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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삶 사는 두 아이 엄마가 14년간 후원 포기 않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14)  

이혜연 후원자(왼쪽)와 아들 시환이의 모습. 신이 난 표정으로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진다. [사진 이혜연 후원자]

이혜연 후원자(왼쪽)와 아들 시환이의 모습. 신이 난 표정으로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진다. [사진 이혜연 후원자]

지난주 스마트폰 메신저로 반가운 동영상이 배달됐다. 영상 속에는 노란 꿀벌 무늬 옷을 입은 남자 아기가 보행기에서 혼자 일어나 보려고 가느다란 두 다리를 힘껏 뻗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이는 한 손에 숟가락을 꼭 쥔 채, 누나의 손을 잡고 두 다리에 힘을 준다.

이 사랑스러운 아기는 우리 기관 일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후원자 부부의 아들, 시환이다. 올해 세 돌을 맞은 시환이는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나 불과 1년 전까지 대학병원에 장기입원해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음식을 입으로 먹을 수 없어 코에는 늘 관을 삽입해야 했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감염 우려 때문에 무균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가끔 아이의 엄마인 이혜연 후원자와 통화할 때면 그의 고된 삶에 나 또한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녔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아이가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렇게 콧줄을 빼고 입으로 먹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자의 메시지는 내게 기적과 같았다.

기도하는 우간다컴패션 어린이의 모습. 아픈 아이를 둔 후원자는 삶이 힘들고 낙심될 때마다 ‘후원자님을 위해 기도한다’는 지구 반대편 후원 어린이의 편지를 보며 힘을 냈다고 한다. [사진 한국컴패션]

기도하는 우간다컴패션 어린이의 모습. 아픈 아이를 둔 후원자는 삶이 힘들고 낙심될 때마다 ‘후원자님을 위해 기도한다’는 지구 반대편 후원 어린이의 편지를 보며 힘을 냈다고 한다. [사진 한국컴패션]

후원 어린이 기도에 고된 삶 위로받아

두 아이의 엄마이자 영어 강사인 그는 매일 밤 10시 학원 강의를 마치면 병원에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아이 곁을 지키다 아침나절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2년 넘게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가난 속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학원 제자들과 함께 후원 콘서트를 찾아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한국컴패션 일반인 홍보대사 10주년 행사 땐 대표 발표자로 섰다. 매달 2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면서도 2005년부터 3명의 어린이에게 보내는 후원금은 14년 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았다.

오랜 기간 후원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후원 어린이들이 보내준 기도의 힘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편지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글귀는 '후원자님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것이었어요. 그 기도에 힘입어 오늘까지 올 수 있었죠."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 없지만 낙심될 때마다 후원 어린이를 보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생각했다”며 “내가 받은 감사의 제목을 붙잡았다”고 전했다. 후원 어린이의 기도에 고된 삶을 사는 한 후원자가 살아갈 힘을 얻었다니, 무엇이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삶이 참으로 감사하다.

약수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전용출 후원자의 구둣방.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전용출 후원자는 구두를 닦아 번 돈으로 7년째 과테말라에 사는 청각 장애 소녀를 후원하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약수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전용출 후원자의 구둣방.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전용출 후원자는 구두를 닦아 번 돈으로 7년째 과테말라에 사는 청각 장애 소녀를 후원하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나와 같은 장애 가진 아이 후원한 건 내 삶 최고의 일”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후원자와 후원 어린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사는 곳과 나이와 관계없이 두 사람이 편지로 쌓은 우정은 가까운 친구 못지않다. 우리 기관에선 이미 고전과 같은 이야기지만, 청각 장애를 가진 후원자와 후원 어린이가 만나는 영상은 지금 다시 봐도 뭉클하다. 어린 시절 청력을 잃고 구두를 닦으며 번 돈을 모아 과테말라에 사는 청각 장애 소녀(마리엘라)를 돕는 후원자의 이야기.

그는 2012년 말 TV에 개발도상국 가난한 어린이들의 삶을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지만, 일찌감치 구두닦이로 돈을 벌어야 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몇 해 전 그는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러 과테말라까지 건너갔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동물원을 구경하고 한국에서 손수 준비해 간 운동화를 신겨주며 마음을 전하는 모습.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특히 “제 인생 최고의 일은 마리엘라를 후원하게 된 것”이라는 후원자의 마지막 말은 내가 들었던 어떤 고백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간다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한국인 후원자와 후원 어린이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우간다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한국인 후원자와 후원 어린이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건강악화, 사업실패에도 어린이 손 놓지 않는 후원자들

우리 기관 인트라넷 게시판에는 매주 후원자들의 기도 제목이 올라온다. "암 진단을 받아서 장기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후원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후원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은퇴 후에도 일거리가 있는 것에 감사해 후원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클 때까지 후원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당분간 후원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황이 좋아져서 안정적으로 후원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배우자가 뇌출혈도 쓰러져서 일을 그만두게 됐어요. 재정상태가 나아지면 꼭 다시 후원하겠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전 직원 예배 말미에, 직원들은 올라온 기도 제목을 놓고 한마음으로 기도한다. 기도 내용은 후원자들의 사업과 취업, 건강, 가족 문제 등 다양하다. 저마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에 가끔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향한 그 마음 알기에, 감사함으로 때론 무거운 책임감으로 오늘도 후원자들을 마주한다.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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