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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색다른 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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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분당 바탕소 미술학원에서 미술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실험하고 있는 이광서(左).이준호(中).강성일 삼총사 선생님이 아이들이 그린 작품 파일을 펼쳐 놓고 활짝 웃고 있다. 김형수 기자

'책상 크기보다 커서는 안 되는 스케치북, 50분의 수업 안에 끝내야 하는 상상, 나홀로 작업'.

서울대 미대 졸업동기 3명이 이처럼 획일화된 일선 미술 교육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광서(36).강성일(36).이준호(33)씨는 나이 발달 단계에 맞춰 통합 감각을 이용하고 또래와 같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 작업을 모색했다. 기술을 열심히 익혀 대학에 갔지만 빈 캔버스를 보고 공포를 느꼈던 본인들이 깨우친 방법이다.

그래서 스케일도 크다. '다빈치 프로젝트'라 이름붙인 작업에 드는 시간은 무려 2년. 그 중 '상상마을 만들기'란 공동작업엔 아이들 30여 명이 동시에 교실 벽지에 달라붙어도 모자란다. '미술의 영재교육'을 외치는 이들 삼총사 선생님의 아이들은 널찍한 공간, 시간, 그리고 선생님이 두런두런 들려주는 이야기를 누린다. 그래서 3명의 노트북엔 자신들이 가르치는 아이들 90여 명 각각의 작업 과정 포트폴리오가 시간 순으로 보관돼 있다. 예의 '작가' 대우다. 다소 귀찮은 작업이지만 이들은 "미술적 창조력을 발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광서=경기도 광주 일선 학교에서 특기적성교육을 2년간 해오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적응을 잘해도 창의적이 될 수 없고, 적응을 못해도 스트레스만 받는 교육이 돼요. 영재교육은 긴 시간 아이에 대한 관찰과 인내를 요구해요.

▶이준호=시지각은 청각에 비해 580배의 기억 효율을 지녀요. 시지각에 의한 교육효과가 입증된 거지요. 특히 교육심리학자 피아제에 의하면 6세 전은 조작기, 6~11세엔 구체적 조작기, 12세 이후엔 추상적 시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물감 뿌리고 던지고 놀고 손바닥으로 색을 문지르고 싶은 여덟살 난 구체적 조작기의 아이들에게 추상적인 영어.수학 조기 교육을 시키거든요. 이런 아이들은 표현을 두려워하는 발달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요.

▶강성일=외부 상징이 없는 네살 아기는 동물원 만들기 수업에서 원래 목표인 악어 만들기보다 울타리를 만드는 것에 흥미를 보입니다. 악어라는 형상보다는 손에 힘을 줘서 스티로폼에 꼽는 것을 신체가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교사가 작품 모델을 만들어 놓고, 그대로 따라 하라는 식의 수업에서는 이런 의외의 발견이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두 가지 방법이 많아요. 미술을 지식으로 접근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일회용 퍼포먼스, 즉 놀이에 그치고 마는 방식이죠. 우리는 감각이 결여되거나 교훈이나 지속성이 없는 이 두 가지 방식을 다 지양하려 했습니다.

▶이광서=부모들은 단순하게 선을 똑바로 긋고 그 선 안에 색을 칠하면 깔끔하니까 보기 좋다고 하지요. 그런 아이들은 칭찬받기 위해 계속 같은 방식을 고수하지요. 지저분하지만 이것저것 붙여보면서 오감을 이용한 감각적 통합이 필요합니다. 미술이란 구체적 수업목표를 제시하기보다는 단서와 재료 등만 지원해 주면 됩니다. 또 내러티브(이야기)로 단서를 제공해 나가는 데 부모나 교사의 대화가 필수적이지요. 협동도 중요해요. '왜 내가 칠한 데 네가 건드려'하며 영역다툼을 하던 아이들도, 곧 '우리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배우지요.

