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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85년 전 장정 출발지 찾아 “30년 투쟁해 미국 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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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일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는다. 사상 최대 열병식 등 각종 경축 행사가 펼쳐지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마음은 편치 않다. 중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봉화가 곳곳에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과 홍콩, 남중국해에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가발전 전략인 ‘중국제조 2025’는 포기를 종용받고 화웨이는 제재를 받아 미래 먹거리가 위태롭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포석이다. 시 주석이 건국 70년의 해에 제2의 장정을 결심한 배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돌파하기 위한 시진핑의 장정 전략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중국 건국 70주년 상] “미국은 중국 압살” #“과거 장제스의 토벌작전과 다를 바 없어”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장정의 정신’ 되살려 # 자력갱생과 ‘일대일로’ 서진 전략 추진해 # 2049년 미국 제치고 세계 최강 중국 만들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년 가량 지속하던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결렬된 지난 5월 20일 장시성 간저우 위두현을 찾아 홍군장정출발기념비에 헌화하고 미국을 상대로 한 제2의 장정을 결심했다. [중국 신화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년 가량 지속하던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결렬된 지난 5월 20일 장시성 간저우 위두현을 찾아 홍군장정출발기념비에 헌화하고 미국을 상대로 한 제2의 장정을 결심했다. [중국 신화망]

지난 22일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반 걸려 도착한 장시성(江西省) 간저우시(赣州市). 그곳에서 다시 승용차로 한 시간 달리니 위두(于都)현이 나온다. 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새롭게, 또 뜨겁게 뜨고 있는 홍색(紅色, 혁명) 마을이다.
장시성은 공산혁명의 성지다. 성도(省都) 난창은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27년 무장봉기를 일으킨 곳. 거사일인 8월 1일은 중국 건군절로 기념된다. 징강산(井岡山)은 마오쩌둥이 게릴라 생활을 한 곳이고, 루이진(瑞金)에선 31년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중앙정부가 설립됐다. 이런 쟁쟁한 곳들을 제치고 최근 위두를 찾는 중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 국가주석이 왔다 간 이후 새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운전기사 셰디푸의 설명이다.
위두엔 홍군(紅軍)과 장정(長征), 도강(渡江)의 세 단어가 넘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왔다 간 이후 장시성 위두현의 홍군장정출발기념비에는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다. [유상철 기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왔다 간 이후 장시성 위두현의 홍군장정출발기념비에는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다. [유상철 기자]

1934년 장제스의 국민당군에 쫓기던 홍군이 집결해 장정의 첫걸음을 뗀 곳이 위두다. 이후 1년 동안 24개 강과 18개 산을 넘어 1만km 이상을 행군한 끝에 공산당은 살아남았고 끝내는 전쟁에서 이겼다. 마오쩌둥은 그래서 장정을 “승리의 선언서”라고 주장한다.
시 주석이 그런 위두를 5월 20일 찾았다. 그리고 마오쩌둥이 강을 건넜다는 곳에 있는홍군장정출발기념비에 헌화했다. 화환은 장정출발기념원 안에 안치돼 있었다. 시진핑이 바친 “장정의 정신이여 길이 빛나라(長征精神 永放光芒)”는 문구가 선명했다.
건국 70년의 해에 시진핑은 왜 위두를 찾았을까. 당시엔 시진핑이 방문한 장시성의 희토류 개발회사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중국 정가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은 “가장 중요한 의미는 위두현을 방문해 장정의 정신을 되새긴 데 있다”고 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홍군장정출발기념비에 바친 화환에는 "장정의 정신이여 길이 빛나라"는 글이 적혀 있다. 현재 이 화환은 장시성 위두현의 장정출발기념원에 안치돼 있다. [유상철 기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홍군장정출발기념비에 바친 화환에는 "장정의 정신이여 길이 빛나라"는 글이 적혀 있다. 현재 이 화환은 장시성 위두현의 장정출발기념원에 안치돼 있다. [유상철 기자]

미국과의 무역협상은 1년 여 계속되다 지난 5월 이후 결렬된 상태다. 물건을 더 사고파는 문제 때문이 아니다. 미국의 요구가 중국의 사회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판단을 시진핑이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전 충칭 시장인 황치판(黃奇帆)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이 최근 “미국의 요구는 돈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미국이 바라는 건 중국의 명운”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많은 요구는 결국 “중국의 국유기업을 사실상 민영화하라”, 그리고 “미국이 이를 감독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중국은 이를 사회주의를 포기하라, 주권을 내놓으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인다. 시진핑이 무역협상 타결은 무망하다고 보는 이유다.
그럼 중국은 어떻게 할까. 그 고민의 산물이 바로 시 주석의 위두 방문이다. 건국 70년 해에 장정 출발지를 찾아 제2의 장정을 결심한 것이다. 장제스의 토벌에 밀려 공산당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듯, 미국의 전례없는 압박으로 중국 사회주의가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는 판단에서다.

