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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역사 한우 떡갈비 vs 세 번 구운 돼지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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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오끼 - 전남 담양 

전남 담양에는 내로라하는 갈빗집이 많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떡갈비 전문점도 있고, 돼지갈비를 구워서 내주는 식당도 있다. 한우로 만든 떡갈비를 먹으면 고급 한식을 대접받는 기분이 들고, '가성비' 좋은 돼지갈비는 든든하다. 최승표 기자

전남 담양에는 내로라하는 갈빗집이 많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떡갈비 전문점도 있고, 돼지갈비를 구워서 내주는 식당도 있다. 한우로 만든 떡갈비를 먹으면 고급 한식을 대접받는 기분이 들고, '가성비' 좋은 돼지갈비는 든든하다. 최승표 기자

 먹고 걷고 먹고 걷고.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을 여행하는 단순한 방법이다. 맛난 음식 먹고 대나무 공원이나 조선 시대 원림을 산책하다 보면 하루 이틀이 금방 지난다. 예부터 담양에는 고급 한식 문화가 발달했다. 지금도 갈빗집이 많은 이유다. 지난달 24~25일 담양을 다녀왔다. 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갈빗집부터, 옛 죽물시장의 명물 국수, 담양 식재료를 활용한 디저트 카페까지 섭렵했다. 메타세콰이어길과 원림 정원에 슬슬 단풍이 들고 있었다.

 떡갈비는 동그랑땡이 아니다
 담양 하면 떡갈비다. 담양 대표 관광지 죽녹원 가는 길에 제일 많은 게 떡갈비 집 간판이다. 돼지고기·닭고기는 물론이고 오리고기로 만든 떡갈비도 있다는데, 자고로 정통 담양 떡갈비라면 100% 소갈비로 만들어야 한다.
 담양에서 소고기 떡갈비로 쌍벽을 이루는 집이 있다. 신식당과 덕인관. 신식당은 한국에 드문 ‘백 년 맛집’이다. 고(故) 남광주 여사가 1900년대 초부터 떡갈비를 구워 팔았고 지금은 4대째에 이른다. 박성율(46) 매니저는 “예부터 고위 공무원이 담양을 찾을 때면 손맛 좋은 증조할머니에게 식사를 맡겼는데 그때 주메뉴가 떡갈비였다”고 설명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이 갈비 다듬는 모습이 보였다. 두툼한 갈빗대에서 고기 바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박 매니저는 “소갈비 외에는 다른 고기를 일절 섞지 않는다”며 “일주일에 소갈비 800~1000㎏을 쓴다”고 말했다.

신식당은 떡갈비 1인분에 세 조각을 준다. 묵은지, 파김치와 궁합이 훌륭하다. 최승표 기자

신식당은 떡갈비 1인분에 세 조각을 준다. 묵은지, 파김치와 궁합이 훌륭하다. 최승표 기자

 떡갈비(1인분, 250g 3만2000원)를 주문했다. 갈빗대 얹은 두툼한 고기 뭉치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처음엔 퍽퍽한 느낌이었다. 그럴 수밖에. 우리가 흔히 먹는 떡갈비는 돼지고기·계란·밀가루 등을 섞어 훨씬 부들부들하고 기름지니까. 하나 엄밀히 따지면 이런 건 동그랑땡이나 햄버거 패티에 가깝다. 반면 신식당 떡갈비는 씹을수록 고소했고 소갈비 특유의 육향이 입안에 번졌다. 파김치, 묵은지와 궁합도 출중했다.

죽통밥 말고 ‘죽통 티라미수’

오는 12월 30일까지 '담양 국제예술축제'가 이어진다. 담빛예술창고부터 관방제림을 따라 다양한 야외 전시를 볼 수 있다. 프랑스 작가 마크 리무장이 담양천에 띄워 놓은 눈동자 모양 작품이 인기다. 최승표 기자

오는 12월 30일까지 '담양 국제예술축제'가 이어진다. 담빛예술창고부터 관방제림을 따라 다양한 야외 전시를 볼 수 있다. 프랑스 작가 마크 리무장이 담양천에 띄워 놓은 눈동자 모양 작품이 인기다. 최승표 기자

 담양은 걷기에 좋은 고장이다. 죽녹원·메타세콰이어길 등 전국적인 산책 명소가 있다. 2㎞나 이어지는 천연기념물 제방 길인 관방제림도 걷기에 좋다.
 마침 관방제림부터 옛 양곡 창고를 개조한 담빛예술창고까지 ‘담양 국제예술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이 줄지어 선 둑길을 걸으며 이색 설치미술을 감상했다. 담빛예술창고 카페에서는 화‧목‧토‧일요일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고색창연한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에스프레소 맛이 기묘하게 어울렸다. 축제는 연말까지 이어진다.

