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보다 LNG 싸게 들여왔다고 3000억 때린 '황당 관세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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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E&S가 수입 다변화를 위해 2000억원을 들여 건조한 LNG 운반선. [사진 SK E&S]

SK E&S가 수입 다변화를 위해 2000억원을 들여 건조한 LNG 운반선. [사진 SK E&S]

“가스공사보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저렴하게 수입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어느 누가 승복할 수 있겠나.”

[현장에서]

관세청이 SK E&S·포스코에 부과한 세금 3067억원을 돌려주게 됐다. 1년 넘게 이어진 세금 환급 과정을 지켜본 에너지 분야 전문가는 이런 관전평을 내놨다. 그는 “에너지를 값싸게 수입한 기업에 표창장을 주지 못할망정 가스공사 수입단가와 비교해 세금을 매긴 게 문제”라며 “에너지를 들여오는 간단한 구조에 대한 이해만 있었더라도 이런 식으로 세금을 부과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앞서 조세심판원은 지난 18일 “관세청의 세금 부과가 잘못됐다”며 SK E&S에 대한 세금 부과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SK E&S는 관세청이 부과한 세금 1599억원을 돌려받게 됐다.

사연은 이렇다. SK E&S와 포스코는 지난 2004년 광양제철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LNG 발전소용 연료(LNG) 공급 계약을 영국 에너지 기업 BP와 맺었다. BP가 소유한 인도네시아 가스전에서 LNG를 수입하는 조건이었다. 도입 단가는 100만 BTU(1 BTU=252㎈) 당 3.5~4.1달러였다. 계약 기간은 20년으로 SK E&S와 포스코가 각각 60만t과 50만t을 수입키로 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지난 2017년 LNG 도입 단가가 시세보다 너무 낮다는 이유로 세금을 부과했다. 관세청은 가스공사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같은 가스전에서 수입한 가격(11~16달러)을 근거로 SK E&S와 포스코에 각각 1599억원과 1468억원의 세금(부가가치세+가산세)을 물렸다. 두 기업이 LNG 도입 가격을 낮춰 고의로 탈세를 했다는 게 관세청의 주장이었다. 이에 두 기업은 지난해 조세심판원에 각각 심판청구를 제기했고 지난 18일 SK E&S의 심판청구에 대한 결정이 나왔다. 포스코가 조세심판원에 제기한 심판청구에 대해서도 세금 환급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업계에선 이번 사건에 이목에 쏠렸다. 전례 없는 세금 액수도 이목을 끌었지만 이보다 관세청이 세금을 부과한 논리에 관심이 쏠렸다. 두 기업은 정부를 상대로 3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돌려받게 됐지만, 겉으론 드러내서 웃지 못하고 있다. 보도자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과세 당국에 밉보여 봤자 우리만 손해”라는 판단에서다.

에너지 기업 사이에선 관세청의 세금 부과가 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결정이란 비판이 들린다. 단적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에선 장기계약과 단기계약 사이의 도입 단가 차이가 확연하다. 장기계약을 맺을 경우 단가가 시장가격보다 낮으면 기업에 이익이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기업이 가격 부담을 떠안아야 해서다. 이런 이유로 에너지 기업들은 장기계약(20~30년)을 맺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위험 분산에 있어 장기계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과세 표준으로 삼은 가스공사의 LNG 도입 계약은 계약 기간이 4년으로 짧은 단기계약이었다. 반면 두 기업은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다. “빈약한 근거로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기업 발목을 잡은 대표 사례”란 비판을 정부가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을 두고 재계 관계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LNG를 공급하는 BP와 전화 한 통만 해도 두 기업이 정부에 신고한 단가에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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