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침해 vs 합의 위반…LG·SK 배터리 ‘상처뿐인 전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57호 13면

2차 전지(배터리)를 둘러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현지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자사 배터리 핵심 소재인 안정성 강화 분리막(SRS)의 미국 특허 3건, 양극재의 미국 특허 2건을 SK 측이 침해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재와 부품 등의 미국 내 수입 금지까지 요청한 가운데 ITC는 지난 4일(현지시간)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길어지면 경쟁국만 유리한 소송 #2014년 합의한 ‘우선권’이 쟁점 #미국 ITC, 이달 초 조사 개시 결정 #소 취하 안 하면 내년 하반기 결론

LG화학 관계자는 “미국에 수출된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특허를 명백히 침해했으며, SK 측이 부당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2014년 양사가 분쟁 끝에 10년간 소송하지 않기로 합의했던 특허 일부가 이번 소송에 포함됐다”면서 “합의 위반이며 명분 없는 소송”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합의서에 권영수 LG화학 사장(현 LG그룹 부회장)과 김홍대 SK이노베이션 사장 명의로 특허번호 ‘KR100775310(KR310)’ 등에 대해 국내외에서 모두 쟁송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KR310은 LG화학이 국제특허로 미국에서 출원한 ‘7,662,517(US517)’과 우선권 번호가 같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특허인데 이번 소송에 포함한 것은 합의 위반이라는 논리다. 우선권은 발명자가 여러 국가에서 특허를 출원할 때 물리적 거리 등의 한계로 특허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게 하는 제도다. LG화학 측은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특허 권리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특허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익명을 원한 한 변리사는 “미국 관점에서 동일한 특허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고 말한 반면, 다른 변리사는 “특허 권리 범위가 다르다는 게 동일한 특허가 아니라고 단정될 근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하반기는 돼야 결론이 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국익 우선의 관점에서 원만한 화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국내 기업 간 분쟁이 길어질수록 중국과 일본 같은 배터리 산업 경쟁국에만 유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소송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두 기업 간 법적 분쟁의 연장선에 있다. LG화학은 지난 4월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과 기술 침해 혐의로 ITC 등에 제소했다. 이후 SK이노베이션도 지난달 초 미국에서 LG화학과 LG전자를 상대로 특허 일부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정부의 갈등 중재가 필요하다는 정치권 안팎의 지적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고민 중이다. 그는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국정감사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서로 싸우고 소송하는데 이걸 그냥 방치하면 되느냐’는 자유한국당 출신 이종구 산자위원장의 질문에 “(민간기업 송사라) 어느 시점에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