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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린 100세 할머니도 잊지 않았다 '치과의 기억'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유원희의 힘 빼세요(17)

고교 선배의 부탁으로 치매가 있는 노모를 찾아뵙고 틀니 보강 치료를 하기로 했다. [사진 pxhere]

고교 선배의 부탁으로 치매가 있는 노모를 찾아뵙고 틀니 보강 치료를 하기로 했다. [사진 pxhere]

“유박사, 어머니께 마지막 효도를 하게 좀 도와주게.”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 우리 병원의 오랜 환자이기도 하고 내 고등학교 선배인 덕재 형님이 어느 날 내 병원으로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했다.

고교 선배의 마지막 효도

“형님, 무슨 부탁인데요. 제가 당연히 해드려야죠.”
“나에겐 노모가 계시네. 지금 요양원에 계시는데 연세가 100살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백 살이 넘은 노모가 계시다니!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건 그 어머니의 소원이었다. 선배의 어머니는 틀니를 하고 있는데 그 틀니의 앞부분이 깨져 보기가 흉하고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치매까지 있는 노모는 ‘내 틀니 어딨어?’ 하면서 틀니를 찾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 치료를 받을 상황이 아니야. 그러니 자네가 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겠나?”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병원의 휴무일인 목요일에 요양원을 방문해 틀니를 보강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요양원에 가 선배의 노모를 뵈었다. 휠체어에 앉아 치료하기 시작했다. “입을 아 하고 벌려주세요” “꽉 물어보세요” 등 내가 요구하는 말에 잘 협조해줘 무사히 진료를 마치고 틀니를 보강할 수 있었다.

선배가 기뻐하는 건 물론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큰 따님이 환하게 웃으며 노모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진료를 잘 받으세요?”

선배의 노모는 휠체어를 타고도 대단히 치료를 잘 받았다. [사진 pixabay]

선배의 노모는 휠체어를 타고도 대단히 치료를 잘 받았다. [사진 pixabay]

노모는 그랬을 것이다. 예전부터 치과 진료를 잘 받은 기억이 있어 치매인데도 그렇게 잘 받은 거라고. 사람의 능력은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뛰어나고 우리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우리의 능력과 기억력은 더 잘 발휘할 수 있다.

선배 어머님의 진료가 끝난 후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 내가 만나는 환자, 오늘 내가 하는 이 진료가 평생을 두고 환자의 기억에 남아 있을 거라고. 그러므로 매 순간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믿는다. 내가 효도한 만큼 나도 효도를 받는다고.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핵가족시대에 가족이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오랜만에 만나는 그리운 부모, 형제. 다시 한번 함께 있기에 소중하고 고마움을 누리는 풍성한 한가위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유원희 WY 치과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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