이원진 기자 <jealivr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왼쪽부터) <1단계> 아이들은 균형감과 구도를 생각하며 나무블록 쌓기를 하게 된다. 이 시기는 재료와 친숙해지고 재료의 한계를 경험하는 단계. <2단계> 협동심 키우기. 3주간 각자가 생각한 상상 속의 용 부위를 그린 뒤 각자의 그림조각을 바닥에 놓고 거대한 용 한 마리를 탄생시키고 있다. <3단계> 구체적 조작기의 아이들은 온몸이 물감으로 범벅이 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그저 색을 섞고, 칠하면서 노는 게 즐겁다. <4단계> 공동작업이 빛을 보는 순간. 저마다 만든 입체물을 가지고 지도 위에 우리 마을을 만든다. 서로의 영역을 좀 침범하면 어떤가. ‘우리’의 작품인데….

◆ 엄마들이 알아두면 좋은 미술 교육법

#1. 집 더러워지면 치우면 되죠=결벽증 있는 엄마들은 작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만 달랑 주고 상상화를 그리라 하지요. 통 크게 방 하나, 부스 하나를 마련해주고 마음껏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2. 완성된 장난감보다는 자재를 집 안 곳곳에 숨겨둬요=나무블록.종이.찰흙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가진 도구들을 줘보세요. 아이가 스스로 맞춰보고 쌓아봅니다. 엄마들은 그저 조작법 정도만 알려주면 되지요.

#3. 그림 동화책을 보지만 말고 만들어 보세요=그림책을 보며 대화를 하든지, 하루 일과를 얘기하면서 그 일을 자연스럽게 시각적으로 표현하도록 유도해 보세요. 그 그림을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답니다.

#4. '놀토'에 간 미술관, 놀이터처럼 이용하세요=부모와 미술관에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좋아요. 그림-제목-작가를 지식으로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무슨 색깔이 마음에 드니" 처럼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주제로 대화해 보세요.

#5. 아이들의 관찰에서 소재를 찾으세요=아이가 이상한 거, 재밌는 거 몇 개라도 발견했다면 놓치지 말고 대화로 유도하세요. 특이한 사람을 봤다고 하면 "옷은 어떤 무늬였니"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그려볼까" 해보세요. 관찰과 기억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이 유도됩니다.

#6. 통제와 비난은 금물="너는 선을 왜 삐뚤빼뚤 그리니" "사람을 왜 만날 똑같이 그리니" 하는 말은 하지 마세요. 대신 잘 하는 것을 칭찬해 주세요.

#7. 결과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아이들이 그린 작품사진을 찍어 보관하세요. 한 달에 걸쳐서 조금씩 완성되는 모습들을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 시간 순으로 배열해 보세요.

◆ '다빈치 프로젝트'는 7단계로 나눠 2년간 공동작업

미술 영재 교육. '창의력'과 '문화 콘텐트'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되는 시대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하다. 2년여의 협동 작업을 통해 미술 영재 교육을 지향하는 '다빈치 프로젝트'는 그래서 신선하다. 시지각 능력 검사에 근거해 아이 발달 수준에 맞춰 7단계로 이뤄지는 이 프로젝트는 조만간 특허 신청이 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대 출신 강병직(40.서울대 교육대학원 박사과정) 강사가 커리큘럼을 직접 짰다. 7개 개별 프로젝트는 각각 3~4개월 걸린다. 아이들이 친숙한 개념 순으로 '자아'에서부터 시작해 '세계'로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1부 '인체 프로젝트'에서는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내부 장기 등 신체를 배운 뒤 자기 꿈 표현하기 등을 통해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갖도록 한다. 그러나 개념에만 그치지 않는다. 잉태와 출산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준 뒤 풍선에 종잇조각을 붙인 후 터트리며 아크릴 물감으로 내부를 장식하면서 성교육과 생명의 소중함을 동시에 배운다.

다음 단계는 주거 공간 및 도시 설계다. 아이들은 힘을 합해 상상아파트를 만든다. 세계의 어린이들과 만나는 다문화와 전통 체험 과정도 이어진다. 아프리카 등의 의상을 코스프레로 만들어 입으면서 다양한 환경을 체험해 본다. 이외에 ▶소리와 빛 등 자연현상 탐구 ▶우주 탐험 ▶미래사회를 가상하며 필요한 물건을 직접 디자인해 보기 등이 있다. 이광서 원장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특히 공동으로 작업을 하면서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개념을 익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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