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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전시 왜 없나 따지기도" 文정부 역풍맞은 대통령기록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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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어진동 대통령기록관 전경. 김기환 기자

세종시 어진동 대통령기록관 전경. 김기환 기자

논란의 ‘대통령기록관’에 다녀왔다. 역대 대통령의 문서ㆍ사진ㆍ영상ㆍ선물 등을 전시한 곳이다. 최근 기존 대통령기록관과 별도로 2022년 문재인 대통령 개별 기록관을 건립한다는 보도→문 대통령이 “지시하지도 않았고, 원치 않는다”며 불같이 화냈다는 보도→지난 8월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개별 기록관 설립 예산이 포함된 안건을 심의ㆍ의결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연말 리모델링을 앞둔 기록관을 본지 기자가 현장 취재했다.

[주말PICK]

기록관에 빠진 세 글자 ‘박근혜’

기록관은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있다. 세종호수공원 바로 앞에 선 지상 4층, 지하 2층(연면적 3만 1219㎡) 규모 건물이다. 사업비 1094억 원을 들여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월 개관했다. 15일 오후 1층 기록관 입구에 들어섰다. 가로 1m, 세로 1.5m 크기 유리판 8장으로 만든 역대 대통령 11명의 존영을 지나 영상관에 들어갔다. 기록관의 역사와 소장물, 의미 등을 소개한 5분 분량 영상 도입부는 역대 대통령을 소개하다 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기록관 3층에 역대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시절 받은 선물은 없다. 김기환 기자

기록관 3층에 역대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시절 받은 선물은 없다. 김기환 기자

기록관 곳곳에 유독 ‘박근혜’ 전 대통령만 빠진 점이 눈에 띄었다. 3층 ‘대통령 체험관’에는 재임 기간 중 세계 각국을 방문한 역대 대통령이 각국 정상으로부터 받은 도자기ㆍ접시ㆍ조각품 등 선물을 전시했지만 역시 박 전 대통령 관련 전시물은 없었다.

4층 ‘대통령 역사관’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취임식 동영상이나 역대 대통령 외교 성과도 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끝으로 박 전 대통령을 빠뜨렸다. 복도를 지나는 길에 걸린 역대 대통령 친필 휘호도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박정희)’나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노무현)’ 같은 휘호를 대통령마다 2~3점씩 걸었지만, 박 전 대통령만 빠졌다. 기록관 관계자는 “왜 박 전 대통령 전시물은 없느냐며 따지는 관람객이 많다”고 말했다.

4층에 역대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걸려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휘호는 빠졌다. 김기환 기자

4층에 역대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걸려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휘호는 빠졌다. 김기환 기자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만 뺀 기록관을 두고, 현 정부가 개별 기록관 건립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한 전직 기록관장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거쳐 중도 하차했다 하더라도 부끄러운 역사의 한 부분”이라며 “탄핵당한 지 2년이 지났고, (박 전 대통령 관련 전시물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는데도 여전히 빠뜨려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박종철 기록관 기록서비스과장은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 지 얼마 뒤에 기록물을 전시해야 하는지 규정은 없다”며 “연간 유지보수비가 3000만원에 불과해 반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영상 홀로 시청”… 썰렁한 관람객

3층 대통령 집무실 모형, 김기환 기자

3층 대통령 집무실 모형, 김기환 기자

기록관이 여느 전시관과 달리 한적한 점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2시간 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방문한 외국인 사절단이 기록관을 찾았다. 순수 관람객은 2명이었다. 관람객보다 안내원 숫자가 더 많았다. 영상관에선 48명 규모 객석에 기자 홀로 앉아 홍보 영상을 시청했다.

기록관 측은 일반인 관람을 위한 전시 목적도 있지만, 기록을 보존하는 역할도 크다고 강조했다. 박종철 과장은 “아무래도 세종에 있다 보니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진다”면서도 “일평균 방문객은 500명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공간 부족’ vs. 국민 세금 들여야 하나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통령기록관 관련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통령기록관 관련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현 정부가 개별 대통령 기록관을 추진한 근거는 ‘공간 부족’이다. 기록관 측은 “현재 기록관 서고 사용률이 83.7% 수준이라 추가 수용 능력이 대통령 1~2명 정도 기록물 분량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기록물 증가 추세가 예상을 뛰어넘어 보존 공간이 부족한 데다, 기록관 증축 비용보다 개별 대통령기록관을 짓는 게 예산이 덜 든다는 논리다. 개별 대통령기록관이 활성화한 미국 사례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준공한 지 4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공간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록관이 사용률을 집계한 서고는 집기류 등이 있는 박물ㆍ선물 서고”라며 “이외 서고 사용률은 비밀문서 50%, 일반문서 42%, 시청각자료 37.3%에 불과해 여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개별 대통령 기록관 중 정부가 세금을 들여서 만든 사례는 한 곳도 없다”고 덧붙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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