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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언론자격’ 발언 파문···학자들 “언론통제 독재적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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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게만 해당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25일 오후 10시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一家)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시장은 “언론이 진실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무조건 쓴다. 나중에 무죄로 판결이 나오면 보도도 안 한다. 이게 언론의 문제”라고 했다. “(미국에선) 왜곡해서 (기사를) 쓰면 완전히 패가망신한다”면서 미국처럼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경우 형벌적 요소로 더 많은 배상액을 부과하는 제도다.

언론·법학·정치학자 5인의 견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5일 김어준씨(오른쪽)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 언론의 자유는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5일 김어준씨(오른쪽)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 언론의 자유는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박 시장은 이날 서울시 산하 tbs 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편향성 논란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박 시장은 자신과 김어준씨의 인터뷰를 객석에서 지켜보는 시민들을 향해 “여러분, 교통방송 주인이 누굽니까”라고 물었다. 김어준씨가 “박원순 시장이라고 해줘야 돼. 그래야 다음 말이 이어진다”고 하자, 박 시장은 “(교통방송) 사장 임명권자가 누굽니까. 그런데 나는 (3년 동안) 5번 밖에 못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지난 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도 “검찰에 이어 언론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수의 언론·법학·정치학자들은 박 시장의 발언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언론관과 배치되고, 언론 통제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서도 “인사·경영권을 가진 당사자가 출연하는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옳고 그름은 시민이 판단, tbs 1회 출연도 문제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언론 자유에 대한 박 시장의 발언에 대해 “언론 자유에 대한 개념을 잘 몰라서 한 말 같다. 무지(無智)의 소치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자유주의 언론관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철학을 전제로 한다. 즉, 틀린 내용도 있을 수 있고, 이는 사람들이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정부가 아닌, 시민이 하는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판단한다는 건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이건 모든 자유주의 국가가 갖고 있는 언론 철학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박 시장이 “tbs에 5번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말한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황 교수는 “단 한 번이라도 나오면 안 된다. 나온 자체가 잘못이다”며 “언론사 사장이 자신이 소유한 신문에 칼럼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언론 개혁? 말 잘 듣는 언론만 살려둔다는 건가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박 시장이 말하는 ‘자격’을 누가 정하나. 권력이 정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언론을 통제하려는 반민주적 발언”이라고 평했다. 이 교수는 박 시장이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이 말하는 언론 개혁엔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없다. 말 잘 듣는 언론은 계속 살려두고, 그렇지 않은 언론은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독재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밑바탕엔 ‘국민은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언론이 보도하는 대로 따른다’는 엘리트적 인식이 깔려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시장 같은 정치인들은 언론 개혁이란 이름으로 언론을 옥죄려 하지 말고, 언론 시장의 제도를 개선해 언론이 정론이란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언론 자유는 헌법이 보장, 행동 땐 위헌 소지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의 자유는 모든 국민은 물론이고, 모든 매체에도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다. 장 교수는 “어떤 언론 보도를 소비자의 선택과 판단으로 외면하거나 심각한 법률적 문제가 있을 때 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 얘기하는 건 언론에 대한 정치적 외압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어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말 자체로 책임을 묻긴 어렵겠지만, 박 시장이 만일 이런 말을 실현하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한다면 언론 자유 침해로 위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지지층 의식한 정치 보조, 중도층 반감살 수도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통일대학원장)는 박원순 시장이 이 같은 발언을 김어준씨 방송에서 한 점에 주목했다. 최 교수는 “친정부적으로 편향된 방송에 나가 이른바 정부가 요즘 얘기하는 ‘언론 개혁’에 정치적 보조를 맞춘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당 핵심 지지층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행보란 것이다. 박 시장이 언론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한 이날 낮에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출입기자 초청 행사에서 “(언론은) 과연 이게 진실인가, 과연 진실을 균형있게 알리고 있느냐 하는 스스로의 성찰이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박 시장이 조국 전 장관 사태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한 데 대해서도 지적했다. “언론은 제기된 여러 의혹들을 보도한 것이다. 언론의 수가 많으니 극히 일부 과장된 보도가 있었을 수 있지만, 이를 부각시켜서 마치 전체 언론이 부풀리기 보도를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과도한 발언이다”고 했다.
이어 “박 시장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이겠지만, 김어준씨의 프로그램에 나가 이런 얘기를 한 점은 오히려 중도층 유권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부 언론에 피해 본 개인 자격으로 말한 듯  

이진로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전 한국소통학회장)는 “박 시장은 언론의 자유가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보다 일부 허위 보도로 인한 부작용이 크다는 점에 주목한 것 같다. 두 시각은 다를 수 있고, 어느 하나가 맞고 다른 하나는 틀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이 일부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 자격으로서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일부 허위 보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도 균형있게 논의 되어야 한다. 사회적 모델을 정립해야 할 때다”고 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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