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런 무더위에 왜 사서 고생? 후배에게 물었더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11)

직원이 진행하고 있는 '사이클링 포 컴패션' 크라우드 펀딩을 후원하고 받은 재봉틀 모형. 모인 후원금은 태국컴패션 엄마들에게 선물할 재봉틀을 구매하는데 사용된다. [사진 조희경]

직원이 진행하고 있는 '사이클링 포 컴패션' 크라우드 펀딩을 후원하고 받은 재봉틀 모형. 모인 후원금은 태국컴패션 엄마들에게 선물할 재봉틀을 구매하는데 사용된다. [사진 조희경]

얼마 전, 기관의 후배(이하 백 과장)가 진행하는 나눔펀딩에 5만원을 후원했다. 백 과장의 펀딩은 태국컴패션에 등록된 어린이들의 엄마에게 재봉틀을 선물하는 것이 목적이다. 태국에서 재봉틀은, 가난한 가정의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무척 중요한 수단이다.

백 과장 부부는 태국 엄마들에게 재봉틀을 선물하기 위해, 8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 동안 320km(대전~서울) 자전거 레이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펀딩 사이트에는 ‘태국 엄마들을 위해 엄마가 달립니다’는 타이틀과 함께 ‘아이 셋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저희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태국 어머니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습니다. 후원에 동참해 주시면 그 마음을 기억하며 끝까지 달리겠습니다!’ 라는 비장한 각오가 적혀 있다.

백 과장이 진행하고 있는 태국컴패션 엄마들을 위한 나눔펀딩 캠페인. 부부가 재봉틀을 선물하기 위해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2박3일 동안 사이클을 타고 달린다. [사진 한국컴패션]

백 과장이 진행하고 있는 태국컴패션 엄마들을 위한 나눔펀딩 캠페인. 부부가 재봉틀을 선물하기 위해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2박3일 동안 사이클을 타고 달린다. [사진 한국컴패션]

백 과장은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후원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벌써 5년째 한 명의 ‘후원자’로서 이런 모금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필리핀센터의 아빠들에게 선물할 자전거택시(페디캅) 나눔펀딩으로 60여만원을 모았다. 폭염일수 31.4일로 덥다 못해 뜨거웠던 2018년, 그 한여름에 후원자 20명과 함께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하더니, 올해는 태국 엄마들을 위해 아내까지 가세했다.

태국컴패션 센터에서 재봉틀 기술을 배우고 있는 엄마들. 센터는 등록된 어린이의 부모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재봉, 제빵, 가방제작 등 다양한 기술교육을 제공한다. [사진 한국컴패션]

태국컴패션 센터에서 재봉틀 기술을 배우고 있는 엄마들. 센터는 등록된 어린이의 부모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재봉, 제빵, 가방제작 등 다양한 기술교육을 제공한다. [사진 한국컴패션]

업무와 세 자녀 양육으로도 충분히 바쁜 생활 속에서, 이런 개인적인 후원활동까지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좋아서 해요. 저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일 뿐이고 좋아서 한 일인데, 저로 인해 주위 분들이 후원에 동참하는 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기쁘네요.”

백 과장이 참여하는 ‘사이클링 포 컴패션(Cycling For Compassion, CFC)’ 캠페인은 1년에 한 번 후원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달리며 모금 활동을 펼치고,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선물을 보내는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활동이다. 지난 2013년, 자전거를 좋아하는 몇 명의 후원자가 의기투합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함께 탔던 게 이 캠페인의 시발점이 됐다.

후원자들이 스스로 시작한 캠페인이다 보니 기획부터 일정 조율, 홍보까지 모두 후원자들이 직접 한다. 이들은 2015년 인도컴패션 어린이들에게 보낸 자전거 선물을 시작으로 엘살바도르 어린이를 위한 정수필터(2016년), 케냐 가정을 위한 염소(2017년), 작년 필리핀 가정을 위한 자전거 택시(2018년)까지 매년 다른 주제로 후원금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후원자들이 이 캠페인을 몇 년째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서 CFC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한 강상규 후원자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후원자님, 이렇게 열정적으로 CFC 활동을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그런데 이 분 역시 “재미있잖아요” 라는 대답을 내놨다. 몇 명이 ‘재미’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수십 명(펀딩에 참여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수백 명)이 참여하는 ‘의미 있는 활동’이 된 셈이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진행된 사이클링 포 컴패션 참가자들의 모습. 모금된 후원금 2,400여만원은 48개 필리핀센터 아빠들에게 자전거택시를 선물하는 데에 사용됐다. [사진 한국컴패션]

지난해 제주도에서 진행된 사이클링 포 컴패션 참가자들의 모습. 모금된 후원금 2,400여만원은 48개 필리핀센터 아빠들에게 자전거택시를 선물하는 데에 사용됐다. [사진 한국컴패션]

재미를 의미로 바꾸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애드보킷(Advocate)’이라고 부른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자신이 속한 회사와 학교,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으로 후원활동을 벌이는 후원자들이다.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애드보킷들이 자전거와 마라톤, 노래, 무용, 연주, 강연 등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후원 그 이상의 즐거움을 전했다.

이들은 이 즐거움을 맛보려면 ‘일단 한번 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신은 후원의 중요성을 전하는 어떤 설명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다.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 잘하는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후원금 모금 활동을 벌이기에 기대 이상의 열매를 맺는 경우가 많다.

처음 애드보킷 모임에 갔을 때, ‘이게 뭐라고 자신과 가족의 삶까지 바칠까’ 하고 호기심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컴패션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런 기관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활동한다고 해서 기관이 뭐 하나 제공하는 것도 없는데, 이들은 토요일 오후에 모여서 어린이 후원을 전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눔의 가치를 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들. 이들에게 후원이란 가치 있는 일, 그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기부가 신념의 발현을 넘어서 개인 삶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기부 문화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