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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펀드’ 후광 효과?…두달만에 900억 몰린 ‘필승코리아’

중앙일보

입력

고숭철 NH아문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NH아문디자산운용]

고숭철 NH아문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NH아문디자산운용]

 침체된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에 돈이 몰리는 펀드가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입으로 화제가 된 ‘필승코리아’ 펀드다.

[인터뷰]고숭철 NH아문디자산운용 CIO #설정 후 2개월 수익률 7.18%로 시장과 비슷 #“믿는 건 정부 정책보다 대기업 국산화 약속” #대기업 뺀 소부장 기업에 전체 50% 투자해 #1~2년 내 투자 기업 성과 나올 것으로 기대 #

 NH아문디자산운용이 지난 8월 출시한 이 펀드는 소재ㆍ부품ㆍ장비(소부장) 관련 기업에 투자한다.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소부장 국산화 필요성이 커진 데 발맞춘 것이다.

 해당 펀드가 화제가 되며 자금이 몰려든 건 문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까지 가입 행렬에 나서면서다. 펀드 설정(8월14일) 두 달여만인 지난 17일 기준 901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같은 기간 수익률은 7.18%로 시장(코스피 상승률 7.2%)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대통령의 후광 덕인지 자금이 몰려들며 각종 뒷말에 시달리기도 했다. 애국심에 편승한 ‘애국 펀드’라는 이야기부터 ‘관제 펀드’ 논란까지 일었다. “정책 약발이 떨어지면 수익률도 떨어질 것” “소부장 기업에 투자한다더니 삼성전자만 잔뜩 담아놨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해당 펀드를 만들고 운용을 총괄하는 고숭철 NH아문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난 17일 만나 펀드에 관한 이야기와 투자 전략 등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했다.  
 “펀드를 만들 때 대통령이 가입하면 어떡하냐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8월20일) 진짜 그렇게 됐다. 대통령이 가입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지만 사실 운용사는 고객이 누군지 모른다. 처음에는 ‘와’ 했지만 대통령이나 장관이 가입한다고 해서 다른 펀드보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건 없다. 펀드 고객 중 한 명일 뿐인 만큼 처음 구상한 투자 전략대로 끌고 나갈 것이다.”
 소부장이라는 극일(克日) 정책을 테마로 잡은 탓에 ‘애국 펀드’로도 불린다.  
 “일본이 7월 초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한 뒤 위기감이 커졌지만 관련 기업이 내실화를 이루면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부장’의 최종 사용자(엔드 유저)가 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소부장 기업이 투자하고 국산화해도 엔드 유저가 써줘야 실적이 나온다. 여기에 정부가 정책 자금까지 지원한다고 나선 것이 트리거(기폭제)가 됐다.”  
 정책 약발이 떨어지면 펀드 수익률도 부진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 정책은 촉매 역할을 했다. 과거에 소부장 기업 탐방을 가보면 대기업 테스트가 진행 중이라며 곧 대박 날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납품으로 이어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품질 테스트를 해야 하고, 이후에도 대량 생산이 적합한지에 대한 테스트를 할 수밖에 없다. 희망 고문만 당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어떻게든 투자를 계속한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실제로 달라진 분위기도 느껴진다. 사실 정부 정책보다 우리가 믿는 건 대기업의 투자 약속이다. 이르면 1년 미만에서 2년까지 보면 투자 기업들에서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고숭철 NH아문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NH아문디자산운용]

고숭철 NH아문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NH아문디자산운용]

 투자자들은 얼마나 보고 투자해야 하나.  
 “대통령이 가입할 때 답을 줬다. 판매사 직원이 ‘운용 기간을 얼마나 할까요’라고 묻자 ‘길게 보고 해야겠죠’라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주식형 펀드는 주식 시장이 저평가됐을 때(부진할 때) 투자해야 돈을 버는 데, 고객들은 시장이 좋을 때만 관심을 가져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이 펀드는 특이하게 시장이 부진할 때 설정됐는데, 대통령 홍보 효과로 가입자들이 많아졌다. 주가지수 자체가 낮을 때 설정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펀드의 성공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부장 펀드라더니, 대기업에만 투자했다는 비판도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소부장 기업이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0%밖에 안된다. 우리가 소부장 기업에 집중해서 투자하겠다는 건 100%를 투자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총 비중보다 월등히 많이 투자한다는 의미다. 소부장을 강조해도 ‘필승코리아 펀드’는 기본적으로 주식형 펀드다. 현재 대기업을 포함한 소부장 밸류체인에 75%를 투자했고, 대기업을 빼더라도 50%나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잔뜩 담아놨다는 건 잘못된 정보다. 초기에는 소부장 기업 투자 비중이 적었다. 이유가 있다. 7월에 소부장 기업을 정책적으로 키운다는 뉴스가 나와 주가가 다 올랐다. 때문에 매수 타이밍을 잡았던 것이고, 이제는 포트폴리오가 안정화됐다. 앞으로 소부장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점차 늘려나갈 것이다.”
 소부장 기업에 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펀드 투자는 직접 대출하는 식으로 해당 기업에 자금을 대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펀드가 생겨서 해당 기업에 투자하다 보면, 다른 투자자들도 그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적정 가치를 찾아주는 데 우리 펀드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자 기업들의 임직원들도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기는 등 전반적인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운용보수 50%를 기초과학 분야 공익기금으로 기부한다.
 “농협이 협동조합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펀드에서도 한다. 소부장 연구자나 학생들에게 지원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앞으로 사회적 책임투자(SRI)가 많이 강조될 것이고, 고객들도 그런 펀드에 기꺼이 투자하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펀드가 종목을 선정할 때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평가 지표도 참고하도록 할 것이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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