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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수 마셔요?" 수돗물 권하는 코펜하겐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 라이프(11)

음식마다 칼로리를 확인하며 먹는 시대에서, 탄소 배출량을 생각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칼로리 확인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탄소 배출을 생각하는 것은 ‘다 같이 잘 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코펜하겐의 유기농 식당 비오미오(BIOMIO)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식물 중심의 메뉴를 선보인다.

이 식당이 채식을 표방하는 식당이 아님에도 식물 기반으로 메뉴를 구성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육류나 유제품보다 식물 기반의 식재료가 탄소 배출량에서 월등하게 적기 때문이다. 이곳은 식당에서 사용하는 재료의 70%를 덴마크 내에서 생산된 유기농으로 사용하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방 조리기구를 고효율 기구로 사용한다고 했다. 2009년에 문을 연 이 식당은 300여 명이 동시에 식사가 가능한 대형 식당으로 덴마크의 식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셀프서비스 형태의 유기농 식당 비오미오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식사 제공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사진 BIOMIO 홈페이지]

셀프서비스 형태의 유기농 식당 비오미오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식사 제공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사진 BIOMIO 홈페이지]

환경에 최소한의 충격을 주기 위한 식물 기반의 식단, 친환경 가구와 생황용품의 선택, 적게 소유하는 삶의 가치는 북유럽에서 두드러지는 사회 분위기다. 사람들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삶’의 가치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생각하게 됐다. 거창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그들의 이러한 가치는 일상에서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생수를 사기 위해 들린 스톡홀름의 한 마켓에서 우리는 물을 살 수 없었다. 생수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직원은 왜 물을 사려고 하냐며 되려 이상하게 묻는다. 식당이나 카페, 관공서 어디를 가도 물병에 물을 채울 수 있고 모두 수돗물을 마신다고 했다. 직원은 웃으며 생수 대신 가지고 다닐 물병을 사라고 했다.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질문은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인식을 다르게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을 사 먹는 것과 개인 물병을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가져온다. 알바트로스의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나오지 않게 돕는 것뿐 아니라 물을 사 먹는 비용도 아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것은 이를 계기로 소비와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방학 동안 스케이트보드를 열심히 타던 아들이 어느 날 평소보다 집에 일찍 왔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물병에 물을 채우기 위해 잠시 들렀단다. 물병에 물을 채우러 자전거를 타고 무더위에 10분을 달려온 것이다. 아들은 알바트로스가 플라스틱을 먹고 죽는 것이 싫어서 플라스틱병 생수는 사 먹지 않겠다고 했다. 아이에게는 불편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로운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아들의 삶에 앞으로 여러 영향을 줄 것이다. 외출할 때 각자 개인 물병을 챙기는 일은 지속해 오던 편한 가치를 버리고 생활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생활 모습이 바뀐다는 것은 앞으로의 삶의 모습도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물을 쉽게 사 먹던 것에서 개인 물병을 챙기는 변화는 ‘지속 가능한 삶’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진 강하라]

물을 쉽게 사 먹던 것에서 개인 물병을 챙기는 변화는 ‘지속 가능한 삶’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진 강하라]

우리도 지금까지 가졌던 가치관과 소비 형태에서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완전히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아이들의 앞으로의 20년, 30년 뒤의 세상을 생각했을 때, 지금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기후 위기’였다. 우리가 적극적인 환경운동가가 아니었음에도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소비할 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됐다.

