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30억 타워팰리스 내 돈 없이 산 30대…구멍 뚫린 대출규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대명사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정부의 주택거래 실태 조사 결과 30대가 자기자금을 전혀 들이지 않고 전액 차입금으로 30억원짜리를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대명사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정부의 주택거래 실태 조사 결과 30대가 자기자금을 전혀 들이지 않고 전액 차입금으로 30억원짜리를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대명사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74㎡(이하 전용면적)가 30억원에 거래됐다. 매수자는 33세 정모씨다. 자기 돈 하나 들이지 않고 30억원 모두 남의 돈으로 샀다. 19억원이 전세보증금이고 나머지 11억원은 차입금이다.

강남4구 매매거래 9%가 '이상거래' #과다한 차입금, 거액 현금 거래 등 #대출 규제 강화로 집값 안정 한계 #동별 분양가상한제 시행 역풍 우려

국토부에 따르면 정씨가 자치단체에 제출한 주택취득자금 조달계획서에 11억원이 ‘그 밖의 차입금’으로 적혀있다.

자금조달계획서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 주택 매매 거래를 할 때 작성한다. '자기자금'과 '차입금 등'으로 나눠 적도록 돼 있다. 자기자금은 ▶예금액 ▶주식·채권 매각대금 ▶부동산 처분대금 ▶증여·상속 ▶현금으로, 차임금은 ▶금융기관 대출 ▶임대보증금 ▶회사지원금·사채 ▶그 밖의 차입금으로 구분돼 있다. 그 밖의 차입금은 돈을 빌린 출처가 불확실한 셈이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금융회사 등의 담보대출이 전혀 없다.

지난 6월 41세 이모씨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135㎡를 36억원에 샀다. 임대보증금 7억원을 안았다. 예금 등 자기 자금 3억2700만원에 25억7300만원을 금융권에서 빌렸다. 이씨는 서울과 대구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총 29억원(채권최고액)을 대출받았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로 서울 주택 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이 40%로 대출 한도가 14억4000만원이다.

이 사례들은 국토부가 최근 많이 늘어난 서울 주택 매매거래에서 발견한 수상한 거래들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6~8월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주택 매매거래 7597건 중 9% 정도인 700건이 '이상거래'로 파악됐다. ▶차입금이 지나치게 많거나 ▶차입금으로만 거래했거나 ▶현금거래 10억 이상 등이다.

이상거래 비율이 4~5월 7%에서 높아졌다. 국토부는 이상거래를 투기 수요의 거래로 의심하고 있다.

6월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194㎡를 36억원에 산 40대 부부는 13억원을 현금으로 냈다. 지난 6월 30대 부부가 공동으로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40㎡를 44억3000만원에 매수했다. 예금 16억1500만원과 나머지 28억여원은 차입금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자료: 국토부

자료: 국토부

자금이 많지 않은 30대의 고가주택 거래도 눈에 띈다. 집값이 비싼 강남에서 30대 연령 거래가 늘어난 것은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와 함께 지난 6월 이후 눈에 띄는 주택시장 특징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6~8월 강남·서초구 아파트 매수자 중 30대가 5명 중 한 명이 넘는 22%를 차지했다. 7~9월 계약된 강남·서초구 아파트 1500여가구의 평균 거래가격이 17억원이었다.

전세 끼고 사는‘갭투자’증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세 끼고 사는‘갭투자’증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부는 꼼수 대출도 다양해진 것으로 파악한다. 지난해 주택임대사업자 대출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피해가더니 올해는 주택매매사업자 대출이 주택 구매 자금원으로 활용됐다. 주택매매사업자는 사업자 대출이어서 대출 제한이 없다. 주택매매사업자 등록만 하면 돼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 사업자라면 관련 법령에 6개월에 한 차례 이상 매수하고 두 차례 이상 매도하게 돼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대출을 받을 때만 주택매매사업자 등록을 하면 됐다.

주택매매사업자에 세제 혜택은 없다. 다른 소득과 합친 종합소득세와 조정대상지역 중과 등을 적용한 양도세를 비교해 많은 세금을 낸다.

이상거래 증가, 꼼수 대출 등은 정부가 2017년 8·2대책과 지난해 9·13대책에서 주택 대출 규제 강도를 높였지만, 허점과 틈새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국토부·행정안전부·국세청·금융위 등 32개 관계기관 합동으로 자금조달계획서를 토대로 자금 출처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8~9월 실거래 신고분 중 이상거래로 의심되는 서울 전체 1200여건을 우선 조사한다. 강남4구와 마포·성동·용산·서대문구 등을 집중 조사지역으로 선정했다.

이와 함께 주택매매사업자 대출도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적용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저금리 등으로 유동성이 넘쳐나는 가운데 돈줄 죄기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아무리 대출 문턱을 높이고 규제를 촘촘히 해도 돈이 될 것 같으면 편법·불법을 통해서든 돈은 아무리 작은 틈새도 비집고 주택시장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자료: 국토교통부

자료: 국토교통부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집값을 자극한 불씨는 불안 심리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 6월 도입하겠다고 밝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주택 공급이 부족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주택 수요자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 들어 잇단 고강도 규제에도 해마다 반복된 집값 급등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셈이다.

사실 상한제의 위력이 구체화하지 않아 주택공급이 얼마나 줄어들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공급 부족 우려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실체가 불분명한 불안 심리가 더 쏠림 현상을 부추겼다. 불안하니까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부동산에 꽂혔다.

상한제 지역 '동'별로 지정 

정부는 한발 물러나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상한제 적용 유예기간을 두고 상한제 지역 단위도 동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그동안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조정대상지역 등 주택 규제지역 단위는 모두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이상이었다. 기초자치단체를 같은 생활권으로 보기 때문이고 행정 편의주의적인 이유도 있다. 동 기준은 처음이다.

규제 단위를 줄이는 것은 규제의 취지에도 맞다. 법에도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의 지정은 그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로 한다’고 돼 있다.

동 단위는 소규모여서 지정과 해제가 용이하다. 규제 지역을 줄여 공급 걱정을 달래려는 뜻도 있다. 그런데 이게 역풍을 가져올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변동이 심하면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주택 공급은 장시간이 걸리고 가격은 공급을 좌우하는 변수다. 사업 준비에서 공급까지 가격 일관성이 없으면 공급자는 사업을 주저하게 된다. 중장기적이어야 할 가격 정책이 단기 수요 억제책으로 잘못 쓰이면 공급과 가격 모두 놓칠 수 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