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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 교육,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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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호 면

주부 이경혜씨를 1일 경기도 수원시 북수원 도서관에서 만났다. 이경혜씨는 자녀 3명의 독서 교육을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시켰다. 신인섭 기자

주부 이경혜씨를 1일 경기도 수원시 북수원 도서관에서 만났다. 이경혜씨는 자녀 3명의 독서 교육을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시켰다. 신인섭 기자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주5일 공공도서관 찾는 소문난 독서광 이경혜씨 #"가야금 명인 황병기 책 읽은 첫 째 국악중 진학" #

경기도 수원은 책 읽기 좋은 도시다. 사서 숫자를 제외한 공공도서관 장서 수와 인구수, 방문자 수와 대출 도서 수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상위권이다(국가도서관 통계시스템·www.libsta.go.kr). 장안구 북수원도서관(관장 갈미숙)은 수원의 26개 공공도서관 중에서도 실력 있는 강사를 초빙해 운영하는 인문독서 아카데미의 열기가 뜨겁다고 했다.

 지난 1일 그리스 문명을 주제로 한 여행작가 신양란씨의 첫 강연시간. 독서를 끔찍이 사랑하는 주부 이경혜(44)씨를 만날 수 있었다. 사연을 들어 보니 이씨에게 독서는 단순한 교양 쌓기나 취미 생활이 아니었다.

 우선 이씨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미쳤다. 이씨는 사회복지사였다. 결혼해 아이들이 생기면서 그만뒀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계기가 책 때문이었다는 것. 초등학생 시절 설리번 선생 이야기를 읽고 사회복지의 세계에 대해 눈 떴다고 했다. 장애인 헬렌 켈러를 위대한 사회복지가로 키운 그 설리번 선생 말이다. 설리번에 대한 책으로 독후감 상을 받으면서 "앞으로 책으로 뭔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굉장히 강렬한 자극제"였다.

 세 아이 중 첫째인 민성(14)이가 국악중학교에 진학한 것도 책 때문이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에 대한 책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다. 역시 가야금을 전공한다. 지난해 초 황병기 선생이 타계했을 때 빈소를 찾아가려 할 만큼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요즘은 발명에 관심이 많아 장차 발명하고 싶은 물건의 설계도를 공책에 그린다. 작곡을 좋아해 관련 책을 사줬다.

 이씨는 "아이가 아직 혼자서 책을 못 읽을 때 책 읽어달라고 요청하면 설거지나 청소를 하다가도 그만두고 읽어줬다"고 했다. 집에 TV 같은 건 없다. 요즘 중학교 1학년생인 둘째 호성(13)이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교육청 시스템에 올린다. 셋째인 딸 주원(10)이는 매일 한 항목씩 백과사전 설명 내용을 공책에 베껴 쓰고 그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두 오빠 모두 초등학교 시절 거쳐 간 일이다.

북수원도서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장 풍경. 지난 5월28일 열린 이집트 문명 관련 두 번째 강연 장면이다. 아카데미는 1년 내내 열린다. [사진 북수원도서관]

북수원도서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장 풍경. 지난 5월28일 열린 이집트 문명 관련 두 번째 강연 장면이다. 아카데미는 1년 내내 열린다. [사진 북수원도서관]

 이씨는 "독서를 열심히 시켜서인지 우리 아이들이 어휘력이 뛰어난 것 같다"고 했다. "두꺼운 책은 기승전결이 확실해서 좋다"며 열 살 주원이가 300, 400쪽 분량의 책들을 마다치 않는 것만 봐도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

 다른 무엇보다 이씨 자신이 독서광이었다. 일주일 평균 5일은 도서관을 찾는다고 했다. 그중 이틀은 두 개의 독서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나머지는 책을 읽거나 대출·반납을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게는 가급적 책을 사주는 편이다. 도서관에 빌리러 가는 와중에 변수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1년에 200만원가량을 도서구입비로 지출한다.

 왜 이렇게 열심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큰 아이가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그런 아이를 돌보며 받았던 상처를 책을 읽으며 위로받았다." "아이들이 자라나 무슨 일을 하든 만족해 하며 재미있게 살면 좋겠다. 그렇게 사는 데 책이 도움되는 것 같다. 내 경우가 그렇다."

 이씨는 기자와의 만남을 위해 예상 문답을 작성해 왔다. 울림이 있었다. 전문을 소개한다.

북수원도서관 전경.

북수원도서관 전경.

