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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으로 씨 뿌린 ‘놀면 뭐하니’…유산슬 트로트로 꽃피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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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를 준비 중인 유재석. [사진 MBC]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를 준비 중인 유재석. [사진 MBC]

“유산슬 씨도 나중에 디너쇼 하실 거예요. 메뉴는 유산슬이고.”
유재석이 곧 새 앨범 발매와 함께 단독 콘서트를 여는 송가인을 부러워하자 MBC ‘놀면 뭐하니?’ 제작진은 이를 놓치지 않고 새 임무를 부여했다. 드럼 영재로서 8비트 씨앗을 뿌려 릴레이로 음원을 완성해 나가는 ‘유플래쉬’의 드럼 독주 콘서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뽕포유’의 목표를 못박은 것이다. 덕분에 예능인 유재석의 스케줄은 음악 일정으로 더 바빠졌다.

‘유플래쉬’로 천재 드러머 된 유재석 #37팀 참여해 세대·장르 통합 이뤄내 #트로트 가수 데뷔 프로젝트 ‘뽕포유’ #확장 실험 넘어 대중성 얻을까 관심

연이은 음악 프로젝트는 ‘무한도전’(2006~2018) 이후 김태호 PD의 새 도전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지난 7월 프로그램 론칭 이후 ‘릴레이 카메라’ ‘조의 아파트’ ‘대한민국 라이브’ 등을 이어 오는 동안 계속됐던 “대체 뭐하는 프로냐”는 궁금증을 해소해줬기 때문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악은 형식의 낯섦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소재이자 ‘무도 가요제’ 등을 통해 익숙하게 접해온 소재”라며 “옆으로만 넓어지던 확장이 목표가 생기면서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생기는 것은 물론 완결성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성장판 안 닫혀” 쑥쑥 크는 유재석

‘유플래쉬’ 프로젝트로 드럼 독주회를 연 유재석. 비틀스의 링고 스타처럼 스타일링했다. [사진 MBC]

‘유플래쉬’ 프로젝트로 드럼 독주회를 연 유재석. 비틀스의 링고 스타처럼 스타일링했다. [사진 MBC]

“평소 음원 차트 ‘톱 10’만 듣던” 유재석은 한 회가 다르게 쑥쑥 커나갔다. 2011년 ‘처진 달팽이’를 결성해 댄스곡 ‘압구정 날라리’와 발라드 ‘말하는 대로’ 등을 나란히 히트시킨 이적이 “성장판이 닫히지 않는다”고 칭찬한 것처럼 그동안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등 음악 예능에서 다져온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체리필터의 드러머 손스타에게 사사 받은 ‘비트 조물주’로서 협업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녹음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귀동냥을 하고 연습을 거듭한 결과 자칭 비틀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에 필적할 만한 천재 드러머 ‘유고스타’로 거듭났다.

이번 프로젝트는 2019년판 ‘내일은 잊으리’로 불릴 만큼 참여 뮤지션도 쟁쟁하다. 이적의 기타는 정동환ㆍ폴킴ㆍ헤이즈ㆍ픽보이 등 음원 강자 11팀이 참여한 ‘눈치’가 됐고, 유희열의 건반은 윤상ㆍ이상순ㆍ적재ㆍ그레이ㆍ다이나믹 듀오ㆍ리듬파워ㆍ마미손ㆍ크러쉬 등 12팀의 힙합 라인을 거쳐 ‘놀면 뭐해?’가 됐다. 같은 유재석의 비트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장르의 곡이 탄생한 것이다.

