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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SK·남양유업 이어 CJ까지…재벌가 마약사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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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잊을 만하면 터진다”
재벌가 마약 사건이 그렇다. 올해에만 내로라하는 재벌가 자제 4명이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 이들이 접한 마약류는 필로폰부터 마약 쿠키, 액상 대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경찰이 현대그룹 3세 정현선(29)씨가 구입해 투약한 액상대마 카트리지 등 압수 물품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현대그룹 3세 정현선(29)씨가 구입해 투약한 액상대마 카트리지 등 압수 물품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잇따른 재벌가 마약, SK·현대·남양유업·CJ까지

올해 첫 테이프는 SK그룹 창업주의 손자 최영근(31)씨가 끊었다. 그는 SK그룹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손자다.

경찰은 올해 초 마약 공급책 이모(27)씨를 수사하던 과정에서 최씨가 연루된 사실을 파악했다. 최씨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대마 쿠키와 액상 대마 카트리지 등 대마 81g(2200여만원 상당)을 구입해 상습적으로 흡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변종 마약 투약' SK그룹 창업주 손자 최영근씨 [연합뉴스]

'변종 마약 투약' SK그룹 창업주 손자 최영근씨 [연합뉴스]

경찰은 마약 공급책 이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재벌의 범행도 확인했다. 정몽일 현대엠파트너스(옛 현대기업금융) 회장의 장남 정현선(29)씨였다. 정몽일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8남이다. 정현선씨는 최씨와 함께 4차례 대마를 함께 흡연하는 등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 자택 등지에서 변종 마약인 액상 대마 카트리지와 대마초를 총 26차례 흡연한 혐의로 기소됐다.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 표극창)는 지난 6일 최씨와 정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각각 1060만원과 14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남양유업 외손녀인 황하나(31)씨도 마약으로 논란이 됐다. 그는 전 약혼자였던 가수 겸 배우 박유천(33)씨와 지난 2~3월 3차례에 걸쳐 필로폰 1.5g을 구입해 6차례 걸쳐 투약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2015년 5~9월 서울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3차례 걸쳐 투약하고 지난해 4월에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의사 처방 없이 구입해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법원은 황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상습 대마 흡연 혐의 현대가(家) 3세 정현선씨 [연합뉴스]

상습 대마 흡연 혐의 현대가(家) 3세 정현선씨 [연합뉴스]

최근에는 CJ그룹의 이선호(29)씨가 마약을 투약하고 밀반입하려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그는 지난 1일 오전 4시55분쯤 미국발 여객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할 당시 액상 대마 카트리지와 사탕·젤리형 등 변종 대마 수십 개를 숨겨 들어오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간이 마약 검사에서도 양성반응이 나왔다.

액상 대마 등 변종 마약에도 손대

이들 중 최씨와 정씨, 이씨 등이 손을 댄 마약은 액상 대마 카트리지다. 대마를 고농축 한 액상 대마는 1g에 15만원 수준으로 일반 대마보다 상대적으로 고가다. 경찰 관계자는 “액상 대마는 대마 특유의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 일반 대마초보다 주변에서 흡연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선호 CJ그룹 이재현 회장 장남[중앙포토]

이선호 CJ그룹 이재현 회장 장남[중앙포토]

쿠키·사탕·젤리 등 변종 대마도 나왔다. CJ그룹 장남 이씨는 입국 당시 어깨에 메는 백팩에 캔디·젤리형 대마 등 변종 대마 수십 개를 숨겨서 들어오려다가 세관 당국에 적발됐다. 그는 일부 마약이 합법화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이 같은 변종 대마를 쇼핑하듯 손쉽게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유학파 출신, 마약 경각심 낮아

마약에 손을 댄 재벌가 자제들의 공통점은 모두 해외 유학파 출신이라는 것이다. 최씨는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 등에서 유학했고 정씨도 해외 유학 시절 마약공급책 이씨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황씨와 이씨도 미국 등에서 유학을 했다.

윤흥희 한성대학교 교수(마약알코올학과)는 “액상 대마의 경우 일반 대마보다 밀반입이 용이하고 간이시약 검사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적발되는 경향이 있다”며 “재벌가 자녀들은 대마 등이 합법인 외국에서 유학생활 하면서 마약을 접하기 때문에 내국인들보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나 유해성을 덜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된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31)씨 [뉴시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된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31)씨 [뉴시스]

처벌이 약한 것도 논란이다. 수사기관에 구속된다고 해도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재판에 넘겨진 최씨와 정씨, 황씨 등도 모두 집행유예 판정을 받아 석방됐다.

황씨는 2011년 대마를 피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2015년에는 마약 혐의로 입건됐지만, 부실수사로 불기소된 전력이 있다.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항소한 상태다. 황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은 다음 달 15일 열릴 예정이다.

이씨도 혐의를 시인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 ‘특혜’ 논란이 일었다.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이씨는 지난 4일 인천지방검찰청에 직접 찾아와 “구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6일 오후 구속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재벌가 자제들의 경우 거대 로펌을 선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일반 마약사범보다 형량이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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