 ◇주부 이경혜씨의 글
 큰아이.
 국악중학교 2학년.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가야금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원래 이 아이는 루크 하워드처럼 기상학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루크 하워드 책을 읽고 또 읽었지요. 그렇게 인물에 대한 책을 읽다가 다른 인물들도 읽기 시작했고,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은 황병기 선생님에게 완전히 꽂혀서 가야금을 전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큰 아이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둘째 아이.
 중학교 1학년. 기타 치는 수학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서 수학자와 과학자에 대한 책을 읽고 독서록을 씁니다. 하루에 한 분씩 학자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죠. 새롭게 알게 된 분은 엄마에게 자랑도 하고, 한때는 이 친구 노벨상을 받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노벨상에 수학 분야가 없다는 걸 알고는 무척 실망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때쯤 기타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참,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기타를 연주해서 상을 받아왔더라고요. 이 친구는 책이나 신문을 읽고 엄마에게 깨알 자랑하는 게 보람이랍니다. 그래서 잘 들어줘야 많이 읽는 스타일이에요.
 막내.
 오빠들과는 다르게 과학도 좋아하고, 문학도 좋아하고, 특히 언어를 무척 좋아합니다. 영어를 좋아해서 통역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여자친구라 그런지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많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것이 재미있나 봐요. 영어통역사뿐만 아니라 수화통역사도 하고 장래희망인 친구랍니다. 막내에게 책이란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눈을 감고 손에 잡히는 걸 읽고요,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송언 선생님 책을 주로 읽습니다. 그냥 이유 없이 빠져든다고 송언 선생님의 책을 모을 정도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책을 주로 읽히시나요?
 "아가였을 때는 제가 골라주는 책을 더 좋아했지만 지금은 제가 골라주는 것보다는 본인들이 읽고 싶어하는 책을 준비해 주는 편입니다."
 -어떤 책을 준비해 주시나요?
 "큰아이는 최근에 작곡과 코드에 대한 책을 사 줬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과학자와 수학자에 대한 책을 읽고 하루에 한 권씩 독서록을 쓰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에 독서교육지원시스템에 독서록을 등록하는 서비스가 있거든요. 그리고 막내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책을 좋아합니다. 최근 400여쪽이 되는 읽고 굉장히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은 결말이 확실한 두꺼운 책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열한 살 아름다운 시작』(김혜리 지음, 상상책읽기교실)
 -얼마나 준비해주시나요?
 "금액으로 따진다면 온라인 서점과 중고서점을 모두 포함해서 1년에 200만원 정도 사 줍니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도 있지만 저희는 대출보다 구입해서 읽는 걸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무슨 책을 읽어야지 계획하고 도서관에서 가서 고르고 빌려오는 그 과정에 변수가 너무 많이 생기잖아요. 하지만 책이 집에 있으면 바로바로 손에 들고 어디든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읽고 싶을 때 바로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언제 읽게 하시나요?
 "대중없습니다. 저흰 TV가 없어요. 그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만나는 것이 소파와 책장입니다. 특히 새로 구입한 책은 방바닥에 널어놓는 편입니다. 들어오자마자 알 수 있도록 이요. 그리고 아이가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면 하게 합니다. 대신 독서시간은 확보해둬야죠."
 -어떻게 읽혀주시나요?
 "아이가 읽기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같이 읽습니다. 큰 아이는 일찌감치 독립해서 스스로 읽습니다. 하지만 둘째는 6학년까지도 읽어달라고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읽어줍니다. 설거지 안 하고, 청소 안 하고, 읽어달라고 하는 부분까지 읽어줍니다. 득음을 할 정도이지요. 하지만 막내는 함께 읽기를 좋아합니다. 같은 책을 따로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각자 읽는 스타일도 토론하는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에 엄마인 제가 맞춰주는 편입니다."
 -다른 읽기 물도 보여주나요?
 "신문을 병행해서 읽습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책 속에만 틀어박혀 사는 건 너무 고리타분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미가 있으려면 사회가 보여야 하고, 사회를 보려면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독서 목표는 안목을 높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큰 아이는 신문을 제가 스크랩해서 읽게 합니다. 화제가 되는 기사 또는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걸 스크랩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둘째는 하루에 한 면씩 읽고 토론을 합니다. 요즘은 어린이 신문이 잘 나오잖아요. 막내는 신문에 나오는 퍼즐을 주로 합니다. 스도쿠나영어 퍼즐이요. 얼마 전에는영어 퍼즐을 맞춰서 신문사에서 책도 받았어요. 그리고 신문에는 최신정보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 정보를 이용해서 행사에 참석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최근에 큰 아이는 성결대에서 하는 VR 영상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었고, 막내는 방정환어린이재단에서 방정환탄생 120주년 어린이기자단으로 활동했었어요. 그리고 백과사전을 읽게 합니다. 사실은 읽기보다는 읽고 쓰게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7세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하루에 한 단어씩 찾고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는 활동을 하루에 한 개씩 꼭 합니다. 현재는 막내가 초등학생이니까 막내만 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을 책 읽기와 병행하는 이유는 어휘력과 문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입니다. 어휘력이 좋아야 책도 많이, 잘 읽을 수 있거든요. 거기에 문장력까지 좋다면 책을 즐기기 딱 좋은 조건이 되는 거죠."
 -책을 읽고 연계된 활동을 하는 편인가요?
 "책은 글이잖아요. 글은 눈과 머리로 읽는 거잖아요. 물론 가슴으로도 읽기도 하지만요. 저는 그것들을 표현하는 걸 권장하는 편입니다. 도깨비에 대한 책을 읽으면 못 입는 옷을 꺼내 자르고 붙여 도깨비를 만듭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도깨비가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자리 잡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심성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독후 활동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막내와 오빠에 대한 책을 읽고 본인은 초등학생이라 그런지 중학생 오빠들이 자기랑 안 놀아준다면서 새로운 오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만들기가 불가하면 독서록을 쓰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현장학습을 가기도 합니다. 디자이너 마리오 벨리니 책을 읽고 가구박람회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책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엄마는 한 사람입니다. 아빠도 한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이 두 사람의 역량만으로는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열 권의 책을 읽었다면 부모와 함께 열 두 명이 키우는 거잖아요. 내일 열 권의 책을 더 읽는다면 스물 두 명이 이 아이를 키우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작가님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책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수많은 작가님과 아이를 공동육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글 작가님만 말하는 것이 아니구요~ 우리 아이들은 그림책도 어마무시하게 좋아하거든요. 그림작가님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엄마는 어떤 책을 읽나요?
 "저는 나무에 대한 책이나 가드닝에 대한 책을 제일 좋아하고요, 사회과학 서적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정하기 때문에 결론은 골고루 읽는 편입니다. 독서모임을 두 군데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곳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모임이구요, 다른 한 곳은 책을 읽고 논제를 만들어 발표하는 모임입니다. 각 모임의 장점이 달라 일주일에 두 탕을 뛰고 있습니다. ^^"
 -엄마는 책을 왜 읽나요?

