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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수소차 충전소 0…“춘천서 100㎞ 여주까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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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강원도 춘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김모 씨가 최근 구매한 수소차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달 강원도 춘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김모 씨가 최근 구매한 수소차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박진호 기자

친환경 차량에 관심이 많은 회사원 김모(31·강원도 춘천)씨는 지난달 수소차를 샀다. 차량 계약 당시 춘천에 수소충전소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올해 연말에 들어선다는 얘기를 듣고 샀다. 지원금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점은 구매 결정에 영향을 줬다. 현재 강원도에서 수소차를 사면 차량 구매비용 6890만원 가운데 최대 60%인 425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김씨는 “올해 안에 충전소가 생긴다는 말을 믿고 수소차를 샀는데 연말 완공은 커녕 내년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차를 산 후에 딱 한 번 100㎞가량 떨어진 경기도 여주에 가서 충전해 타보고는 계속 주차장에 세워놓은 상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초 강원도는 수소충전소를 이달 말까지 강릉과 삼척에, 연말까지 춘천과 원주, 속초에 건립하는 등 총 5곳에 설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5월 강릉과학단지에서 수소탱크 폭발사고가 발생한 뒤 불안감이 커진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강릉은 주민 반발로 충전소 부지를 다시 협의하고 있다. 춘천과 원주·속초·삼척은 최근 공사업체를 선정했다. 가장 빠른 지역은 삼척인데 빨라야 올해 말, 아니면 내년에야 충전소가 완공될 예정이다.

수소경제 못 따라가는 인프라 #“보조금 4250만원 줘 차 샀는데 #한번 타고 주차장에 세워둬” #강릉 수소탱크 폭발사고 이후 #주민 반대로 충전소 설립 지연 #전국에 일반 이용 충전소 21곳뿐

전국 수소 승용차 2752대 … 4배로 늘어

‘친환경차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수소차는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경유차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지자체가 보조금 지원을 통해 빠르게 수소차 보급을 늘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대통령 전용차로 처음 수소차를 도입하기도 했다.

수소 충전소 운영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수소 충전소 운영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으로 전국에 보급된 수소 승용차는 총 2752대, 수소 버스는 4대다. 지난해 말(729대)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는 추경 예산을 투입해 연말까지 수소차를 6196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정작 수소차 운행에 필요한 충전소 등의 인프라는 차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수소 충전소는 총 28곳이다. 서울의 경우 마포구 상암동과 서초구 양재동 충전소 등 두 곳에서만 수소차 충전을 할 수 있다. 그나마 수소충전소 28곳 가운데 21곳만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다. 나머지 7곳은 연구용 충전소라 일반인은 충전소 이용이 어렵다.

지난 3월 수소차를 산 남상민씨(52·서울 이촌동)는 주변에 수소 충전소가 없다 보니 연료가 줄어들 때마다 충전소 찾을 걱정부터 했다. 남씨는 “그나마 가까운 서울 양재동의 충전소를 이용했는데, 최근에 단축 운영을 한다며 퇴근 시간에 문을 닫아 버렸다”며 “어쩔 수 없이 집에서 70㎞ 떨어진 경부고속도로 안성 휴게소까지 가서 충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수소차 충전을 위해 집을 나선 남씨의 차에 동승했다. 집에서 가까운 양재 수소 충전소까지 걸린 시간은 20여 분. 충전소에 도착하자 두 대의 차량이 충전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양재선 대기 길어지자 “절반만 넣어라”

서울시 서초구 양재 수소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수소차들. 충전소에는 절반만 충전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시 서초구 양재 수소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수소차들. 충전소에는 절반만 충전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천권필 기자

충전소 벽에는 ‘대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부득이 350bar(50%) 충전을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서울은 물론 지방의 수소차주들까지 이곳에 몰리면서 충전 대란이 벌어지자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조치였다. 남씨는  “예전에 한 번은 차량이 워낙 많고 충전 시간도 오래 걸려서 5시간 이상 기다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충전을 마치자 남씨 주행가능거리는 300㎞까지 늘어났다.

물론 충전소 확충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서울시는 국회 앞에 설치되는 신규 충전소가 다음 달부터 운영을 시작하면 충전소 대란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운영 중이었던 충전소들이 하반기 중에 시설 개선을 위해 문을 닫을 예정인 데다가 경기·인천 지역의 충전소 설치 일정이 미뤄지면서 수소차 차주들의 불편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등록 차량만 계산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경기도와 인천에 등록된 차들도 서울로 충전하러 오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충전소 확충 문제도 같이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5월 강원도 강릉과학단지에서 수소탱크 폭발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6월에는 노르웨이 산비카의 수소충전소에서 사고가 나면서 충전소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전국 곳곳에서 충전소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수소차는 계속 보급하고 있는데 아직 충전소가 없는 지역도 적지 않다. 전국에서 수소차 보조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강원도의 경우 도내에 충전소가 한 곳도 없다. 서울 등 도심 지역에서는 비싼 땅값과 각종 입지 규제로 인해 부지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촌동 주민 “안성휴게소까지 가 충전”

환경부 관계자는 “예산상으로 올해 안에 86곳에 충전소를 구축해야 하는데, 안전과 관련된 민원 등으로 늦어지면서 내년으로 완공 시기가 넘어간 경우가 꽤 있다”며 “충전소를 빨리 건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우선이라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소 충전소는 학교에서 최소 200m 떨어진 곳에 지어야 하는 등 입지 규제가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그런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부지를 찾기도 어렵다. 수소 충전소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

임재준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 부사장은 “수소차 시장이 자리 잡으려면 충전소 등의 인프라가 수소차 보급보다 더 빨리 가야 하지만 비용 부담이 워낙 커서 민간의 참여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충전소들이 자생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천권필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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