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탈북민 생산품 우선구매" 법 만들고 구매 안한 통일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탈북자)를 고용한 사업체가 만든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는 법령이 있는데도 19년 간 한 번도 관련 업체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월 29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열린 '2019년 설명절 북한이탈주민 격려 행사'에서 생계가 어려운 북한이탈주민에게 설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임성빈 기자

지난 1월 29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열린 '2019년 설명절 북한이탈주민 격려 행사'에서 생계가 어려운 북한이탈주민에게 설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임성빈 기자

현행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17조에선 통일부가 탈북자를 고용한 모범 사업주의 생산품을 우선구매하거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가 우선구매할 수 있게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령 35조에선 연간 평균 5명 이상의 탈북자를 고용한 사업주를 ‘모범 사업주’ 신청이 가능한 업체로 규정했다. 해당 법은 탈북자들이 국내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취업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2000년 1월부터 시행됐다. 당초 탈북자 중 취업 기간이 2년 내인 '취업보호자'를 고용한 업체에만 적용됐지만, 올해 초 '북한이탈주민'을 고용한 업체로 요건이 완화됐다.

그러나 법령 취지와 달리, 통일부가 지난 19년 간 탈북자 고용 모범 업체의 생산품을 우선구매한 실적은 ‘0건’이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구두답변에 따르면, 해당 법이 만들어진 후 2019년 현재까지 통일부가 구매한 탈북자 고용업체 제품은 전무했다.

2018년 12월말 기준, 탈북자를 연간 평균 5명 이상 고용해 우선구매 대상이 된 업체는 총 14개 업체였다. 그러나 통일부는 해당 업체들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이들 업체 생산품을 우선구매 대상으로 삼지 않은 데 대해 “우선구매가 가능한 품목은 사무용품, 화장지 등 소모품인 반면 대상 사업체들은 합성고무, 블라인드, 승강기, 섬유제품 등의 제품을 생산했다”고 해명했다. 구매가 어려운 품목이어서 우선구매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탈북자 정착지원을 위해 통일부가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고도 정작 기업들에게 탈북자 고용 지원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우선구매 등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일부는 내년도 일반회계 예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66%)인 1031억 원을 탈북자 정착지원 예산으로 책정했다. 통일부는 지난 2017년 중소기업중앙회와 전국 시·도에 공문을 보내 탈북자 고용업체 생산품 우선구매제도 홍보를 요청했으나, 공문에 우선구매가 가능한 품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박주선 의원실은 “2017년 이후에는 홍보 공문도 보내지 않았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박주선 의원은 “정부가 요건을 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홍보 부족으로 통일부에서 우선구매할 수 있는 소모품을 취급하는 탈북자 고용업체는 단 1곳도 없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황”이라면서, “통일부가 직접 홍보를 통해 기업들이 탈북자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