담양제과에서 먹은 대나무 티라미수와 팥 우유, 할머니 케이크. 모두 담양산 식재료로 만들었다. 최승표 기자

담양제과에서 먹은 대나무 티라미수와 팥 우유, 할머니 케이크. 모두 담양산 식재료로 만들었다. 최승표 기자

 관방제림에서 200m 거리에 디저트 카페 ‘담양제과’가 있다. 여기서 찍은 앙증맞은 사진이 SNS에 많이 올라온다. 담양제과는 2017년 손지현(31)‧박혜진(27)씨가 함께 창업했다. 대나무를 활용한 티라미수와 댓잎을 넣은 우유, 박씨 할머니가 농사지은 쌀로 만든 파운드 빵이 대표 메뉴다.
 머그잔 크기의 대나무 통에 담겨 나온 티라미수(1만1500원) 맛이 돋보였다. 서울에서는 치즈 맛이 거의 나지 않아 실망했었는데, 담양제과의 ‘죽통 티라미수’는 달랐다. 박씨가 “마스카르포네를 비롯해 여러 치즈를 아끼지 않고 넣는다”고 말했다.

참숯에 세 번 구운 돼지갈비
 담양에서 떡갈비 못지않게 알아주는 게 돼지갈비다. 담양에는 돼지갈비로 자웅을 겨루는 식당이 둘 있다. 담양읍에 있는 승일식당과 수북면에 자리한 수북회관 꿀꿀돼지갈비. 두 집을 놓고 선호가 확실히 갈리는데, 두 집만의 공통점도 있다. 첫째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서 내고, 둘째 주 메뉴(밥‧면 제외)가 돼지갈비 딱 하나다.

수북회관 꿀꿀돼지갈비는 오로지 갈비만 사용한다. 보통 갈빗집에서는 갈비 한두 점 빼고는 목살 같은 저렴한 고기 부위를 쓴다. 최승표 기자

수북회관 꿀꿀돼지갈비는 오로지 갈비만 사용한다. 보통 갈빗집에서는 갈비 한두 점 빼고는 목살 같은 저렴한 고기 부위를 쓴다. 최승표 기자

 담양 사람이 자주 찾는다는 수북회관에 들어갔다. 입구에 선 순간 대형 화덕에서 갈비 굽는 냄새가 훅 밀려왔다. 주문을 넣자마자 기름기 좔좔 도는 갈비가 나왔다. 2인분(1인분 250g 1만4000원)인데, 갈빗대가 여섯 대였다. 갈비보다 목살을 많이 쓰는 보통 갈빗집 같았으면 2대나 나왔을까.
 참숯에 세 번 구워서 내줬다는 갈비는 씹는 맛이 좋았다. 테이블 불판에서 굽는 게 아니어서 고기가 식는 단점이 있었지만 갈비는 역시 갈비였다. 목살이나 다른 부위에서 느낄 수 없는 쫄깃쫄깃한 육질이 두드러졌다.
 바쁘다며 손사래치던 김애숙(58) 사장을 겨우 만났다. 화덕 앞에서 진땀 흘리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초벌과 재벌은 직원이 나눠 맡는데, 마지막 굽기 작업은 오로지 김 사장 몫이라고 한다. 한여름엔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었다.
 “불과의 전쟁이지라. 보통 험한 일이 아닌디, 우리가 구워주는 게 훨씬 맛낭께 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수북회관과 담양읍 내에 있는 승일식당은 가게 입구 대형 화덕에서 고기를 굽는다. 강렬한 연기와 고소한 돼지갈비 냄새로 시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수북회관은 고기를 모두 세 번 굽는데 마지막은 김애숙 사장 몫이다. 최승표 기자

수북회관과 담양읍 내에 있는 승일식당은 가게 입구 대형 화덕에서 고기를 굽는다. 강렬한 연기와 고소한 돼지갈비 냄새로 시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수북회관은 고기를 모두 세 번 굽는데 마지막은 김애숙 사장 몫이다. 최승표 기자

산더미 같은 돼지 부속물
 이튿날 아침 오일장 ‘창평장’이 서는 창평면으로 향했다. 뽀글뽀글한 헤어 스타일의 할매들과 때깔 좋은 늙은호박, 단감과 알밤이 장터 광장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주름 깊게 팬 할배들이 소란스럽게 화투를 쳤고, 철장 속 오골계와 토끼가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정겨운 풍경이었다.

