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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푸틴의 사주?”“터키에 이권?”트럼프는 왜 혈맹 쿠르드족을 배신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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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시리아 공격은 IS(이슬람국가)에 대한 싸움을 중지시킬 수 있다-8일 포린폴리시
터키의 시리아에서의 최종 단계: 에르도안이 원하는 것-9일 포린어페어스
성난 미 의회가 트럼프의 쿠르드 배신을 질책하려고 준비하다-10일 포린폴리시
시리아 쿠르드족, 터키 작전에 저항하기로 결심하다-10일 알자지라 방송
트럼프 ‘2차대전 때 미국 돕지 않았다’며 쿠르드족 버린 것 옹호-10일 비즈니스 인사이더
미국의 중동 철수로 유럽은 더는 그 그늘에 숨을 수 없게 되다-10일 폴리티코 유럽
에르도안, 360만 난민을 유럽으로 몰아넣겠다고 위협하다-11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프랑스, 유럽연합(EU) 차원의 대터키 제재안을 만지작거리다-11일 폴리티코 유럽
유엔안보리, 터키 쿠르드 침공 논의…나토·러시아, 터키에 자제 촉구-11일 미국의 소리(VOA)

‘인계철선’ 시리아 주둔 미군 6일 철수하자 #미군 도와 IS 격퇴 혈맹 쿠르드,무방비 노출 #터키, 9일부터 폭격까지 하며 대규모 살육전 #국경 쿠르드족 내쫓고 완충지대 설치 추진 #독립 추진 막으려 분리·봉쇄로 고사시킬 의도 #국제사회 트럼프 신뢰 추락, 미국 회의론 확산 #크루그먼, 풍자와 야유로 트럼프 비판과 조롱

지난 10일 터키 군이 시리아 쿠르드족이 사는 국경 마을을 포격하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자 터키는 사흘 만에 시리아 쿠르드족 지역에 공격을 시작해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0일 터키 군이 시리아 쿠르드족이 사는 국경 마을을 포격하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자 터키는 사흘 만에 시리아 쿠르드족 지역에 공격을 시작해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이 지난 6일 시리아 동북부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하고 9일 터키군이 시리아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나온 영어 매체들의 보도다. 한결같이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완곡하게, 또는 직접 ‘배신자’로 지목한다. 미군은 시리아 동북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와 함께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을 펼쳐왔다. 미국은 혈맹인 시리아 쿠르드족을 버린 셈이 됐다.

시리아 국경 지역으로 이동한 터키 육군의 전차가 출동을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리아 국경 지역으로 이동한 터키 육군의 전차가 출동을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계철선 역할을 해온 미군 철수, 전쟁 촉발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국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시리아 쿠르드족과 손잡고 독립을 추구할까봐 YPG를 테러세력으로 몰아세워 왔다. 특히 지난해 연말 트럼프가 시리아 철수 계획을 발표하자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 때문에 YPG와 함께 시리아에서 활동한 미군은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인계 철선’ 역할도 하게 됐다.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면 함께 주둔한 미군도 공격을 받게 되므로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미군이 철수하면 터키군은 미군이라는 강력한 보호막을 잃은 쿠르드족을 즉각 공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0일 수도 앙카라의 집권당 당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109명의 테러리스트를 죽였다"고 말해 터키가 9일 공격을 시작한 시리아 쿠르드족의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AP-연합뉴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0일 수도 앙카라의 집권당 당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109명의 테러리스트를 죽였다"고 말해 터키가 9일 공격을 시작한 시리아 쿠르드족의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AP-연합뉴스]

이스탄불 시장 선거 패배하자 민족주의 공세

게다가 에르도안은 지난 6월 치러진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의 시장 재선거에서 패배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태다. 8200만 터키 인구의 18.3%인 1500만 명이 거주하는 이 대도시의 시장 자리를 25년 만에 야당에 넘겼으니 정국 전환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해진 상황이다. 터키군은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은 국민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적 이득을 가져온다. 에르도안이 주저할 이유는 없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터키는 9일 시리아 내 쿠르드족 지역을 폭격하고 지상 병력도 보내 공격에 들어갔다.

