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구글·아마존 후원한 국제컴퓨터비전학회 가보니
한국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29일 영어와 중국어가 반반씩 울린 이곳은 7500명의 전 세계 인공지능(AI) 연구자와 전공생이 모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국제컴퓨터비전학회(ICCV) 2019 현장이다. 네이버·페이스북·삼성·현대차·화웨이 등 내노라 하는 70여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도 AI 인재를 잡기 위해 이곳에 부스를 차렸다. ICCV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AI 인재 7500명 집결하자 네이버·페북·현대차 달려와
ICCV는 1987년 시작돼 올해 18회 째를 맞는 인공지능(AI) 분야의 가장 권위있는 학회 중 하나다. 영상 분석부터 자율주행차·로봇,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시각지능(비전 AI) 관련 기업의 기술과 인력이 모이는 곳이다. 또 학회 제출 논문 상위 4% 만이 발표 기회를 갖는 장이다. 고급 AI 인력이 절실한 기업 입장에선 군침 도는 '큰 장'이 국내에 선 것이다.
네이버·현대차 "채용+기술데모가 목적"
이날 찾은 네이버 부스에선 AI 기술 체험자들에게 명함을 건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김선태 네이버 클로바 3D(차원) 아바타 프로젝트 리더는 "부스의 목적은 채용과 기술 홍보"라며 "수준 높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겐 인턴 지원을 유도하고, 명함을 준다"고 말했다.
채용 상담 카드가 눈에 잘 띄게 비치돼 있던 현대차 부스의 이재호 로보틱스랩 책임연구원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IT기업을 지향하면서 지난해 AI 조직 '에어랩'과 '로보틱스랩'이 생겼다. 구글·삼성 등 IT기업처럼 현대차도 AI 연구조직이 있다는 걸 AI 인력들에게 알리고, 업계 최전선과 기술을 공유하기 위해 부스를 냈다"고 말했다.
상위 4% 최고급 두뇌 섭외 뛰는 기업들
AI 기술 시연을 앞세운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AI 연구센터 부스와 LG전자·LG CNS·LG유플러스의 통합 부스에도 AI 인재에게 인턴십 등을 설명해주는 인사 담당자가 있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통상 이런 행사에는 기업마다 인사 담당자들이 나와 미래 인재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기업가치 5조원의 중국 AI 스타트업 센스타임과 페이스북·구글·퀄컴 등의 글로벌 기업 부스도 문전 성시를 이뤘다.
이수찬 국민대 전자공학과 교수(한국컴퓨터비전학회)는 "페이스북·현대차 등 기업들이 부스를 여는 가장 큰 이유는 채용 상담이고, 상위 4% 논문 발표장에는 기업 연구소가 최고급 인재를 섭외하기 위해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AI는 여럿이 힘을 합친다고 되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 많은 인재 하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수요 폭발하는데 국내 AI 전문가 400명 뿐?
실제 산업 현장에선 AI 핵심인재를 회사로 '모셔오기' 위한 해외 학회 출장 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28일 AI를 강조할 정도로 중요성은 인정받지만, 정작 국내 인재 풀은 무척 좁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네이버 AI 콜로키움에는 국내 연구인력 400여명이 참가했는데, 네이버는 이를 "전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국내 인력이 딱 그 정도 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도 학부생을 포함한 숫자다.
부스에서 만난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연구원은 "AI 인력 수요는 폭발하는데 국내 우수 인재는 의대로 선반출되고, IT 전공자들은 외국계 기업을 선호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깊이 있는 연구를 다져야 하는 학계도 당장의 실용적인 결과물에 매달리는 풍토라고 한다. 이 대기업 연구원은 "알파고 이후에야 딥러닝 열풍이 분 것처럼 한국에선 '쇼잉(showing)' 없인 연구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산학협력을 나갔을 때 교수와 연구원들이 성능 개선보단 제품에 AI를 접목해야 한다는 '쇼맨십 노이로제'에 걸려있는 게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