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비 들고 화마와 싸우려면 체력 기본” 23kg 체중 감량한 몸짱소방관

중앙일보

입력

딸과 함께 가정의 달 5월을 장식한 김성일 진압대원(34ㆍ구로소방서)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딸과 함께 가정의 달 5월을 장식한 김성일 진압대원(34ㆍ구로소방서)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소방관 업무는 체력 없이는 힘들어요. 오늘 새벽 1시에도 3층 높이 건물 공사장에 불이 나서 출동했는데 자동차 두 대가 입구를 막고 있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호스 10개를 이어붙여서 150m 되는 호스를 어깨에 메고 3층까지 올라갔습니다. 진압대원의 숙명이지요.”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김성일(34) 구로소방서 진압대원의 목소리에서 고단함과 책임감이 그대로 전해왔다. 18일 이뤄진 중앙일보와 김 대원의 전화 인터뷰는 약속 시간보다 40여 분 늦게 시작됐다. 김 대원은 “새벽에 출동하고 퇴근하니 4시였다. 너무 피곤해 잠이 들어버렸다”며 멋쩍게 말했다.

김 대원은 지난 5월 열린 제8회 몸짱소방관 선발대회에 최우수상을 받아 내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제작하는 달력의 모델이 됐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김 대원을 포함해 15명이 모델로 등장하는 2020년도 ‘몸짱소방관’ 달력을 이날부터 내년 1월 19일까지 판매한다. 판매 수익금 전액은 중증화상환자 치료비로 지원한다.

김 대원은 “체력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운동해왔다”며 “이왕 운동하는 김에 몸짱소방관 대회에 나가 딸과 함께 화보도 찍고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딸바보’ 5월의 소방관 “연습부터 아이와 함께했죠”

제8회 몸짱소방관 선발대회에 선발된 김성일 진압대원(34ㆍ구로소방서)과 그의 가족들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제8회 몸짱소방관 선발대회에 선발된 김성일 진압대원(34ㆍ구로소방서)과 그의 가족들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김 대원에게는 세 살짜리 딸이 있다. 김 대원은 귀여운 꼬마 소방관과 함께 달력에서 ‘가정의 달’ 5월을 장식했다. 그는 “연습부터 딸과 함께했다”며 “대회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코너에서는 딸과 와이프가 함께 참여해 준비하기도 했다”며 “딸 생일이 5월인데 딸에게 좋은 생일 선물을 만들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원은 1년 반 전부터 대회를 준비했다. 하루에 2시간 이상씩 운동을 하고 대회가 가까워질 때는 시간을 더 늘렸다. 평소 100㎏까지 나가던 체중도 식단 조절로 감량해 180㎝에 77㎏ 몸을 만들었다. 그는 “대회가 끝나니 다시 체중이 불어났다”고 웃으며 말했다.

7년 차 소방관인 김 대원은 가장 보람 있던 기억으로 “올해 초 작업 도중 심정지로 갑자기 쓰러진 70대 경비원을 CPR(심폐소생술)로 살려 ‘하트세이버 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트세이버란 ‘심장을 지키는 사람’이란 뜻으로 심폐소생술과 자동제세동기(AED)를 이용해 심정지 상태에 이른 사람을 소생시킨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김 대원은 “구급대원이 아닌 진압대원도 인원이 모자라거나 할 때 출동을 해서 응급처치를 하도록 배운다”며 “불 끄는 일을 주로 하다 응급을 위해 배웠던 CPR로 심정지 환자를 내 손으로 살린 게 뜻깊었다”고 회상했다.

간호사 경험 살려 구급대원 “현장서 보람 더 커”

선발대회에서 1위를 한 이광용 구급대원(45ㆍ동대문소방서)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선발대회에서 1위를 한 이광용 구급대원(45ㆍ동대문소방서)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선발대회에서 1위를 한 이광용 구급대원(45·동대문소방서)은 나이로도 1등인 가장 연장자였다. 하지만 이 대원은 간호사 일을 하다 온 풋풋한 3년 차 소방관이다.

10년간 간호사로 근무했던 이 대원은 “병원에 있을 땐 선처치가 이뤄지고 난 다음 후처치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상상만 했을 뿐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소방구급대원으로 현장에서 직접 위급 환자들을 살리다 보니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 대원은 2월부터 대회를 준비했다. 하루에 두 번 총 6시간씩 꾸준히 운동했다. 식이 조절도 함께해 80㎏대 초반이던 몸무게도 63㎏까지 뺏다. 1등으로 표지를 장식한 이 대원은 몸 곳곳에 튀어나온 굵은 혈관이 특징이다. 그는 “20대부터 운동을 꾸준히 오래 하면 혈관이 커지고 도드라지게 보인다”며 “균형미와 근육 크기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원은 평소에도 기부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15년째 마리미투라는 이름의 방글라데시 소년을 3살부터 후원 중이다. 이 대원은 “술 한잔 안 먹으면 아이 한명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후원했다”며 “해마다 커가는 모습 사진과 편지를 보내올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증화상환자들에게도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이 크고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다. 뒤에서 응원하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음과 삶 경계 있는 구조대원 “누군가 위해 일하는 것 뿌듯”

임용식(29ㆍ여의도수난구조대) 구조대원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임용식(29ㆍ여의도수난구조대) 구조대원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3년 차 소방관인 임용식(29·여의도수난구조대) 구조대원은 이전에 함께 일하던 선배의 화상 흉터를 보고 몸짱 소방관에게 나가게 됐다. 임 대원은 “어느 날 같이 출동을 했는데 손 색깔이 자줏빛이었다. 화재현장에서 입은 흉터라고 했다”며 “흉터를 보니 많은 고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화상 환자들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 대원은 슈트를 입고 표면공기공급잠수기구를 든 채로 달력의 7월을 장식했다. 특전사 생활을 하다 소방관이 된 임 대원은 현재 특수구조단 여의도수난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근무지 특성상 마포·서강대교 등에서 투신하는 이들을 많이 마주한다.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유쾌한 일이 별로 없지만 한번은 선제 출동해서 투신한 여성분을 살린 적이 있어 보람 있었다”며 “얼마 전 철인 삼종경기 실종자를 못 찾았을 때는 매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의 왼쪽 팔에는 문신이 새겨있다. 문신은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라는 뜻과 아버지·어머니 동생의 주민등록번호 숫자 조합이 새겨져 있다. 임 대원은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족의 소중함을 기억하기 위해 새겼다”며 “아버지는 소방관 된 것을 못 보고 돌아가셨지만 만약 알았다면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원은 대회를 위해 하루에 5~6시간 운동을 해 175㎝ 63㎏ 몸을 만들었다. 그는 “주간 근무 때는 퇴근하면 운동을 하고. 야간근무 후 아침에 퇴근을 해도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며 “어차피 혼자서도 운동을 하는데 달력을 판매하면 화상 환자들 치료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열린 제8회 몸짱소방관 선발대회에서 선정된 소방관 15명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올해 5월 열린 제8회 몸짱소방관 선발대회에서 선정된 소방관 15명 [사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임 대원은 저소득층 중증화상들에게 “매우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항상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