 "저는 겁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시도를 잘 못 하는 편이었죠. 그래서 상상으로 시작한 거에요. 책 속에서요. 고전을 읽으면서 수 세기 전의 거리에 뚝 떨어진 느낌을, SF소설을 읽으면서 미래세계에 살고 있는 느낌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독서의 매력이에요. 책을 읽으면 상상의 소재와 상황들이 정말 다양해집니다.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었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가질 수 있는 취미 중 책이 제일 고마웠어요. 특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는 것은 정말 많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책이 가진 힘을 증폭시키는 마법과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
 "도서관의 모든 책을 다 추천하고 싶죠. 하지만 제가 다 읽은 건 아니니 추천을 말이 안 되고요.
저랑 이름이 같은 작가님입니다. 이경혜 작가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큰 아이에게 추천하면서 다시 읽게 된 책인데 사춘기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가 책장을 넘기는 제 손에까지 느껴져요. 파르르 떨리는 긴장감이 일품입니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요즘 매체들을 장식하고 있는 각종 뉴스. 오만가지가 잡탕으로 섞여 있는 꼬락서니가 딱 동물농장이 생각나서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터볼레벤의『나무수업』. 그리고 타샤 할머니의 『타샤의 정원』. 이 두 권은 식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에 딱이거든요. 식물을 좋아하신다면 이 두 권을 권하고 싶습니다. 초록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울 수 있거든요. 아이들의 장래희망 말고 엄마의 장래희망. 저는 상호도 다 정해 놨습니다. '동네책방'. 그런데 지금은 이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너무나 많더라구요. 한 십 년 전부터 제가 생각했던 건데 동네에서 아이들이 들를 수 있는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재미있거든요. 동네 주민들도 책으로 소통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엄마들도~ 아빠들도~ 어르신들도~ 책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신념이기도 하거든요. 저의 장래희망은 삶이 풍요로워지는 '동네책방 사장님'이 되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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