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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수장, 알카에다 '안방' 은신…부인이 장소 불고 군견이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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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알 바그다디

알 바그다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북동부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난 6일.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국방부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자칫하면 5년간 끈질기게 추적해 온 ‘거물’ 테러리스트를 잡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 ‘거물’은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8)다. 미군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기습 작전을 감행했고, 미군 특수부대에 쫓기던 알바그다디는 26일(현지시간)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의 한 마을에서 자폭으로 생을 마감했다.

알바그다디 체포작전 재구성 #시리아 철군 발표 후 서둘러 작전 #델타포스 헬기 8대 타고 기습 #부인 2명 숨지고 아이 11명 생포 #알바그다디는 지하터널로 피해 #막다른 곳 몰리자 아이 셋과 자폭 #트럼프 “자폭 전 훌쩍대고 비명”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당국은 2014년 6월 알바그다디가 IS 국가 수립의 기치를 내건 이후 5년 넘게 그를 추적해 왔다. 하지만 그를 체포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반전의 계기는 지난여름이었다. 미 행정부 관리는 NYT에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에 대한 놀라운 정보는 지난여름 체포한 그의 부인 중 한 명과 연락책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CIA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이라크와 쿠르드족 정보당국과 협력해 알바그다디의 활동 지역을 특정할 수 있었다. NYT는 “이때부터 미군의 최정예 특수부대인 델타포스가 알바그다디를 사살 또는 생포하기 위한 연습을 은밀하게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작전 실행은 쉽지 않았다. 알바그다디의 은신처가 있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은 미군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자바트 알누스라’(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옛 시리아 지부)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다. 더구나 이 지역 상공은 시리아와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다. 이들립 인근에는 러시아 공군이 사용 중인 흐메이밈 공군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군은 두 차례 이상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개시하려다 취소했다.

러시아가 비행 통제하는 지역서 작전  

지난 26일 미군 작전 도중 사망한 이슬람국가(IS) 창시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거주하던 시리아 북서부의 은신처 건물이 헬기 공습으로 초토화됐다. 왼쪽 사진은 지난 9월 위성에 포착된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원 안). [AFP=연합뉴스]

지난 26일 미군 작전 도중 사망한 이슬람국가(IS) 창시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거주하던 시리아 북서부의 은신처 건물이 헬기 공습으로 초토화됐다. 왼쪽 사진은 지난 9월 위성에 포착된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원 안). [AFP=연합뉴스]

하지만 이 같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이 장악하고 있는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군을 결정함으로써 향후 알바그다디 체포 작전에서 쿠르드족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게 돼버렸다. 나아가 미 국방부 관리들은 시리아에 투입된 미군 특수부대까지 철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철군 발표 일주일 뒤인 이달 중순쯤 알바그다디의 소재를 참모들로부터 보고받았고, 3일 뒤 체포 또는 사살 작전을 승인했다.

작전은 심야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미국 시간으로 26일 오후 5시(시리아 시간 오후 11시) 백악관 상황실에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 로버트 오브리엔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모인 직후다. 미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CH-47(치누크) 헬기 8대에 나눠 타고 이라크 에르빌 근처 군사기지를 이륙해 1시간10분을 날아 시리아 서부 이들립에 도착했다. 미군은 영공을 관리하는 러시아엔 구체적인 작전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비행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입구에 부비트랩, 벽 부수고 진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백악관]

알바그다디의 은신처에선 양동작전이 이뤄졌다. 델타포스 부대를 태운 헬기가 착륙하기 직전 다른 군용기와 헬기가 은신처 건물에 엄호 포격을 가했다. 은신처 입구에는 외부인의 침입에 대비해 부비트랩이 설치돼 있었지만, 델타포스는 정문을 우회해 건물 벽을 부수는 방법으로 내부에 진입했다. 대원들은 투항한 적들을 생포하고 일부는 사살하며 알바그다디 추격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알바그다디의 부인 2명이 숨졌고, 11명의 아이는 생포돼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도망치던 알바그다디는 군견에 의해 발각됐다. 그는 습격을 받은 직후 아이 3명과 함께 지하터널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지만 막다른 곳에 내몰렸다.

델타포스 대원들은 알바그다디를 포위한 뒤 투항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입고 있던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자폭하는 것이었다. 그의 곁에 있던 3명의 아이도 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설명하면서 “알바그다디는 자폭해 죽기 직전까지 도망치는 내내 훌쩍대고 울부짖고, 비명을 질러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사진 왼쪽). [사진 백악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사진 왼쪽). [사진 백악관]

미군은 그의 자폭 이후 남겨진 시신 일부에 대해 DNA 검사를 했고, 알바그다디의 것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2004년 2월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의 한 포로수용소에 구금돼 있던 ‘민간인’ 신분의 알바그다디의 DNA를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전 시작 2시간여 만인 오후 7시15분 현지 특수부대 사령관은 알바그다디 사망을 공식 보고했다.

중동 위성방송 알아라비아는 알바그다디의 친척인 모하메드 알리 사제트와의 인터뷰를 27일 보도했다. 사제트는 의견 충돌로 최근 알바그다디를 배신하고 이라크 당국에 알바그다디 관련 정보를 제공해 왔다. 사제트는 “알바그다디는 5명의 측근과 함께 시리아-이라크의 국경을 전전했고, 이동 시 늘 자폭 조끼를 입었다”며 “그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고, 언제 살해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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