창평면에서 5·10일에 열리는 창평장. 마을 어르신들이 정성껏 기른 작물을 가져와 판다. 최승표 기자

창평면에서 5·10일에 열리는 창평장. 마을 어르신들이 정성껏 기른 작물을 가져와 판다. 최승표 기자

 장 보러 온 사람들은 어김없이 창평국밥을 한 그릇 비우고 간다. 돼지 부산물을 넣고 끓인 창평식 장터 국밥이다. 군청에서 ‘국밥거리’도 조성했는데, 요즘은 식당이 줄어 다섯 곳 정도가 국밥을 팔고 있다.
 시장 초입 식당 ‘창평국밥’으로 들어갔다. 원래 창평국밥 하면 내장 국밥을 일렀는데, 요즘은 내장‧머리‧순대국밥(7000원) 등으로 메뉴를 구분해 판다. 모둠국밥(8000원)을 주문했다. 여느 돼지국밥과 달리 국물이 탁하지 않았다. 국물을 한 숟갈 떴다. 심장·위·새끼보(자궁) 등 온갖 내장이 들었는데도, 잡내가 전혀 안 났다.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3대째 가게를 지킨다는 최재웅(29) 사장은 “아침마다 얼리지 않은 부속물을 가져와 그날 그날 소진한다”고 말했다.
 먹어도 먹어도 뚝배기 바닥이 드러나지 않았다. 최 사장은 “장 보러 온 손님에겐 절대 많은 양이 아니다”라며 “다른 동네 가서 국밥을 먹어보면 화 날 정도로 양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돼지 부속과 순대가 수북이 들어간 창평국밥. 평소 아침밥을 가볍게 먹는 도시 사람에겐 상당이 많은 양이다. 국물이 맑아 보이는데 맛은 깊고 진하다. 최승표 기자

돼지 부속과 순대가 수북이 들어간 창평국밥. 평소 아침밥을 가볍게 먹는 도시 사람에겐 상당이 많은 양이다. 국물이 맑아 보이는데 맛은 깊고 진하다. 최승표 기자

느티나무 아래서 호로록 호로록
 국밥이 안겨준 포만감을 꺼뜨리려 창평 ‘삼지내마을’을 느릿느릿 걸었다. 한국 최초의 ‘슬로시티’ 마을이다. 이 마을엔 간장, 쌀엿, 한과 같은 우리네 ‘슬로 푸드’를 만드는 명인이 여럿 있다. 마당에 1200개 장독대를 두고 명품 장을 만드는 기순도(70) 명인을 만났다. 종갓집 10대 며느리인 그는 47년째 장을 담그고 있다. 기 명인은 “창평면은 오래된 양반 동네여서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며 “잘 담근 장이야말로 좋은 음식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면에는 간장·쌀엿·한과 같은 먹거리를 만드는 명인이 많다. 사진은 간장 명인 기순도씨가 장독대를 닦는 모습. 최승표 기자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면에는 간장·쌀엿·한과 같은 먹거리를 만드는 명인이 많다. 사진은 간장 명인 기순도씨가 장독대를 닦는 모습. 최승표 기자

 담양을 떠나기 전, 마지막 끼니는 국수로 정했다. 멸치국숫집을 찾아 담양읍으로 돌아갔다. 담양시장과 관방천 쪽에 국숫집 7개가 줄 지어 있다. 그중 ‘할머니시장국수’를 찾았다. 40년도 더 된 집이란다.
 야외 느티나무 아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멸치국물국수(4000원)와 열무비빔국수(4000원), 약계란(2개 1000원)을 주문했다. 구수한 멸치 냄새 풍기는 국수를 한 젓갈 떠서 삼켰다. 특별하진 않아도 푸근한 맛이었다. 이번엔 비빔국수. 열무김치 한두 점과 함께 떠서 먹었다. 기분 좋게 매운맛이었다. 한약재 첨가한 멸치육수에 삶은 약계란을 으깨 비빔국수와 함께 먹었다. 든든했다.
 김영자(79)씨가 말던 국수를 이제는 아들 박기철(56)씨 부부가 만다. 박 사장은 “어머니 손맛을 기억하는 단골이 많다”며 “국수와 멸치는 수십 년째 한 곳에서만 사다 쓰고 부모님이 키운 농산물과 직접 담근 장을 쓴다”고 말했다.

할머니시장국수에서 먹은 멸치국수와 열무비빔국수, 그리고 약 계란. 관방천이 내려다보이는 느티나무 아래서 국수를 삼키면 마냥 평화롭다. 최승표 기자

할머니시장국수에서 먹은 멸치국수와 열무비빔국수, 그리고 약 계란. 관방천이 내려다보이는 느티나무 아래서 국수를 삼키면 마냥 평화롭다. 최승표 기자

 담양=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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