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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30년 간 여성의 꿈을 착취한 남자, 와인스타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코리아 ]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코리아 ]

[김진아의 나는 내 재미를 구할 뿐]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가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보도를 터트렸다. 미국 #MeToo(나도 고발한다) 무브먼트의 시작이다. 2016년 10월, #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한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성폭력 폭로가 시작된 지 1년 뒤의 일이다. 2019년 현재도 뉴욕타임스는 추가 피해자 증언을 비롯한 후속 기사를 거의 매일 내보내고 있다. 실제 피해 여성의 숫자는 100명을 넘어간다.

다큐멘터리 <와인스타인(원제: Untouchable)>은 다수의 피해자와 과거 동료, 기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하비 와인스타인의 폭력 연대기를 재구성한다. 원제 ‘Untouchable(건드릴 수 없는)’에서 짐작되듯 감독 우르슐라 맥팔레인(Ursula Macfarlane)은 성폭력범의 패턴이나 동기가 아닌 더 큰 질문에 집중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와인스타인은 어떻게 무사했을까?”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오른쪽)이 1980년대 말 동생 밥 와인스타인과 함께 '미라맥스'를 설립하고 활동할 당시 모습.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오른쪽)이 1980년대 말 동생 밥 와인스타인과 함께 '미라맥스'를 설립하고 활동할 당시 모습.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와인스타인의 상습적 성폭력은 할리우드에 입성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1980년대 버팔로에서 뮤직 프로모터로 활동할 당시 전형적 수법, 호텔방에 단 둘이 남아있는 상황을 만들어 성폭행을 저질렀다. “나를 적으로 만들고 싶어? 5분만 참아” 피해 여성은 지역 경찰까지 꽉 잡고 있는 와인스타인의 위력에 겁먹고 침묵했다. 1993년, 형과 함께 설립한 ‘미라맥스(MIRAMAX)’에서 제작한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나의 왼발>, <시네마천국>이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면서 할리우드는 새로운 거물의 등장에 환호했다. 거물은 곧 본격적인 괴물이 되었다.

“NO”를 허용하지 않는 괴물

<셰익스피어 인 러브>, <굿윌헌팅>, <인생은 아름다워>, <잉글리시 페이션트>, <시카고>... 나의 10대와 20대는 하비 와인스타인이 제작한 영화들과 함께였다. 특히 주류 할리우드 문법을 깨버린 <펄프픽션>에 얼마나 열광했던가? 거기 출연한 우마 서먼, 로잔나 아퀘트 모두 그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펄프픽션>을 온전한 예술로 다시 볼 수 있을까?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같은 대배우도 피해갈 수 없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와인스타인이란 관문을 거쳐야만 했으니까.

2000년 미라맥스 대표 시절 뉴욕 허드슨 호텔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생일 파티에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는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2000년 미라맥스 대표 시절 뉴욕 허드슨 호텔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생일 파티에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는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연일 최고급 파티와 제트기까지 동원해 A급 배우들, 영화 관계자,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구워 삶은 와인스타인에게 누구 하나 “NO”라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수상 순간 너도나도 ‘스페셜 땡스 투’를 바쳤다. 그의 이름을 호명하는 톱스타들의 과거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할리우드도 공범이다

영화는 피해자뿐 아니라 침묵으로 동조했던 이들의 증언도 담고 있다. 과거 함께 일했던 남성들은 와인스타인이 돈, 권력, 명성을 쌓아갈수록 얼마나 흉포하게 주위 사람들을 괴롭혔는지, 동시에 달콤한 보상으로 폭력에 눈감게 했는지 고백한다. 와인스타인이 자신과 친한 여성 동료를 강간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리 보전을 위해 모른 척 한 남성도 있었다. 소문이 돌아도 합의 하에 바람 피운 정도로 치부해버린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힘이 있는 곳에 여자들은 나방처럼 모여들게 마련이니까. 배역을 따기 위해 여성 배우들은 의례히 그러는 거지.

배우 니콜 키드먼과 함께 한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배우 니콜 키드먼과 함께 한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미디어도 힘 있는 자의 편이었다. 심지어 방송에서 코믹한 밈(Meme)으로 써먹기까지 했다. “여자들은 와인스타인이 주최하는 파티엔 가지 마세요!” 할리우드 전체가 절대권력자의 성폭력에 공조한 것과 다름 없었다. 그가 잘 나갔던 20년 동안.

가장 어이 없었던 건 이토록 무지막지한 포식자도 평소엔 자신을 더 큰 기득권에 억압 받는 피해자로 인식했다는 대목이었다. 돈과 권력을 양 손에 쥔 백인남성조차 ‘어린 시절 외모에 자신 없고 인기도 없던 불쌍한 나’를 현재의 나에 투영하며 억울해하는 광경을 어떻게 봐야 할까? <조커> 같은 영화가 위험한 것은 일부 남성들이 자신보다 상위 남성과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 집단에 대한 열패감으로 자기 연민, 자기 약자화에 빠져 폭력을 정당화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거나 대접받지 못한다 해도 현 시스템 내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수혜자임은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정당한 폭력이란 게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의 김지은씨들을 위해

2018년 5월 25일 다수의 성폭력 혐의로 고소돼 뉴욕 경찰청에 소환된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2018년 5월 25일 다수의 성폭력 혐의로 고소돼 뉴욕 경찰청에 소환된 하비 와인스타인.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이 영화를 보면서 안희정 전 지사와 김지은씨를 떠올리지 않기란 힘들다. 김지은씨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안희정은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겼을까? 하마터면 한국의 와인스타인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할 뻔 했다.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법정 공방, 온오프라인의 의심과 공격을 견디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판례를 만든 김지은씨에게 우리 모두는 큰 빚을 졌다. 이것은 김지은씨의 승리이자 2015년 이후 한국에서 빠르게 진행된 페미니즘 대중화의 성과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와인스타인은 피해자들에게 약 528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 1월엔 2건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형사 재판을 앞두고 있다. 미국의 수많은 김지은씨들을 위해 권력형 성범죄자의 엔딩에 피도 눈물도 없길 바란다.

글 by 김진아. 울프소셜클럽 대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책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썼다.


제목  와인스타인(Untouchable, 2019)감독  우르술라 맥팔레인출연  로잔나 아퀘트, 파즈 드 라 휴에타, 하비 웨인스타인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평점  IMDb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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