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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200만 조선족, 한민족 정체성 이어갔으면”

중앙일보

입력

방청객 여러분, 그리고 댁에 계신 여러분, 멀리 계시는 해외 동포·근로자 여러분. 한 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1985년부터 무려 34년간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는 전설의 음악프로그램 KBS '가요무대'를 시작하는 한결같은 오프닝 멘트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한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신문과 TV를 통해 근근이 고국의 소식을 접했던 1세대 해외 동포들에게는 저 인사말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싶다.

외교부에 따르면 전 세계 180개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나라 재외동포의 수는 지난해 말 기준 749만명. 재외동포재단법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국적과 관계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 거주·생활하는 사람을 재외동포로 정의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미국(254만6952명), 중국(246만1386명), 일본(82만4977명) 순으로 많다.

국가 차원에서 재외동포는 각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기도 하다. 1997년 공포된 재외동포재단법을 근거로 출범한 재외동포재단이 세계 곳곳에 진출한 동포를 대상으로 문화사업과 한글 교육 등 각종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다.

지난 2~6일, 서울과 인천에서 열린 '2019 세계한인차세대대회'[출처 재외동포재단]

지난 2~6일, 서울과 인천에서 열린 '2019 세계한인차세대대회'[출처 재외동포재단]

지난 2~6일, 서울과 인천에서 열린 '2019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역시 이 같은 활동의 일환이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는 16개국 재외동포 단체 대표 등 120여명이 참석해 국제 사회 이슈와 한국의 대응 방안, 그리고 젊은 재외동포의 역할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이어졌다.

중국조선족학생센터(KSC) 대표로 참석한 이 행사에 참가한 허원묵 삼성전자 중국총괄 부총재(기술영업전략팀장)는 "중국 내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조선족 청년층을 중심으로 자치지역(옌볜조선족자치주)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이 때문에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동포로서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옅어지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 지린성 옌볜에서 태어나 칭화대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친 허 부총재는 2000년 칭화대, 베이징우전대, 베이징사범대에 진학한 조선족 학생들과 함께 KSC를 만들었다. 조선족 학생들이 한국 문화를 공유하고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설립 취지였다. 그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과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조선족이 한·중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글 교육 등 각종 문화 사업을 강화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허 부총재와의 일문일답.

한국 문화를 공부하는 조선족 학생의 모임이라니 흥미롭다
1999년부터 모임을 준비해 2000년 11월, 중국조선족학생센터(KSC)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자는 의미이다. 200만 조선족 대부분이 옌볜에 모여있을 때는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개혁개방 물결이 일던 1980년대 이후, 도시로 이주하는 사례가 늘면서 소수의 조선족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고 교류의 기회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1999년은 중국에서 한참 인터넷 문화가 생겨나던 시점인데, 모교인 칭화대 친구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각 지역에 있는 조선족 학생들과 교류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각 학교의 조선족 학생들 사이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함께 뜻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초창기 멤버들은 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원에 재학 중인 경우가 많아서 2002년부터는 대학 재학생을 중심으로 단체 운영을 맡겼는데, 매년 약 50명의 운영진이 모임을 주도한다. 조선족 학생들에게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걸 계속 느끼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정기적으로 체육행사와 문화행사를 개최해 같이 운동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유대감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과 대학 졸업을 앞둔 후배들과 만나는 자리를 해마다 마련해 취직을 위한 조언을 하기도 한다.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지린성(길림성) 등 고향 모교를 찾아 조선족 고등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명문대 학생들이 직접 진학상담을 하다 보니 학교 차원에서 환영하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이 만난 고교생들이 대학에 진학해 KSC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재외동포재단]

[출처 재외동포재단]

어려운 점은 없나

매년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조선족 4세대, 5세대로 갈수록 한국말을 잘 못 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조선족 자치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시설이 좋은 한족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서만 한국어를 배우다 보니 이전 세대보다는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단체에서도 한국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현상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느껴진다.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민족적 유대감을 기르는 교육을 하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학생 수가 줄다 보니 옌볜 지역 초등학교 10곳 중 7곳은 문을 닫은 상황이다. 학생 한 명을 서너명의 선생님이 가르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출처 재외동포재단]

[출처 재외동포재단]

중국 내 한국어 학과는 늘어난 것 같은데
맞다. 한류 열풍으로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국어를 잘하는 조선족은 줄어든 반면 한국어를 잘하는 한족은 늘었다. 그래서 한국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준비할 때도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경쟁하게 됐다. 예전에는 조선족에게 언어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이점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래서 더욱 한국어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중국은 단일 시장으로는 가장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는 나라다. 한 개 제품을 만들면 14억명이 그 제품의 잠재 소비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기업에도 중국은 큰 의미가 있는 시장이다. 이런 경제 활동 외에도 한국과 중국이 함께 풀어가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조선족이 두 나라 사이에 가교가 될 수 있도록 KSC 차원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다.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계속 지켜가는 것이 그 첫걸음일 것 같다.

차이나랩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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