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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CJ그룹 유력 후계자의 황당한 일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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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호 31면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온 나라가 한달 넘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으로 어지러운 가운데 세간의 관심 밖인 뉴스가 하나 있다. 평소 같으면 언론 매체에서 대서특필하고 한동안 떠들썩했을 내용이지만 ‘조국 태풍’에 멀찌감치 밀려났다. 변종 대마 밀반입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선호(29)씨 얘기다. 봐주기·특혜 논란 속에 검찰은 5일 이선호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수사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지만, 그걸 떠나서 인천공항 입국 때부터 인천지검 자진 출두까지 이선호씨의 행적과 검찰의 대응 등은 황당함의 연속이었다.

대마 든 가방 메고 세관 통과 시도 #‘왕관의 무게’ 견딜 의지 돌아봐야

#1. 이씨는 1일 새벽 미국에서 입국하면서 여행용 가방에 액상 대마를, 어깨에 메는 배낭에는 캔디·젤리형 대마와 대마 흡연 도구 등을 숨겨 들여왔다. 인천공항세관 측은 입국객을 대상으로 수화물 엑스레이(X-ray) 검색을 하던 중 이씨의 밀반입 사실을 적발하고 검찰에 이씨를 인계했다. 이씨는 변종 대마를 투약한 혐의도 받고 있다. 간이 소변 검사에서도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왔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씨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적발될 걸 뻔히 알면서 변종 대마와 흡연 도구를 가방에 담아 세관 검색대 앞에 섰을까. 원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마약류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2. 인천지검 강력부(부장 김호삼)는 5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된 이씨의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그러나 이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기까지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마치 자신을 적발해달라는 듯한 황당한 방법으로 다량의 마약 밀반입을 시도했지만 세관은 특별한 조사나 현행범 체포 없이 이씨를 검찰에 넘겼다. 검찰 역시 적발 당일 이씨를 그대로 귀가시켰고 3일에는 비공개로 소환해 조사했다. 특혜 논란이 일자 검찰은 4일 오전 뒤늦게 이선호씨의 서울 장충동 자택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통상 마약 밀반입과 투약 등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는 구속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 여론이 나빠지자 2차 조사까지 마친 후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것 역시 기존 수사 관행에 비춰볼 때 황당한 일이었다.

#3. 두 차례나 귀가 조치를 받은 이선호씨는 4일 검찰의 압수수색 직후 홀로 택시를 타고 인천지검을 찾아가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하루 빨리 구속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법적 조언을 받아서였는지 아니면 심경의 변화로 그랬는지 모를 일이지만 역시 황당한 장면이었다. 검찰은 그에게 출석 이유를 재차 확인한 후, 심리상태 등을 고려해 긴급체포했다. 이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구속을 바란다”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원하지 않았다. 법원은 6일 저녁 이씨에 대한 영장을 발부했다.

구속된 이씨의 대마 밀반입 사건과 그에 따른 황당함은 그가 국내 주요 그룹의, 그것도 유력한 경영권 후계자였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문제다. 이씨가 건강과 결혼 문제 등에서 개인사가 불행하고 성격도 활달하지 않기 때문에만 생긴 사건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3, 4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활발한 재계에서 이와 비슷한 일탈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할아버지와는 자란 환경부터 처한 현실까지 모두 확연히 다른 세대다. 왜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지 목적의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경영이 아닌 다른 일에 관심을 두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재계에서도 후계자 양성 계획과 체계,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의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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