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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배신, 쿠르드족은 절규했다 "대량학살 위험, 누굴 믿어야 합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쿠르드족이 터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간 적대관계였던 시리아군과 협력하기로 13일(현지시간) 합의했다.

미국에 토사구팽 당하고 터키의 맹공을 맨몸으로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린 뼈아픈 선택이다.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시리아민주군(SDF·시리아 내 쿠르드족 군사조직)의 마즐룸 아브디 총사령관이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이 주목받고 있다. 그간의 단순 보도로는 알 수 없었던 쿠르드족의 처절한 심경이 구구절절 읽혀서다.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를 향해 계속되고 있는 터키군의 공격 [EPA=연합뉴스]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를 향해 계속되고 있는 터키군의 공격 [EPA=연합뉴스]

그의 글을 최대한 원문 그대로 옮긴다. 아브디 총사령관은 미군 주도로 진행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로 알려져 있다.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저는 시리아민주군의 총사령관입니다.
전 세계는 내전(시리아)의 혼란을 보며 우리(SDF)의 이름을 처음 들었겠지요. SDF에는 7만 명의 군인이 있습니다. 2015년부터 지하드 극단주의, 인종 혐오, 여성에 대한 압제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 우리 중 그 누구도 터키를 향해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항상 전사들에게 ‘이 전쟁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IS의 테러리스트들은 우리의 땅을 습격하고, 마을을 약탈하고, 아이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중대한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1만1000여 명을 잃어야 했습니다.
뛰어난 전사와 사령관들을 무수히 떠나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부하들에게 ‘미군과 다른 연합군은 우리의 파트너’라고 늘 상기시켰고, 그들이 다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이 무자비한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윤리와 규율을 지키려 했습니다. 알카에다를 물리치고, IS의 뿌리를 뽑았습니다. 동시에 다원주의와 다양성을 존중하며 우리만의 훌륭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지금 제가 지휘하는 부대는 터키와 지하드 용병의 침략으로부터 시리아의 3분의 1에 달하는 영토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가 방어하는 이 지역은 어떤 곳일까요.
지난 두 세기 동안 터키가 쿠르드족과 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등을 대량 학살할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망쳐온 바로 그곳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수감되어있는 1만 2000명 이상의 IS 대원들과 그들의 가족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란의 공격으로부터도 보호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우리를 돕는 일에 실패했을 때 손을 내민 것은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그 지원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워싱턴의 요구가 있었을 때, 우리는 기꺼이 터키와의 국경 지역에서 중무기들을 철수하고 방어 요새를 파괴했습니다. 정예전사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한 약속을 지켰더라면, 터키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터키의 공격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13일(현지시간) 터키의 쿠르드 공격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겠단 입장이다. [A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터키의 쿠르드 공격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겠단 입장이다. [AP=연합뉴스]

타협이냐 대량학살이냐 … 당연히 사람들 구하는 길 선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랫동안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자국민들에게) 약속해왔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안타까움마저 느낍니다.
아버지들은 자녀가 무릎에 앉아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을 테고, 연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속삭임을 듣고 싶을 테지요.
모든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군인들에게 직접 전투에 나설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세계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는 미국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데 자신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하길 원합니다.
워싱턴이 우리와 터키 사이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중재할 충분한 힘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믿습니다.
그러나 터키의 공격이 우리의 국민을 생사의 기로로 내몰고 있는 지금, 동맹을 다시 생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와 시리아 정권은 우리의 보호 아래 있는 쿠르드인 수백만 명을 구할 수 있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IS의 위협이 여전하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감금돼있지만, 이 죄수들은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우리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 러시아의 푸틴 정권과 함께 할 경우 고통스러운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타협과 사람들이 대량학살되는 길, 둘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사람들을 구하는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터키군이 쿠르드 민병대를 격퇴하겠다며 시리아 북서부에 공습을 가했다. [AFP=연합뉴스]

터키군이 쿠르드 민병대를 격퇴하겠다며 시리아 북서부에 공습을 가했다. [AFP=연합뉴스]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동맹국입니까?

우리가 미국과 동맹을 맺은 이유는 민주주의를 핵심 가치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위기 앞에서 실망합니다. 좌절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인들은 공격받고 있으며, 이들(민간인)의 안전은 우리(쿠르드군)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두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동맹국이 맞습니까?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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