1934년 10월 장제스의 토벌에 밀려 장정에 나서게 된 마오쩌둥이 처음 강을 건넌 곳을 기념하는 비석이 장시성 위두현에 세워져 있다. 현재는 관광객이 기념 사진을 찍는 단골 장소가 됐다. [유상철 기자]

1934년 10월 장제스의 토벌에 밀려 장정에 나서게 된 마오쩌둥이 처음 강을 건넌 곳을 기념하는 비석이 장시성 위두현에 세워져 있다. 현재는 관광객이 기념 사진을 찍는 단골 장소가 됐다. [유상철 기자]

시 주석은 장시성 방문에 무역 전쟁의 지휘관인 류허(劉鶴) 부총리를 대동했다. 이어 회의를 개최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압박을 돌파하기 위한 제2의 장정 전략을 논의했다.
우선 중국이 처한 상황 분석이다. 시진핑은 “미국이 2010년부터 펴고 있는 아시아회귀, 재균형 전략, 인도-태평양전략 등은 모두 중국을 포위해 압살하려는 것으로 과거 장제스의 포위 토벌 작전과 진배없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장정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 설명이다. 장정은 얼마나 오래갈 건가. 시 주석은 “이 같은 불리한 외부 환경이 장기간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의 70년 관건은 앞으로의 30년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시진핑의 제2 장정이 중국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그 기간 중국은 어떻게 할 건가. 시진핑은 미국을 넘기 위한 ‘위대한 투쟁’을 강조 중이다. 지난 3일 시 주석이 중앙당교에서 중 청년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는 총 2000여자 중 '투쟁'이란 단어가 무려 50여 차례 등장한다.

장시성 위두현은 홍군, 장정, 도강의 세 단어가 지배한다. 거리도 홍군대도, 장정대도, 도강대도로 이름지어져 있고 다리도 홍군대교, 장정대교, 도강대교로 불린다. 사진은 장정대교의 모습. [유상철 기자]

장시성 위두현은 홍군, 장정, 도강의 세 단어가 지배한다. 거리도 홍군대도, 장정대도, 도강대도로 이름지어져 있고 다리도 홍군대교, 장정대교, 도강대교로 불린다. 사진은 장정대교의 모습. [유상철 기자]

미국과의 투쟁 방법 또한 시진핑은 장정의 교훈에서 찾고 있다. 그가 장정 기념비에 화환을 바치며 쓴 글 “장정의 정신”에 그 답이 있다.
장정의 정신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그 어떤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요불굴의 정신이다. 여기엔 많은 희생이 따른다. 34년 장정을 떠날 때 8만 6000명이던 홍군은 1년 후 산시성 옌안에 도착했을 때 7000명 만이 남았다. 미국과의 2차 장정에도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견뎌내겠다는 게 시진핑의 각오다. 둘째는 자력갱생. 미국에 기댄 발전이 아니라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 공장과 농촌 시찰에 힘을 쏟는 이유다.

마오쩌둥은 장정을 '승리의 선언서'라고 말했다. 어떤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 않는 장정의 정신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과의 투쟁에서 장정을 강조하는 이유다. [유상철 기자]

마오쩌둥은 장정을 '승리의 선언서'라고 말했다. 어떤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 않는 장정의 정신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과의 투쟁에서 장정을 강조하는 이유다. [유상철 기자]

마지막은 적의 포위를 뚫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전략에 정성을 들이는 이유다. 동쪽에서 밀려오는 미국의 거센 압박을 피해 중앙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로 서진(西進)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시진핑의 장정 정신 강조 및 전파를 위해 지난 6월부터 500여 명의 기자를 동원해 '기자들이 다시 장정의 길을 간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시진핑이 제2의 장정을 통해 도달하려는 곳은 어딜까.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 즉 “중국몽(中國夢) 달성”이라고 말한다. 중국이 세계 최강이던 시대를 재현하겠다는 거다. 단, 꿈을 이루려면 미국을 넘어야만 한다. 향후 30년 제2 장정을 통해 그 목표를 달성한다는 게 건국 70주년을 맞은 시진핑의 결의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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