시리아 쿠르드족 가족들이 지난 10일 국경지대의 마을에서 탈출하고 있다. 터키는 시리아 국경지댜에서 쿠르드인을 내쫓고 완충 지대를 건설하려고 한다. [EPA=연합뉴스]

시리아 쿠르드족 가족들이 지난 10일 국경지대의 마을에서 탈출하고 있다. 터키는 시리아 국경지댜에서 쿠르드인을 내쫓고 완충 지대를 건설하려고 한다. [EPA=연합뉴스]

터키, 쿠르드족 내쫓고 완충지대 건설 의도  

터키 군사작전의 일차적인 의도는 국경지대 완충지대 건설이다. 터키는 지난해 10월 시리아와의 국경 중 지리적으로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정치적으로는 시리아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로자바와 맞닿은 지역에서 쿠르드 민병대인 YPG와 여성수호부대(YPJ)를 철수시키려고 미국과 협상했다. 길이 115㎞, 길이 5~18㎞의 안전지대 또는 북시리아 완충 지대를 만들어 시리아 쿠르드족이 자국의 쿠르드족과 접촉하고 연결하고 교류하는 것을 차단하면서 외부와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쿠르드족을 분리하고 봉쇄해 최종적으로는 고사시키는 것이 터키의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군의 시리아 철군은 미국의 혈맹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던 쿠르드족을 터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리아 북부 도시 만비즈에서 쿠르드족 무장대원이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뒤에 희생자들의 사진을 붙인 추모 현수막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시리아 북부 도시 만비즈에서 쿠르드족 무장대원이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뒤에 희생자들의 사진을 붙인 추모 현수막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쿠르드족, 미군과 싸우며 1만 명 이상 전사

시리아 쿠르드족은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발생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자체 무장을 하고 자치지역인 로자바를 확보했다. 쿠르드족은 로자바에서 중동 세계에선 보기 드문 여성권리·민주주의·인권·평등을 보장하는 열린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해왔다.
로자바의 쿠르드족은 2014년 1월 하사케라는 도시에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북부에서 세력을 확대하면서 서구에서 테러를 벌이자 미국과 일부 나토 동맹국이 격퇴전에 나섰다.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는 2014년 9월 이후 미국에 협조해 IS 퇴치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1만1000~1만5000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전쟁 승리에 기여했다. 2017년 IS의 사실상 수도인 시리아 북부 락까를 장악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IS 마지막 근거지로 불리던 바구즈를 미군과 함께 점령했다. YPG는 시리아의 반정부군이 모인 시리아민주군(SDF) 소속으로 작전에 참여했다. 쿠르드족은 지난 5년간 피를 흘려가며 미국에 협조했지만 그 결과는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의 공격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백악관애서 기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자신이 터키와 시리아 쿠르드족 사이에서 중재를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백악관애서 기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자신이 터키와 시리아 쿠르드족 사이에서 중재를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화=연합뉴스]

돈 앞에선 혈맹도 버리는 ‘금권 국제정치 시대’

트럼프 대통령은 1만 명 이상의 희생을 치르며 미국과 함께 싸운 쿠르드족을 배신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미군 철수를 발표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을 했다. 세계는 혈맹도 돈 앞에선 사자의 입으로 던질 수 있는 ‘금권 동맹 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 의회와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트럼프는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을 “나쁜 생각”이라고 말한 데 이어 공격이 시작되면 “터키 경제를 쓸어버리겠다”는 말도 했다. 터키가 예상대로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자 11일에는 양측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터키는 쿠르드족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국민인 자국 내 쿠르드족에 대해서도 군사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런 터키가 미국 중재로 시리아 쿠르드족과 진짜 대화를 한다는 것도,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세계 20위 규모의 터키 경제를 쓸어버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트럼프의 경고는 ‘립서비스’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가 문을 연 ‘배반의 국제정치’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미국과 트럼프에 대한 회의론이 갈수록 확산할 수밖에 없다.

불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한다. 시리아에 파병한 것도 이를 위해서다.[로이터=연합뉴스]

불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한다. 시리아에 파병한 것도 이를 위해서다.[로이터=연합뉴스]

폴 크루그먼이 추측한 트럼프의 배신 이유  

그렇다면 트럼프는 도대체 왜 쿠르드족을 배신했을까. 트럼프 자신의 말대로 쿠르드족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편에 참전하지 않아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쿠르드족이 나타나지 않아서? 트럼프의 황당한 발언은 전 세계에서 비난과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이미 7일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왜 쿠르드족을 배신했는지에 대한 3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트럼프는 이렇게 쿠르드족을 배신했는데 그 이유는 (a)그가 터키에 사업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b)잔혹한 독재자인 에르도안(터키 대통령)이 그와 같은 부류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c) 상관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완벽하게 그렇듯 하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점잖으면서도 신랄한 이 풍자는 내년 재선을 위한 대선을 앞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추락하는 권위와 위상을 잘 보여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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