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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손든 암환자, 한국이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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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칠레 간암 환자 알베르토가 서울아산병원에서 두 딸의 간을 이식받는 2대1 생체간이식으로 새 삶을 찾았다. 간을 제공한 큰딸 바바라(가운데)와 막내딸 아니타. [사진 서울아산병원]

칠레 간암 환자 알베르토가 서울아산병원에서 두 딸의 간을 이식받는 2대1 생체간이식으로 새 삶을 찾았다. 간을 제공한 큰딸 바바라(가운데)와 막내딸 아니타. [사진 서울아산병원]

“무치시마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 서울아산병원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줬어요.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간이식팀 의료진이 은인입니다. 평생 감사와 감동을 기억할 것입니다.”

칠레 60대 환자 2대1 간이식 성공 #큰딸 간 왼쪽, 막내딸 오른쪽 떼줘 #한국에 연수 왔던 의사가 권유 #세계 수술 건수 95%가 아산병원

지구 반대편 머나먼 땅 칠레의 알베르토(62)는 최근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감사 인사를 쏟아냈다. 3월 말 진행성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다 6개월여 만에 새 삶을 찾았다. 미국에서도 포기한 그를 서울아산병원이 살렸다. 알베르토의 두 딸의 간의 일부를 잘라 아버지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여기 칠레에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으로 당장 2대 1 생체 간이식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있습니다. 간 문맥(입구)이 막혔고 암이 담도에 번져 황달과 복수가 심각합니다. 한국에서 수술이 가능할까요.”

이승규 원장

이승규 원장

지난 3월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의료원장(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에게 이런 내용의 다급한 편지가 배달됐다. 칠레 간이식외과 전문의 라울 오레아스(50)가 말한 환자가 알베르토이다. 지난해 9월 극심한 피로와 황달 때문에 칠레의 병원에 갔다가 간경화와 간암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삶을 정리하라고 권고했다. 그 병원의 오레아스가 간이식을 권했다. 알베르토의 체격이 커 한 사람의 간으로는 부족해 두 명한테 기증받는 2대 1 생체 간이식이 대안이었다. 병원 측에서 미국 병원에 타진했지만 “불가능”이란 답을 받았다.

오레아스는 알베르토에게 “아산병원이 6000여 건 넘게 간이식 수술을 했고, 간암의 중증 환자 수술 성공률이 97%에 달한다”며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실제로 2대 1 생체 간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세계에서 몇 군데 안 된다. 2대1 수술을 500건 이상 한 데가 아산병원이 유일한데다 이런 수술의 95%를 했다. 오레아스는 2011, 2014년 아산병원에서 간이식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알베르토 가족은 3월 말 한국에 왔다. 환자가 혼수 증세를 보여 의료진이 서둘렀다. 환자의 아내, 딸 3명의 간을 검사했다. 큰딸 바바라 크리스티나(34)와 막내딸 아니타 이시도라(23)의 혈액형·조직적합성이 아버지와 잘 맞았다. 쉽지 않은 수술이라 이승규 원장이 직접 메스를 잡았다. 2대1 생체 간이식 수술은 이 원장이 2000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수술법이다. 큰딸은 간의 왼쪽, 막내딸은 오른쪽을 뗐다. 각각 5~6시간 걸렸다. 알베르토의 간은 일부만 남겼고 두 딸의 간을 연결했다. 20시간 걸렸다. 오레아스가 한국을 찾아 수술을 참관했다.

알베르토는 수술 후 몇 차례 고비를 넘겼고 7월 일반 병실로 옮겼다. 이제 회복돼 10일 고향으로 돌아간다. 막내딸 이시도라는 “처음에 인터넷에서 서울아산병원 성적을 찾아보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2대1 생체 간이식 수술을 최초로 개발했고, 세계의 의사들이 연수를 받으러 온다는 걸 알고 믿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오레아스는 “2대 1 생체 간이식 경험이 세계에서 서울아산병원보다 앞선 데가 없다. 의료진이 강인해 환자의 장기생존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이승규 원장은 “환자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세계 어느 이식센터에 가더라도 수술이 불가능했다. 우리 팀이 살리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는 각오로 임했다”며 “칠레에서 미국이 가깝고 고난도 치료가 필요하면 미국 병원으로 많이 가는데, 알베르토가 한국에 온 것은  대한민국 간이식 수준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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