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받는 퇴직자라면 '앙코르 커리어' 어떤가요?

중앙일보

입력 2019.10.26 09:00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57)

한혜정(58) 씨는 사립대학교 행정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작년에 퇴직했다. 다행스럽게도 두 명의 자녀는 원하는 분야로 진출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있는 남편은 내년에 퇴직인데, 은근히 걱정되는 면이 있다. 지금까지는 서로가 직장생활에 바빠 크게 갈등은 없었는데, 남편이 퇴직한 후 집에 있게 되면 꼼꼼한 남편의 성격상 이것저것 간섭할 것이고, 한 씨는 성격이 치밀하지 못해 놓치는 것이 많아 부딪힐 일이 잦을 것 같았다. 남편이 퇴직하기 전에 뭐가 되었던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립대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작년에 퇴직한 한 씨. 재취업을 위해 고용센터를 찾았다가 중장년 퇴직자가 가운데 국민연금조차 못 받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깜짝 놀랐다. [사진 pixabay]

사립대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작년에 퇴직한 한 씨. 재취업을 위해 고용센터를 찾았다가 중장년 퇴직자가 가운데 국민연금조차 못 받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깜짝 놀랐다. [사진 pixabay]

재취업을 해보려고, 집 근처 고용센터를 방문했다. 한 씨는 퇴직 전 경험을 살려 회계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원했지만 상담 과정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한씨가 사립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사학연금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많은 중장년 퇴직자가 국민연금 40만~50만원을 받고 있으며, 이 마저 못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경제적으로 간절한 사람에게 직업을 알선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국민연금 수급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연금을 받고 계시니, 경제적인 도움이 되는 일자리는 일반인에게 양보하고, 봉사활동이나 사회공헌활동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더 도움될 거 같네요”라며 사회공헌일자리 사업을 소개했다.

한 씨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구나!” 경제적인 것을 뒤로 미루니 다양한 일자리가 보였다. 먼저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웃음 치료, 미술 치료, 레크리에이션 지도사, 사회복지사 등 자격증을 취득했다. 경기도 지역에 거주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행복한 노후 준비를 지원해주는 ‘찾아가는 노인 맞춤형 평생교육지원사업’의 노후 전문가로 선발됐고, 경로당 등 노인 시설을 방문해 어르신에게 노후연계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과 관련된 교육도 받았다.

요즘 미국에서는 ‘앙코르 커리어(Encore Career)’라는 용어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제임스는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였다. 그가 5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자산운용회사를 그만두고 비영리단체(NPO)로 이직했다. 하는 일은 동일했다. NPO에 모금된 기금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자산운용사에서 받던 급여에 비해 NPO에서 받는 급여는 형편없이 적었다. 하지만 하는 일 자체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고, 일반 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었다.

앙코르 커리어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시빅 벤처스가 정리한 용어로 인생 2막에서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소정의 대가를 받으며,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퇴직하거나 50대 후반의 중장년 시기에 현직에 있을 때 비해 급여는 많이 적지만 사회에 공헌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인생 2막에서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의미있고, 소정의 대가를 받으며,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뜻의 '앙코르 커리어'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 pixabay]

미국에서는 인생 2막에서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의미있고, 소정의 대가를 받으며,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뜻의 '앙코르 커리어'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 pixabay]

2014년 미국 비영리 단체인 앙코르(Encore)에서 시니어에 조사했더니 ‘인생 2막은 보다 즐겁게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싶다’는 열정과 목적을 지닌 시니어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더 많은 기간 동안 일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0대~70대의 9%에 해당하는 450만 명은 앙코르 커리어를 활용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약 60%는 5년 이내에 활동에 참석하겠다고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초창기 단계로 개념을 형성하는 시기다. NPO와 사회적경제 기업 등에서 재취업·창업·창직의 형태로 나타나며 정부나 지자체 정책과 연결된 파트너십도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2019년에 새로 시작된 ‘신중년 경력형 지역 서비스 일자리 사업’이다. 반퇴세대인 신중년의 경력을 활용해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예를 들면 금융권 퇴직자의 경우는 지역평생교육센터 등에서 노후재무설계교육을 할 기회를 부여하고, 홍보회사 퇴직자는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마케팅을 교육하고 컨설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사업이 시행 초기이고, 예산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운영 기간이 6~8개월로 짧다는 점이다. 하지만 앙코르 커리어와 관련된 개념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사업이 발전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