지난 9월 21일 대학로에서 열린 ‘기후 위기 비상행동’에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단체가 함께했다. 우리 집 딸아이도 현장에서 언니들과 피켓을 만들었는데 어디서 보고 썼는지 내용이 놀라웠다. [사진 심채윤]

지난 9월 21일 대학로에서 열린 ‘기후 위기 비상행동’에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단체가 함께했다. 우리 집 딸아이도 현장에서 언니들과 피켓을 만들었는데 어디서 보고 썼는지 내용이 놀라웠다. [사진 심채윤]

지난 9월 23일 뉴욕에서 UN 기후 행동 정상 회의가 열렸다. 각국 지도자들이 모였고 그들을 향해 한 소녀의 질책이 이어졌다. UN 단상에 오른 스웨덴의 열여섯 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앞으로의 기후 위기를 맞이해야만 하는 서러운 세대임을 한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9월 21일 여러 단체와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기후 위기 비상행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현재까지 누리고 당연시했던 생활방식은 앞으로 많은 부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변화에 대한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변화하고 지속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때마침 좋은 기회로 기후 위기 전문가인 전 국립과학기상원장 조천호 박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래는 조천호 박사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영상과 내용 일부다. 우리 각자가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들이다. 우리의 지난 삶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비하고 낭비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이유 있는 미니멀리즘에 도전해야 할 때가 왔다.


아래는 조천호 박사 인터뷰 내용
500만 년 전부터 산업혁명 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이 2℃를 넘은 적이 없다. 인류에게 마지막인 1년의 시간 동안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로 막을 수 있다. 1.5℃ 이상 상승하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2℃ 상승 시 지구 회복력을 상실하게 되고 지금과 같은 안정적인 기후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 인식의 체계를 공고히 하고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는 우리 삶에 매우 광범위한 위험을 가져오게 된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탄소 배출 증가율 1위이며 기후 위기에 가장 취약한 나라다. 이제는 경제발전, 에너지, 자원의 착취를 벗어나 완전히 바뀐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구의 안전성을 먼저 생각하고 그 한계 안에서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경제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당장 1.5 상승을 막기 위한 법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 전 세계 해수면을 6m 이상 높일 수 있다. 남극에 있는 빙하까지 다 녹으면 해수면이 70m 상승한다. 이는 인간 문명이 말살될 수 있는 위험이다. 기후 위기에 관련된 데이터는 모두 강하고 급박하게 상승하고 있으며 단 한 번도 거꾸로 가 본 적이 없다. 메탄하이드레이트, 빙하 깨짐, 영구동토층 이런 것은 과학자들이 계산할 수조차 없다. 그만큼 헤아릴 수 없는 변수가 된다.

학교 교육과 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아이들 세대에는 당장 기후 위기로 인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1.5℃로 막는다고 해도 이미 탄소 배출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세대이며 앞 세대로 인해서 전혀 이익도 없이 많은 불편함을 겪어야만 한다. 일회용품을 줄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약하다. 자동차를 없애거나 재생 에너지로 급전환이 필요하다. 채식 위주의 식단은 큰 도움이 된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려면 옥수수 16kg을 먹여야 한다. 소고기 생산은 곡물 생산보다 16배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 세계 경작지의 3분의 1은 소나 가축을 먹이기 위해 쓰인다. 고기를 많이 먹을수록 자연을 더 파괴하는 것이다. 육류 생산을 위해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게 된다. 따라서 육류 소비를 줄이면 효율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브라질 아마존의 산불은 농토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다. 유럽은 브라질에 경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소고기 수입 반대, 투자 자금을 회수하기로 했다. 우리는 기후 위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만 한다. 적극적인 대응을 해도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현재의 정부 대응과 시민의식으로는 이겨낼 수 없다. 평균기온 1.5℃를 지키려면 매년 18%의 탄소 배출을 절감해야만 한다. 지난 10년 동안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렸기 때문에 이제는 18%라는 매우 힘든 절감 운동을 해야만 한다. 참고로 IMF 시기에 탄소 배출이 18% 정도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 정도의 긴축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을 만들고 정부를 끌어가는 사람들의 대응이 매우 미흡하다. 뭔가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사람의 뇌는 편향되면 실질적인 정보를 들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부터라도 온 국민의 관심,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물론 정부와 국회를 믿고 있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시민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만 한다. 내년 2020년이 1.5℃ 상승을 막을 수 있는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1년이다. 위험과 어려움으로 세상이 냉소적일 때 긍정적으로 극복하자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배운 것이 맞는다면 아직은 긍정적이고 가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강하라 작가·심채윤 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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