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목소리 커진 일본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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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인 친구는 손사래를 쳤다.

"의장 성명이면 몰라도 안보리 결의안에 중국이 손을 드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일본이 제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을 놓고 일본과 중국이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던 지난주 초의 일이다. 중국 공산당 계열 언론사의 도쿄 특파원인 그의 예상은 며칠 만에 빗나가고 말았다. 중국.러시아의 안을 반영한 절충안의 모양을 갖추긴 했지만 말이다.

일본이 대북 결의안 제출을 주도한 데 대해서는 일본 안에서도 회의론이 많았다. 중국의 거부권 발동이 뻔히 예상되는 일에 '총대'를 메는 것은 중.일 관계만 악화시킨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완고했다.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외교전이 벌어지는 동안 도쿄의 총리관저에서는 "(거부권 행사를) 하려면 해 보라, 누가 손해인지"란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사령탑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현장 외교관들에게 "마지막에 내려설지언정 먼저 양보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내릴 정도였다.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의 외교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국제사회의 굵직한 현안 처리에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일관된 자세로 뜻을 관철한 전례는 좀처럼 기억에 없다. 그동안 일본 외교의 무기는 경제력이었다. 개발도상국들에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고 분쟁.재난 지역에는 늘 최다 기부국이었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이기엔 돈만으론 역부족이었다. 거액 130억 달러를 전비로 내고도 "한 일이 뭐 있느냐"며 국제사회로부터 뭇매를 맞다시피한 걸프전은 아직도 일본에 악몽으로 남아 있다.

그랬던 일본이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국과의 밀월관계가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일본 스스로 "이제 목소리를 낼 때가 왔다"는 판단을 내리고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해야겠다. 일본 외교의 자세 전환은 한.일 관계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지금까진 한국이 목청을 높이면 침략과 식민지배란 '원죄'를 안고 있는 일본이 적당히 양보하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일본과의 협상에 참여했던 외교 실무자들은 "더 이상 예전의 일본이 아니다"고 말한다. 어제의 일본이 아닌, 오늘의 일본과 만나고 부대끼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때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