릭 피터스는 “바이든은 훌륭한 후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대선 후보로 뽑을지 최종 결심은 안 섰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어떤 점이 훌륭한가.
“경험이 가장 많다. 나라를 위한 계획을 갖고 있다.”
선택 기준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트럼프는 너무나 끔찍한 대통령이다.”
호황이 유지되면 트럼프 재선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있다.
“그가 대통령직을 지킬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불법행위 증거들을 보라. 트럼프는 현행범이다.”

민주당은 탄핵 조사로 트럼프를 맹공격하고 있지만, 정작 자기 당 주자가 트럼프를 이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요즘 민주당 유력인사들이 모이면 경선 주자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 전 대선 후보,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같은 정치인뿐 아니라 미셸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까지 언급된다.

설상가상 3분기 정치자금 모금액에서 4위로 밀렸다. 샌더스 2800만 달러(약 327억원), 워런 2470만 달러(약 288억원), 부티지지의 1920만 달러(약 224억원)보다 적은 1570만 달러(약 183억원)다. 3분기 모금액보다 지출액이 더 많다.

여론조사에서 바이든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워런은 강한 진보 색채로 중도파와 정치 무관심 지지층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뉴욕 월가가 반기를 든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도 마찬가지다. 밀레니얼 세대인 최연소 부티지지는 여론조사 4위까지 올라왔지만, 백인 이외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수뇌부의 고민과 달리 유권자들은 후보들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원의 75%는 후보들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트럼프와 주요 민주당 주자의 일대일 가상 대결 설문조사에서도 트럼프가 모두 지는 것으로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2016년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한 선거에서 패배한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확실한 건 없다는 생각이 퍼졌다”고 전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더럼(노스캐롤라이나)=박현영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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