‘유플래쉬’에서 재즈 드러머 이상민,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 재즈 드러머 한상원이 함께 작업하는 모습. [사진 MBC]

‘유플래쉬’에서 재즈 드러머 이상민,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 재즈 드러머 한상원이 함께 작업하는 모습. [사진 MBC]

뮤지션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판을 키웠다. 유희열 팀의 중간 작업물을 콜드ㆍ김이나ㆍ자이언티 등 3팀을 거쳐 ‘헷갈려’로 뻗어 나갔고, 선우정아의 또 다른 작업물은 황소윤ㆍ닥스킴 등 6팀을 거쳐 ‘날 괴롭혀줘+못한 게 아니고’라는 곡이 됐다. 유튜브에 공개된 오픈 비트를 보고 참여한 UV가 어반자카파와 함께 만든 ‘디스 이즈 뮤직’이나 신해철의 미공개곡 ‘아버지와 나 파트 3’에 이승환과 하현우가 참여해 만든 ‘스타맨’까지 총 37팀이 참여해 6곡을 만들었다.

음악의 확장성을 한눈에 보여주면서 해외 제작사들의 관심도 뜨겁다. 현재 포맷 수출 및 공동 제작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오디션 ‘언더 나인틴’ 등을 연출한 임경식 PD나 입사 전 넥스트 멤버들로부터 악기를 배운 장우성 PD 등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제작진의 역할도 컸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동안 숱한 음악 예능이 있었지만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보여준 프로는 없었다”며 “이태윤ㆍ한상원 같은 관록 있는 선배들부터 지금 핫한 수민ㆍ윤석철 등 후배들까지 한자리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반면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유명인의 영향력과 재능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무도 가요제’와 별 다를 바가 없는 기획으로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진 못했다”고 짚었다. 방송 제작을 지원한 벅스에서는 상위권에 안착했지만 멜론 등 다른 음원 차트 성적은 100위권 안팎으로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박토벤·정짜르트…예능 새 얼굴도 발굴

‘뽕포유’를 통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거듭난 유재석. 태진아의 의상을 빌려 재킷 사진도 찍었다. [사진 MBC]

‘뽕포유’를 통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거듭난 유재석. 태진아의 의상을 빌려 재킷 사진도 찍었다. [사진 MBC]

두 달 반 동안 진행된 ‘유플래쉬’가 지난주 막을 내리면서 ‘뽕포유’가 어떻게 그 바통을 이어받을지도 관심사다. 제작진이 드럼 비트를 들고 ‘박토벤’ 박현우 작곡가를 찾아갔다가 트로트 가수 데뷔 프로젝트로 급선회된 9회 방송이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6.6%)을 기록한 만큼 파급력도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15분 만에 만든 ‘합정역 5번 출구’는 벌써부터 음원 공개 요구가 빗발치고 있고, 태진아ㆍ김연자ㆍ진성 등 선배 가수들도 ‘트로트 진흥회’를 결성해 물심양면으로 밀어주고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트로트는 기본적으로 너무 흔해서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현재 대중문화에서 소외된 소비 계층인 장년층을 소비 주체로 이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이 큰 장르”라고 전망했다. ‘작사의 신’ 이건우, ‘정짜르트’ 정경천 편곡가 등 여태껏 TV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 정 평론가는 “몇몇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으로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누적된 상황에서 이를 해소해주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뽕포유’에서 신곡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정경천 편곡가와 박현우 작곡가가 편곡 방향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진 MBC]

‘뽕포유’에서 신곡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정경천 편곡가와 박현우 작곡가가 편곡 방향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진 MBC]

‘유플래쉬’가 유재석이 제작진에게 하프를 건네받는 장면으로 끝나는 등 또 다른 음악 프로젝트가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김태호 PD는 “릴레이라는 큰 틀 안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며 “‘조의 아파트’는 인물, ‘대한민국 라이브’는 교통수단으로 확장된 것인데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반면 음악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는 유재석의 드럼을 시작으로 프로그램 타이틀 송을 전부 채워 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너무 갈 길이 멀어서 다른 분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노선을 변경하게 된 것”이라며 “영점 조준을 하기 위한 첫 발을 쏘고 난 후 타깃에 더 가깝게 다다를 수 있게 세부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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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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