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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관객 참여형 영화제 풍성…'구민 감독' '국민 프로그래머' 모십니다

중앙일보

입력

3일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단편 영화 '샛강산책'. 영화를 한번도 찍어본 적 없는 영등포 구민 나영희씨가 연로한 시어머니와 하루하루 산책기를 직접 단편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사진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3일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단편 영화 '샛강산책'. 영화를 한번도 찍어본 적 없는 영등포 구민 나영희씨가 연로한 시어머니와 하루하루 산책기를 직접 단편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사진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샛강을 산책하는 시모와 나의 힐링타임.’ 3일 제11회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개막작 다섯 편 중 한 편으로 상영되는 단편 다큐멘터리 ‘샛강산책’의 시놉시스다. 영화를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서울 영등포구 주민 나영희씨가 연로한 시어머니와 샛강을 산책하는 하루하루 풍경을 8분여 영상에 직접 담았다. 초보 감독이니만큼 만듦새는 서툴지만, 고부가 함께한 세월이 정겹게 전해온다. 그 진솔함만큼은 개막작에 나란히 선정된 프로감독들의 단편 못지않다.
그저 상영작을 보고 감독‧배우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기존 영화제와 다르다. 올가을 영화제들엔 관객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프로그래머도 돼보는 이색 참여 프로그램이 풍성하다.

'구민 다큐' 발굴 서울초단편영화제 #부산영화제는 관객 프로그래머 모셔 #DMZ다큐영화제선 다큐 해설가 양성

가슴 찡한 이웃의 다큐 함께 봐요

지난 여름 영등포구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초단편영화 아카데미' 모집 포스터. 이를 통해 탄생한 구민 다큐가 3일 개막하는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지난 여름 영등포구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초단편영화 아카데미' 모집 포스터. 이를 통해 탄생한 구민 다큐가 3일 개막하는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먼저, 영등포구가 3일부터 엿새간 영등포 일대에서 개최하는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선 개막작 ‘샛강산책’을 포함해 ‘구민 다큐멘터리’ 9편이 상영된다. 이 다큐들은 지난 7월 한 달간 열린 ‘영등포 초단편영화 아카데미’에 참여한 구민들이 전문가에게 직접 단편 제작 과정을 배워 영등포를 배경으로 한 저마다 이야기를 단편영화에 실어낸 것이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영화제 슬로건에 맞게, 초등생부터 대학생·퇴직자까지 ‘감독’들 면면이 다양하다. 10년 전 아들을 잃고 명예퇴직한 아버지 안진수씨는 다시 찾은 영등포 동네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여정을 단편 ‘나의 섬, 너의 섬’에 몸소 새겼다. 단편 ‘아버지작업실’은 홍요빈 감독이 아버지 일터를 바라본 작품.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담담하게 포착한 어린 딸의 시선이 뭉클한 감정을 안긴다.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손광수 프로그래머는 “구민들의 다큐는 지역의 작은 일상사를 진솔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전문가들과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면서 “외부 게스트를 초청해 그들의 영화를 구경하게 하는 기존 국제영화제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민들이 중요 참여자로서 영화제와 교류할 수 있길 바랐다”고 말했다. 새로운 ‘구민 감독’을 발굴할 초단편영화 아카데미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민 프로그래머님을 모십니다

설경구, 임시완 주연 액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다음달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되는 '리퀘스트시네마' 섹션에 다수 관객의 지지를 받아 상영이 확정됐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설경구, 임시완 주연 액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다음달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머가 되는 '리퀘스트시네마' 섹션에 다수 관객의 지지를 받아 상영이 확정됐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다음달 3일 개막하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선 관객이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되는 ‘리퀘스트시네마:신청하는 영화관’ 섹션이 신설됐다. 관객이 만드는 영화제란 슬로건을 내세운 영화제 속 영화제 ‘커뮤니티비프’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리퀘스트시네마'는 관객들의 티켓 예매가 일정 수를 넘어서는 작품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종의 상영작 투표에 해당하는 이 ‘얼리버드 예매’는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한 상영작 당 1인 최대 4매, 전체 섹션 합계 20매까지 가능하게 했다. 지난달 26일 시작된 선정기간은 9일 동안 계속되며, 후보에 오른 49편 중 지금까지 상영이 확정된 작품은 20편 남짓이다.
2년 전 팬덤을 일으킨 설경구‧임시완 주연 액션영화 ‘불한당:나쁜놈들의 세상’을 비롯해 ‘번지점프를 하다’ ‘차이나타운’ ‘어거스트 러쉬’ 등 기존에 사랑받은 대중영화들은 다시 보려는 관객들의 호응으로 일찌감치 펀딩에 성공했다. 국내 미개봉작을 볼 기회도 생겼다. 발리우드 스타 아미르 칸이 주연한 인도 뮤지컬 영화 ‘시크릿 슈퍼스타’나, 올해 초 타계한 미국 레즈비언 시네마의 선구자 바바라 해머의 연출작 ‘질산염키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용으로 원폭 상흔을 안고 살아온 한국인 피해자들을 비춘 다큐 ‘리틀보이 12725’ 등이 그 주인공. 사전 크라우드펀딩은 3일 마감되지만, 이렇게 관객 프로그래머가 선정한 상영작들은 이달 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예매 기간 티켓을 구매해 누구든 볼 수 있다.
커뮤니티비프 예술감독을 맡은 조원희 공동운영위원장은 “취향이나 팬덤으로 뭉친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단체 관람하며 노래나 춤을 따라 하기도 하는 관람문화에서 착안했다”면서 “아이돌 팬클럽부터 초등동창회까지 다양한 커뮤니티가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영화제를 향유하는 새로운 관객층이 유입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 섹션에서 관객의 지지를 얻어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리틀보이 1272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의 상흔을 안고 살아온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을 담았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 섹션에서 관객의 지지를 얻어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리틀보이 1272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의 상흔을 안고 살아온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을 담았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나도 다큐 해설가 돼볼까

오는 20일부터 8일간 경기도 고양‧파주 일대에서 열리는 제11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선 일반 관객들이 다큐 해설가로 활동한다. 지난 6월 고양시 일산과 파주에서 영화제가 진행한 다큐 전문 해설가 양성 교육 프로그램 ‘다큐도슨트’를 통해서다. 당초 각 지역 25명씩이던 정원을 훌쩍 초과해 총 65명의 수강생이 모일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40~60대 중장년층의 참여율이 높았다.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자녀들과 더 깊게 소통하고 싶다”는 50대 여성 수강생도 있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감독 등 다큐 전문가들이 여름내 2시간씩 10회 강의에 나서 다큐를 함께 감상하고 토론 등을 진행했다.
수료생들은 영화제 기간 동안다큐 상영 전 관객에게 작품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영화제 홈페이지에 상영작 리뷰도 올릴 예정이다. 직접 관객상 수상작도 선정한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최여정 홍보마케팅 팀장은 “한국에선 일시적인 자원활동가를 운영하지만, 해외 오래된 영화제에 가보면 지역주민들이 나서서 관객을 반겨준다”면서 “다큐도슨트에 대한 기대 이상의 호응에 힘입어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혀갈 전망이다. 다큐 관객층을 넓히는 한편, 영화제의 충실한 파트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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